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대(竹)소쿠리
[정용우칼럼] 대(竹)소쿠리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07.1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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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시골에는 빈집이 많다. 노부모들이 죽고 난 후 자식들이 집으로 살러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집 자체가 외롭고 처량해 보인다. 마당이나 집 둘레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리 옆집 심씨네 집도 마찬가지다. 담벼락 안의 관리는 자녀들이 가끔 다녀가면서 그럭저럭 해내는 것 같은데 담벼락 바깥 관리는 제대로 되지 않는다. 담벼락 바깥이 동네 간이도로여서 사람과 차들이 제법 많이 다니는데 풀로 무성하게 덮여 있으니 볼썽사납다. 그래서 내가 가끔 이 풀들을 제거하기도 한다. 우리 집과 바로 붙어 있어 그냥 그대로 놔두고 있자니 꼭 내가 게으름을 피운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날 내가 풀을 뽑아내어 대소쿠리에 담고 있는 모습을 동네 아주머니들이 지나가면서 보게 되었다. 아주머니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니가 만디 이집 일을 하노?”부터 “옆집 일로 니가 수고가 많네.” 등등. 그러던 중 집안 형수님 한 분이 내가 뽑아낸 풀을 담고 있는 대소쿠리를 만져보더니 “이거 참 귀한 물건이데이. 잘 간직하이소.”라고 했다.

대소쿠리, 참 귀한 물건이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플라스틱 용기를 주로 사용한다. 대소쿠리가 플라스틱 용기보다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여기면서 만드는 사람이 별로 없다. 게다가 유지 관리 자체도 어렵다. 대(竹)로 만들어졌기에 햇빛에 노출되거나 비를 맞게 되면 곧바로 망가져 버린다. 이렇게 관리가 어렵지만 내 어머니의 유별난 정성 덕분에 우리 집에는 대소쿠리가 여러 개 남아 있다.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나는 오늘 옆집 도로변에서 뽑아낸 잡초를 어머니가 나에게 물려주신 이 대소쿠리에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요즘 사람들과 달랐다. 물건을 참 아껴 썼다. 이름 없이 살다간 한국의 여인네들. 그 여인네들은 값어치가 있든 없든 어떠한 물건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고 섬기는 마음으로 대했다. 물론 그 시절에는 물건이라는 게 귀하긴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삶의 자세였다. 살아 있는 것은 물론 바위나 공기, 바람이나 물처럼 언뜻 보기에는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도 신을 만날 수 있기를 꿈꾸었고. 집이나 불, 그릇, 농기구, 쓰레기와 같이 사람이 만든 것에서조차도 조물주 하느님을 뵙는 것처럼 여기고 살았으니 사소한 물건 하나라도 어찌 경(敬)의 자세를 간직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우리 어머니들의 심성이다. 풀을 뽑아 대소쿠리에 담으면서 어머니의 정성스런 관리 모습을 떠올려본다. 우리 어머니 세대 여인네들은 사물에도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 사용하고 관리하면서 손때가 묻어야 정이 들고 오랜 시간 물림과 물림을 거듭한다는 것을 아셨다. 오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아 뽑은 풀을 담는 이 대소쿠리가 나를 추억 속의 시간으로 데려간다. 우리가 대소쿠리로 고기잡이하고 돌아오면 이를 다시 깨끗이 씻어 그늘에 말리시던 일, 대소쿠리에 비린내 나는 고기를 널어 말리고 나면 그 비린내를 짚으로 깨끗이 닦아 말리시던 일, 오늘같이 풀을 뽑아 담았을 때는 혹시라도 흙이 묻었을세라 깨끗이 털어내시던 일 등등. 주름이 깊게 팬 어머니의 손, 그 손으로 그렇게 정성스레 관리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聖人은 無棄物이라”고 옛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성인은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사물이 자기와 일체임을 알기 때문에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함부로 버리기는커녕 물건 하나하나를 매개체로 삼아 자신의 심상을 들여다봄으로써 심성을 바르게 수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성인에 이르는 길이라면 우리 어머니들은 모두가 성인의 반열에 오르신 분들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떤가. 새로움과 편리함을 우선시하는 세태에 따라 오래된 물건보다는 새 물건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오래되어 낡았거나 효용가치가 떨어져 버린 물건은 쉽게 내다 버린다. 이렇게 무심히 쓰고 버리는 사이에 쓰레기는 쌓이고, 인간은 사물의 반격을 받아 쓰레기 속에서 질식하는 중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약간은 불편하더라도, 좀 오래된 물건이라도 닦고 기름치고 수리하여 쓰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넘쳐나는 쓰레기를 줄이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대소쿠리 추억 더듬기와 함께 옆집 담벼락 바깥 도로변 풀 뽑기 작업은 끝나고 대소쿠리를 창고 안으로 들인다. 창고 문을 여니 오늘따라 유난히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소중한 시간과 공간이 그 안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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