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근칼럼 東松餘談] 배롱나무
[하동근칼럼 東松餘談] 배롱나무
  •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승인 2022.07.2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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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최근에 새로 모습을 드러낸 산청읍의 환아정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주변 언덕에 서 있는 배롱나무 한그루에 꽃이 만개할 대로 만개한 모습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복원은 아니지만 비슷하게나마 새로 지었다는 환아정의 요란한 단청과 서두른 인상의 주변 공사 마무리에 실망한 기분을 다소 풀어나 주듯, 무심코 돌아서는 순간,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배롱나무의 붉디붉은 꽃이 정신이 번쩍 들게 할 정도로 강렬하게 눈을 찌르고 다가왔다. 가녀린 작은 꽃잎들이 나무 전체를 풍성하게 감싸면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움직임까지 겹쳐 너무나 화사하고 또 정열적인 모습이었다. 마치 붉은 장옷을 둘러쓰고 나들이 나온 옛 시절 여인의 성장한 자태를 보는 것 같아 정작 구경 온 환아정은 뒤로 한 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배롱나무를 여름나무의 백미라고 부른다. 특히 배롱나무의 경우, 목백일홍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사흘도 버티기 힘든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석 달 열흘 즉 백일 동안이나 꽃을 계속해 피운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배롱나무처럼 한여름에 꽃을 오랫동안 피우는 나무가 또 있다. 무궁화와 자귀나무꽃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들 세 종류의 나무를 우리나나라에서는 3대 여름꽃이라고 부른다. 세 나무의 공통점은 여름 내내 꾸준히 꽃을 피워낸다는 점이다. 그 끈기를 높이 평가해 옛 선현들은 생활 주변에 심어놓고 모습을 즐겼다. 지금도 이름 있는 궁궐이나 서원이나 향교, 정자, 사찰, 공원, 가깝게는 산청지역의 신안정사와 니동서당, 배산서당, 우천정사, 겁외사 등 유명 서원과 사찰의 앞마당에는 지금 이 계절이면 어김없이 무궁화꽃과 함께 활짝 핀 배롱나무꽃을 만날 수 있다.

배롱나무가 여러 각도에서 평가를 받는 것은 오랫동안 개화를 한다는 점 외에도 나무껍질이 노각나무처럼 예쁘고 줄기와 수형 등 자태 또한 맵시가 있어 이른바 청렴결백한 선비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각별히 의미를 둔 듯하다. 요즘으로 치면 ‘패셔니스트’, 멋쟁이라고나 할까? 유교에서는 그래서 배롱나무를 선비와 충절의 상징으로 표방했다. 불교에서는 윤회와 해탈을 상징했다. 꽃이 끊임없이 피고 진다는 점에서 윤회를 탄생과 소멸을 설문했고 껍질이 자주 벗겨진다는 점에서 세속의 욕망과 번뇌를 씻어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장마전선이 물러가긴 했지만 본격적인 여름은 이제 시작이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고 있고 나라는 새 대통령이 출범한 지 두 달이나 지났지만 치솟은 물가와 환율, 세계적인 경제 불황은 뒷전인 채, 자리싸움이나 하던 국회가 이제 겨우 개문 발차했다. 여야 모두, 대선 후유증인지 정권 교체의 과도기인지 모르지만 당 내부 권력다툼에 혈안에다 상대방 헐뜯기에 매진하고 있다. 정작 국민 생활과는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도 모를 대통령 지지율 시비에다 9급 공무원 설전을 벌이는가 하면, 북송어민 문제를 놓고는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인정은 하지 않고 이른바 물타기에다 뒷박치기로 이 무더운 여름 날씨만큼이나 짜증나는 멱살잡이로 하루하루를 소일하고 있다. 환아정의 배롱나무보다 더 큰 배롱나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가 만나게 된 단성의 신안정사 암벽에 새겨진 ‘지통재심 일모도원’(至痛在心 日暮途遠: 지극한 비통함이 가슴에 서려있는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이란 문구가 오늘따라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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