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 세상엿보기] 들풀 민족 - 우린 들풀인가?
[김용희의 세상엿보기] 들풀 민족 - 우린 들풀인가?
  • 김용희 시인·수필가
  • 승인 2022.07.2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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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10년 전 조성진에 이어 임윤찬이 반코르 피아노경진대회에서 최연소 우승했다. 전원기립박수... K-Pop이 세계를 누비는 이유? 이번에도 최종엔트리 12명 중 4명이 진입했다.

누구나 젖가락 장단을 할 수 민족, 노랫가사 몇개쯤은 온전히 암기할 수 있는 민족, 세계사람들이 그게 어찌 가능하냐 한단다. 그렇게 흥과 끼가 많은 민족, 그 흥과 끼가 눌려 발휘되지 못하니 누르고 눌러 한이 된 민족. 흥과 끼는 서정성에서 풍부한 감성에서 나올테고, 이러한 잠재적 능력이 지금의 K-팝 K-콘텐츠를 만드나 보다.

한(恨)! 그건 자유를 향한 열망이다. 우리 문화의 원류를 한(恨)이라고들 한다. 다시 그 뿌리를 찾아가 보자. 최초의 시이자 운율이자 노래인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공무도하. 공경도하...” 님은 그 강을 끝내 건넜고 그러다 돌아오지 못하는 객이 되었소. 정읍사(井邑詞)에서 망부석이 되어버린 아낙네의 비애와 설움은 서양의 소돔 고모라 성의 소금기둥이 된 여인과는 다르다. 님을 기다리다 돌하르방이 되어버린 여인, 그게 망부석(望夫石) 아닌가.

님은 왜 그 강을 끝내 건넜을까? 아마도 야망 때문이겠지. 강을 건너야만 얻을 수, 취할 수 있는 ‘그 무엇’ 때문에, 그 무엇은 권력일 수도 신분일 수도 금력일 수도 있었겠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랐다” 그게 사실은 낙오자의 자기위안이었지. 현실이 아니었다는 것. 인간은 내부적으로 끓어오르는 야망 때문에 머루 다래나 먹고 청산에 살 수는 없다. “아기염소 풀을 뜯어 논밭 길을 가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일 수는 없다”는 게다.

“강호에 병이 깊어 청산에 누웠더니”의 관동별곡 정철은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최고의 자연 목가시인이다. 그러나 정철이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준다. 그렇게 인간은 내면에 끓어오르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 벗이 몇인고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이태백이 놀던 달, 두보가 노닐던 강... 어디 하나 정치와 외면되리. 황순원의 ‘소나기’까지 사회주의자 아닌 정치 무관심자를 위장하려는 의도였으며, 톨스토이 ‘죄와 벌’도 당시는 원고료 욕심으로 내용을 완결을 하고도 덧붙였다니...

배고픈 선비는 배부른 상인을 내심은 부러워하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정직해진 게 요즘 자본주의요 웹소설이겠다. 그렇게 부딪히는 욕망 사이에서 임은 기어이 그 강들을 건넜다. ‘안사의 난’은 당 양귀비 시절 권력다툼으로 인류 최대의 희생을 치른 내분이었다. 양국총, 절대적 수치로야 최대의 희생자를 낸 전쟁은 2차대전이지만... ‘인간이 먼저’라는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몰락한 것은 이런 ‘욕망이 먼저’인 자본주의를 인간이해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한’의 문화, 그것은 결국 자유를 향한 열망 때문에 생겨난 터뜨리지 못한 눌린 감정의 배설구 역할을 한 게다. 백의 민족! 그들은 누구인가. 대체적으로 순한 민족, 온유한 민족, 선한 민족이었다. 역사 속의 그들이 그렇다. 그러나 끈질긴 인내와 끈기와 깡은 세계적이다. 한민족은 유대 히브리 민족과 대비된다. 그들은 에굽과 바빌론 유수처럼 노예의 생활을 거쳐 급기야는 나라를 잃고 수천년을 떠돈 민족이었으나 지금은 노벨상, 미국 금융과 문화계의 큰손이 되었다. 미연준의장, 대형영화사가 대부분 그들이다.

한국민족, 그들은 끝내 나라를 잃지 않았다. 몽고군에게 짓밟히고 일제에 당했어도 촛불같은 민족, 언제나 들풀처럼 다시 일어선 민족,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잘 모른다.

우리의 아리랑 곡조는 외국에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리랑 가사 또한 내용이야 한(恨)의 문화다. “나를 두고 가시는 님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라도 나라고 애교섞인 투정을 하고 있다. 이건 진달래와 닮았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을 위해 꽃을 꺾어 놓은 남겨진 연인의 심정 아닌가.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린 그 꽃,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단 얘기에 차라리 펑펑 울어버린 것보다 더 진한 여운으로 남는 그 한 말이지. 쏟아서 해소하는 것이 서양문화라면 참고 내밀화하는 것이 한국의 恨이겠다. 이같이 恨은 선한 백성의 응어리에서, 다시 사화(士禍)로 점철된 조선의 시대난 속에서 착한 백성들의 심성이야 어디 갈 곳이 있었으랴.

그러나 그 恨만 가지고 저 능력있는 영화, 피아니스트, 아이돌 팝 가수들이 나올까? 한은 밑자락의 뿌리요 환경이요 끼와 흥이 분명히 있겠다. 그건 팝 가수들의 춤이 바로 그것의 표증(表證)아닐까. 이제 노래는 춤이 80%다. 그들의 장단 몸짓 절도는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강남스타일’이 뜰 때 의아해했다. 왜 세계가 따라 하는가? 우린 늘 그러고 살았는데, 덩실덩실 강강수월래로, 그러나 세계인들에게는 그것이 그 흥이 특이했던 것이다. 흥과 끼 그건 또다시 오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잠재력이다.

지금 그 끈질긴 끼와 깡과 한이 다시 일어서고 있는 것이다. 다시 세계 속으로 그 내밀한 잠재력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디 한류가 하루아침이랴.

‘난타’ ‘태권도’ 이건 모두 흥과 끼의 발로다. 이전 시골마다 회치(경상도 회식)라는 놀이가 있었다. 꽹과리, 북, 장구, 피리 그렇게 마을 단위 농악대가 년 두어번 행사를 했다. 한 해 농사를 기원하고 액운도 쫓고 풍년에 감사도 하는 일종의 풍악놀이다. 그러나 장구 피리 꽹과리 사실 누가 누구에게 전수하고 말고 할 여유가 없었다. 먹고살기 바빴기에, 그러나 마을마다 그 풍경은 풍습은 일반적이었다. 그렇게 장단을 맞출 줄 아는 민족 그게 한민족이다.

이렇게 결론해보자. 恨이 시대와 역사 환경이 만들어낸 소산이라면 흥과 끼는 우리의 DNA속에 원래 있었다고. 가설(假說)이래도 좋고 아니래도 좋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는 횃불을 좋아하지 않는다. 엊그제 프랑스 대혁명 에펠탑 기념행사 불꽃놀이가 대단했다. 그들은 시민혁명 시 루이 14세 처형 대부분의 성주가 처형되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진행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동학도 일본넘들 핑계꺼리 줄까봐 조심했던 민족, 그렇게 촛불로 타올랐던 민족이다. 프랑스가 횃불이라면 우리는 촛불이다.

은근과 끈기가 우리 심성의 터전이라고도 한다. 은근하면서도 선한 그리고도 강인한 민족, 강한 바람에는 들풀처럼 누웠다가 언제나 다시 일어서는 그 내밀성, 밟아도 밟혀도 다시 살아나는 잡초의 속성, 그렇게 쌓여진 한을 언제나 바람결에 따라 춤을 추며 풀어내는 민족. 우린 들풀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모를 뿐! 그렇게 정치는 늦어도 문화는 앞서고 있는 민족,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그건 우린 연약하고 선하고 그러나 강한 들풀이기에 그렇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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