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연(蓮)
[정용우칼럼] 연(蓮)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07.25 16: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서울에 살 때 요즘 같은 여름철이 되면 나와 아내는 일산 호수공원에 자주 다녀오곤 했다. 연꽃을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은 서울에서 완전 철수하였기에 연꽃을 보고 즐기기 위해 일산 호수공원까지 갈 수가 없다. 대신 고향 들판 저지대에서 연 농사를 짓고 있어 연꽃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물론 이들 연꽃은 일산 호수공원에서와 같이 조경용으로 키운 것이 아니라서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다. 그 대신 연의 키가 엄청 크다. 키가 커서 그런지 연꽃도 엄청 크게 피어난다. 큰 밥사발만 하다. 일산호수공원에서 본 제일 큰 연꽃도 이곳에서는 보통밖에 안 될 정도다. 하지만 농부들은 연꽃의 아름다움이나 꽃의 크기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연 농사가 잘 돼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오로지 중요할 뿐. 하여 그 해, 연의 시장가치가 높게 매겨질 가능성이 있다면 연 재배 면적이 크게 늘어난다. 운 좋게 이런 해가 왔을 경우, 넓디넓은 연꽃밭을 바라본다는 건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다. 요즘 같은 여름 휴가철에는 가족들 그리고 지인들이 가끔씩 이곳을 다녀간다. 그럴 경우 나는 이들과 함께 이곳 들판 저지대에 넓게 자리 잡은 연 재배지를 찾아간다. 이 또한 시골에 사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예로부터 연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옛날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인 주돈이는 ‘연꽃을 사랑하는 이유’라는 유명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나왔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가 않다. 속은 비었고 겉은 곧다. 넝쿨도 치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는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꼿꼿하고 깨끗하게 심어져 있다.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업신여겨 함부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올라오는데, 그 꽃은 너무도 순결하고 깨끗하다. 우리가 비록 좋지 못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연꽃처럼 내 자신을 맑고 순결하게 가꾸라고 격려하는 듯 피어 있다. 또 연꽃 줄기는 속이 텅 비었고 겉은 쭉 뻗어서 곧다. 한 줄기에서 하나의 연꽃을 피운다. 가지 뻗고 넝쿨 쳐서 얼키설키 지저분하지도 않다. 우리도 이처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바로 하여 살아가라고 또 주변을 깨끗이 정돈하고 내 일도 아닌 일에 끼어들어 다툼을 일으키는 일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전해 주는 듯하다.

그런데 위의 주돈이의 글은 ‘연꽃’에 대한 이야기다. 연꽃 못지않게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이 있으니 ‘연잎’이다. 이 연잎에 대한 찬사도 많은 문인들의 시나 산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들이 그토록 찬사를 보내는 이유를 바로 알아챌 수 있다. 비라도 내리는 날, 빗방울이 연잎 위로 떨어지면 또르르 굴러서 넓은 연잎의 가운데로 고인다. 다시 빗방울이 또르르 구르고, 또다시 구르고 하면 연잎의 가운데에는 어느새 하늘에서 내려온 맑은 구슬들이 잔뜩 모이게 된다. 연잎마다 소복소복 담겨 있는 빗방울들이 마치 보석 같이 느껴진다. 구슬이 구르고 굴러 무게를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면, 연잎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서 그동안 모은 맑은 구슬들을 아래로 쏟아 붓는다. 비 내리는 날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마음이 맑아진다. 자신이 감당할 만한 빗방울만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미련 없이 비워버리는 연잎(법정 스님 표현). 비워내고 또 비워내는 이들 연잎을 바라보면서 버리고 비우는 지혜를 배운다. 만일 연잎이 빗방울에 욕심을 낸다면, 만일 연잎이 빗방울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지니고 있다면 빗방울은 더 이상 그곳에 모일 수가 없다. 모였다 하더라도 그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가치 없는 인내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아니,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 하더라도 결국은 빗방울의 무게에 짓눌려 꽃대가 부러져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연잎은 빗방울에 집착하지 않는다. 빗방울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나면 빗방울은 대기로 사라져 버린다. 우리가 지닌 모든 소유물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빗방울 사라지듯 사라지고 말듯이. 버리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버리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연꽃은 이미 알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으니, 연잎이 빗방울을 버릴 때 한꺼번에 완전히 다 비우지 않는다는 사실. 한 두 방울 정도는 꼭 남겨두고 버린다. 마치 우리에게 삶이 주는 무게로 인해 버거워질 때 이것저것 다 버리더라도 중요한 하나는 오히려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려는 듯이. 우리네 삶에 있어 그 중요한 하나는 무엇일까. 오늘 오후 산책 시, 연 재배지를 둘러보면서 자신에게 물어봐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