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닥풀꽃
[정용우칼럼] 닥풀꽃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08.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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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자연(自然)은 스스로 움직인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세월은 흘러 처서(處暑)까지 지났으니 바람의 냄새도 달라졌다. 끈적임은 선선함으로 변했고, 이제 곧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쉽다. 대략적인 통계에 의하면 봄과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이 각 40% 내외고 여름과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 각 10% 내외.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10% 정도니 백 명 중 열 명이 될까 말까 하다. 그런데도 여름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다니...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여름꽃 때문이다. 여름은 사계절 중에서 꽃이 제일 많이 피고 지는 꽃의 계절이다. 물론 봄에 피는 꽃, 가을에 피는 꽃도 여럿이고 또한 아름답지만 나는 특히 여름에 피는 꽃들을 사랑한다. 꽃이 클뿐더러 시원시원하게 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집 화단에는 여름에 피어나는 꽃이 여럿 있다. 접시꽃, 부용화, 분홍낮달맞이꽃, 나무수국, 닥풀꽃 등이다. 접시꽃과 부용화는 그 아름다운 자태를 접은 지 오래되었고 분홍낮달맞이꽃과 나무수국은 절정기를 지나 하나둘씩 시들어가기 시작한다. 단 하나 닥풀꽃만은 그 절정기를 향해 치닫고 있다.

본격적인 여름철이 지나 초가을 기운이 느껴질 무렵이면 우리 집 화단에는 닥풀꽃이 여기저기 피어난다. 5년 전, 아내가 서울 화곡동 어느 화단에서 닥풀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모습을 눈여겨 보아두었다가 씨앗이 여물어질 무렵 그것을 따와서 우리 집 화단에 뿌린 것이 그 모태다. 아내가 특별히 따온 씨앗이라 소중하게 관리한 덕분에 요즘 들어 우리 집 화단은 닥풀꽃 천지다. 이 글을 쓰던 중 밖으로 나가 꽃송이를 세어보니 100여 개. 특히 올해에는 마을 도로 공사 시 설치한 콘크리트 축대를 가리기 위해 도로 아래 2열로 25미터 길이의 닥풀꽃 단지를 만들었더니 가히 연노랑 물결이다. 화단에만 닥풀꽃이 피어난 게 아니다. 화분에 심어서 키운 것도 있다. 화분은 옮길 수 있으니 아내가 닥풀꽃 유혹(꽃말이기도 함)에 못 이겨 이곳을 찾을 때는 이들 화분을 거실 바로 앞에 갖다 놓는다. 물론 꽃들은 거실을 향하게끔 배치한다. 매일 새롭게 피어나는 닥풀꽃을 아내가 바로 눈앞에서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꽃씨를 갖다 준 아내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감사 표시 방법이기도 하다.

늦여름 내내 우리 부부에게 아름다운 꽃을 선사하는 닥풀. 닥풀은 아욱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다. 예전에는 한지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재였다. 뿌리에 점액이 많기 때문에 제지용 호료로 사용되었단다. 그러나 한지를 제조하지 않는 우리 입장에서 관심대상은 단연 꽃. 이른 아침에 꽃봉오리를 서서히 펼치며 한낮에 꽃을 활짝 피워낸다. 환한 미색의 파라솔 같은 꽃이다. 생김새가 접시꽃, 부용화와 비슷하나 활짝 핀 꽃잎은 훨씬 더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왕비처럼 매혹적이고 아름답다 해서 사람들은 왕비꽃 또는 황촉규화라고도 불렀던 모양이다. 은은한 꽃색깔이 신기한지 지나는 사람마다 꽃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씩 서서 구경하는 것 보면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 꽃임에는 틀림없다.

나도 닥풀꽃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자태를 눈여겨보면서 즐긴다. 자꾸 즐기다 보면 취한다. 취한 만큼 더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만큼 더 속속들이 닥풀꽃의 속성에 대해 알게 된다. 그 몇 가지 속성들은 이 한적한 시골에서 ‘수도승 흉내 내기’하는 나에게도 적잖은 가르침을 선사하기도 한다. 내가 발견한 닥풀꽃의 속성 중 여기 2가지만 적어본다.

그중 하나는 꽃마다 ‘하루만 핀다’는 사실이다. 아침 일찍 피어났다가 늦은 오후가 되면 연노랑 꽃이 핑크색으로 변하면서 져버린다. 짧은 몇 시간 동안만 곱고 예쁜 모습을 보여주다가 일생을 마친다. 하루만 피어 있다. 나에게 ’하루‘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는 듯하다.

두 번째로 꽃이 피고 질 때 ‘순서를 지킨다’는 것이다. 닥풀 줄기는 둥근 기둥 모양으로 곧게 서며 위로 커간다. 커가며 기본 줄기에서 잎사귀를 키워나가는 데 그 사이에 꽃봉오리를 달아내 꽃을 피운다. 꽃을 피워내되 아래에서 먼저 꽃 피우고, 그것이 하루 동안 피고 지면 다음에는 그 위 꽃봉오리가 꽃을 피운다. 이런 식으로 해서 계속 위로 올라가면서 꽃을 피운다. 위, 아래 꽃봉오리가 그 순서를 바꾸는 경우가 없다. 꽃을 위로 피어내면서 이에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 잎사귀를 떨구어내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도 역시 아래에서부터 떨구어낸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잎사귀가 황색으로 변하여 저절로 꺾이어 떨어져 나간다.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소년등과(少年登科)라는 말을 무색케 하는 닥풀꽃만의 질서! 역시 아름답고 매혹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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