[김용희의 세상엿보기] 3박 4일
[김용희의 세상엿보기] 3박 4일
  • 김용희 시인·수필가
  • 승인 2022.06.2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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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은퇴 1년이 되어간다. 2002년 월드컵 4강, 히딩크란 이름이 새로운 경영론의 기준이 되어갈 때 초기 사이버대학에 입사했다. 18년을 근무, 1300명 학생수가 1만3000명이 되었으니 10배 양적 성장했다. 소프트 랜딩없이 은퇴하고 1년 남짓, 잡(job)이 미션이 사라졌다. 이 공허 모두들 극복하기 쉽지 않다 한다. 무한한 자유인지 사회로부터 배척인지, 사회적 효용성이 쇠진해서 배출된 것이 맞겠다. 은퇴란 강제 휴식이요 어쩌면 익숙한 일상과의 단절이다. 제2의 인생? 그건 준비 잘한 유능자들의 일부 사례이고. 해도 그럭저럭 적응 중이다. 친구회사 프로젝트도 도우고 주변 민원도(?) 해결하고 구청 강의도 하고, 시의원 출마자 지원했다가 수십표차로 낙선했다.

이제 할 일이 없다. 해서 고향 형님댁 방문, 방문이랄 것도 없다. 그냥 간 게다. 이제 80줄을 넘는 형님 두 분 내외, 자꾸만 세월이 소실되어간다. 힘에 부쳐 농사도 짓지 않는 큰 형님, 십수년 전 부산으로 다시 아들 따라 창원으로 간 작은형님. 두 분은 하루일과라는 것이 없다. 그저 아프지 않고 하루 잘 보냈으면 그 뿐. 그나마 시골 큰형님은 논 몇 마지기와 텃밭 농사는 지으시기에 또 절친 콜리(개)와 하루를 보내는 일상이 무료하진 않으시다. 작은형님은 워낙 사교성이 좋으셔서 어디 가나 친구를 잘 사귀시고 장기는 또 수준급이시니.

그래도 여하튼 세월은 오차 없이 밀려간다. 어째 두 분 아니 네 분 곁에 잠시라도 더 머물고자 가능하면 자주 내려간다. 창원 작은 형댁을 큰형 모시고 방문, 게를 배 터지도록 사신대서 정말 눌러담아서 먹었다. 마산항 부둣가 오래된 식당들 바닷내음이 비리하다. 일부러 그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큰형님 보청기 수선을 간다. 누적된 세월이 어떻게 사람들을 쇠잔시켜가는지 그 실상들이 우리의 삶이다. 이제 느릿한 걸음 구부정한 어깨 저하된 인지능력. 그게 시간에 밀린 분들의 일반적 행태다. 친절한 여직원의 배려로 보청기 수선 후 장애인 등급 혜택 등도 소개받는다. 다시 시골 함양으로 귀향길, 네 분의 살아온 사건들로 늘 화재는 집중되지만 두 분 모두 약해진 청력으로 대화는 쉽지 않다. 해서 흘러간 노래, 전통가요, 가요무대 등 검색해서 듣는다. 창밖 지나는 풍경과 높은 해가 데우는 열기를 에어컨으로 대응하며 늘 익힌 길이나 드라이브로 하루 오후를 또 하나의 기억으로 담는다.

다음 날은 부여를 방문하기로 했었다. 백제의 수도, 화려했던 백제가 한강 풍납에서 공주로 사비로 그렇게 황산벌에서 소멸된 역사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검색하니 왕복 4시간, 허리굽은 작은형 도보여행도 무리라 포기했다. 그리곤 모두 좋아하시는 고동잡이, 앞 냇물이 거진 말라버렸으나 깊은 물에는 소라와 뒤섞인 고둥이 제법 있다. 도시인은 5분도 불가능할 듯한 그 작업을 형님 형수님들 즐기는 것을 보면서 역시 우리는 살아온 결대로 사나싶다. 내리쬐는 햇볕 속 강물에 앉아 나오지도 않으려는 분들을 재촉 귀가한다. 잡은 고동이 수북하다. 이건 감자나 호박 땡초 넣고 국이 최고다. 저녁은 파크 골프에 빠져사는 동생 부부도 함께 돼지국밥으로 또 배불리 먹는다.

산다는 게 늘 그 삶 자체에 쫓겠는데 이렇게 놀고먹고만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직도 이해도 적응도 안 된다. 사회적 관여, 그것으로부터 소외된 것은 다시 무한의 지유이거나 혹은 호소할 곳 없는 외로움이다. 여하튼 그 시간들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인 듯, 일만 하다 일로서 삶을 표현하고 그 삶에 정직해질지 혹은 삶 자체를 직시하고 시간과 내가 하나 되거나 혹은 시간을 잃어 버리거나 혹은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그 질긴 끌림의 인연에서 탈출하여 드디어 방관자가 되거나. 그건 각자 선택의 길이겠다. 여하튼 은퇴는 또 하나의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일상이라는 우물에 빠져 있다 드디어 자의든 타의든 탈출한 건 무한의 기회요 축복일 수도 있겠다.

시골의 시간은 더디게 간다. 날이 새면 기상해서 아침 산책부터 상추 고구마 화초 물주기 등 온갖 일을 다하고 식사하고 커피까지 해도 8시도 채 못 된다. 아주 많이 숱한 날을 놀며 보낸 것 같은데 기껏 이틀이 지났다.

3일째 “오늘은 뭘 하지? 승객분들의 신청을 받습니다” 특별 의견 없단다. 기사 맘대로. 해서 이번은 고속도로 끝 통영이다. 대-통고속도로, 지난 가을 갔었지만 다시 더 넓은 바다가 그립고 보고프다. 해서 또 느릿한 차를 몰아서 두어시간 통영. 해변도로를 달리다 어느 곳 바닷가 나무 그늘에 돗자리 깔고 휴식을 즐긴다. 시원한 바닷바람, 끝없는 바다. 우리네 삶도 이처럼 열린 공간과 머무는 공간, 희망과 좌절, 피안과 현실이 그렇게 뒤섞여 왔으리라. 비록 희끗해진 머리, 얽혀진 주름 그리고 쇠약해진 몸이라도 이제 두 분처럼 어느 정도 달관한 듯 평안한 분들과 함께라면 하루가 늘 그리 길진 않다. 어디 바닷가에서 점심. 회덧밥을 잘 드신다. 미역국이 시원하다. 귀향하는 길에 진주 터미널 작은형 내려드리고 함양으로 향한다. 막내가 곱창전골집 예약했다고 작은오빠 드셔야 하는데 아쉽단다.

그렇게 3박 4일을 보내고 귀경길, 늘 평일은 도로가 붐비지 않아 좋다. 귀향하던 날 새벽 5시 여명을 마주하고 아침에 도착했었는데 귀경길은 오전이다. 또 시간을 앞세운다. 오다가 자다가 쉬다가 5시간 만의 귀경. 나른한 피곤함이다. 그려! 형제들이란 참 소중한 벗이자 자산이자 이웃이자 또 하나의 고향이다. 우린 시간 길을 같이 걸어온 이들, 그래서 나눔은 함께함은 늘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또 하나의 삶의 향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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