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참나리꽃
[정용우칼럼] 참나리꽃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07.1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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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장마가 계속될 때면 나는 괴롭다. 산책을 나가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그보다도 나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 장마 중엔 방 안에 습기가 많은 탓에 평소보다 더 후덥지근하다. 하지만 나는 평소 몸 면역력이 저하되어있는 탓에 습기 제거를 위해 에어컨을 마음대로 틀 수가 없다. 자칫 잘못하면 콧물감기에 걸리기 때문이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은 이명이 더 극성을 부린다. 하여 더욱 잠 못 이루고.

그런데 올해 장마는 예년과 같지 않다. 나는 아내에게 이야기한다. 올해 장마는 ‘착한 장마’라고. 그렇기는 하지만 역시 장마철인지라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내리는 때가 많다. 늦은 오후가 되자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아 온다. 비가 내리지 않는 틈을 타 강둑길 산책에 나선다. 물론 우산은 지참하고. 비가 온 뒤라 산천이 맑고 깨끗하다. 방어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장맛비로 불어난 강물은 유유히 흐른다. 약 1시간 동안의 저녁 산책을 마치고 기분 좋게 귀가한다. 일찍 저녁 산책을 마친지라 아직 날이 밝다. 해거름께 우리 집 잔디밭을 바라다보는 것 역시 나의 기분을 북돋운다. 우리 집 담벼락에 접어들면서 잔디밭을 쳐다보는데 그 잔디밭을 뒤로 하고 환하게 나를 맞이하는 꽃이 있으니 바로 참나리꽃이다. 꽃잎에 까만 점이 콕콕콕 박혀 있는 참나리꽃. 꽃만 눈에 들어온 게 아니다. 이 참나리꽃을 좋아하는 호랑나비까지. 이 호랑나비 날개에도 역시 검은 점이 콕콕콕 박혀 있다. 초여름 해거름께 호랑나비 몇 마리가 참나리꽃 위를 날고 있는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너무 느리지도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은 나비의 우아한 비행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더위도 장마도 깜빡 잊어버릴 만큼 황홀하고 신비롭다. 그러나 이건 참나리꽃과 호랑나비를 바라보면서 느낀 내 생각일 뿐 호랑나비들은 먹고 살기 위해 바쁜 몸부림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이다. 꽃 주위를 맴도는 놈들은 지금 꽃을 빨고 있는 놈들이 자기들과 교대해 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이놈들은 요지부동이다. 마치 참나리꽃에 담겨 있는 맛있는 먹거리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빨아먹고 말겠다는 듯이.

여름철이 시작될 무렵이면 우리 집에는 참나리꽃이 여기저기서 피어난다. ‘주아’라는 놈 때문이다. 주아는 꽃가루받이(受粉)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무성생식체이다. 이것이 땅에 떨어지면 뿌리가 내리고 잎이 돋아나 새로운 개체로 자라게 된다. 그 꽃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번식해 나가는 것이다. 내가 일부러 심지 않아도 우리 집 정원 여기저기에서 참나리가 자라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집 참나리도 도로변에 홀로 피어 있는 것을 옮겨 심은 것인데 그것이 여기저기 주아를 퍼뜨린 결과 이렇게 되었다.

비 그친 오후, 정원 여기저기에서 피어난 참나리가 청초하다. 향기는 없지만 여름에 피는 꽃들 역시 계절을 닮아 그런지 강렬하고 시원시원한 느낌까지 선사한다. 7~8월의 무더운 더위를 식혀줄 청량제 같은 꽃이다. 고개를 숙이고 땅을 향해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겸손함의 미덕까지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이름도 참 재미있다. ‘나리’는 자기보다 높은 상대방을 가리키는 말 ‘나으리’에서 온 말이란다. 게다가 ‘참’자가 붙었다. 최고의 나물은 참나물이요 최고의 나무는 참나무이듯 ‘참’나리는 높임을 받는 꽃 중에서도 높임을 받을 만한 으뜸 꽃이요, ‘나으리’ 중에서도 으뜸 나리인 셈이다. ‘나으리’들에 대한 서민들의 마음을 담은 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한 꽃만 예뻐하기 미안해서 배롱나무 근처에서 꽃을 피운 또 다른 참나리꽃에도 다가가 본다. 그런데 이 참나리꽃은 조금 전에 내가 본 참나리꽃보다 꽃대가 약하고 꽃도 작으며 어딘가 병약해 보인다. 자세히 보니 꽃을 피운 줄기부터 무언가 하얀 것이 잔뜩 묻어 있다. 진딧물인가 보다. 오랜 장마 때문에 이 진딧물이 붙은 모양이다. 이 진딧물이 기주식물인 참나리에 들러붙어 그 즙액을 빨아먹으면서 살아가니 이 참나리가 그 생장 기운을 잃은 탓이리라. 꽃대가 비쩍 마르고 키까지 커서 무척 외롭고 안쓰러워 보인다. 그래도 대단하다. 장마기간 동안 불어 닥친 비바람 속에도 흔들리기는 했지만 꺾이지는 않았다. 병마가 달라붙어 힘들기는 해도 견디어 내며 어설프게나마 꽃을 피워냈다. 몸의 나이는 속일 수 없고 몸을 쓴 만큼 약해져 잔병들이 여기저기 찾아올 나이가 된 나. 이 진딧물 붙은 참나리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괜찮아, 괜찮아! 그럼에도 어설프게나마 꽃은 피울 수 있어. 어차피 흔들리며, 견디어 나가야 하는 것이 삶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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