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뒤처진 매미
[정용우칼럼] 뒤처진 매미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09.0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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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세상은 코로나 때문에 여전히 난리다. 그런데 이 코로나로 인해 나는 이번 여름철에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가족 여행이나 나들이가 보통 때보다 규제되다 보니 아들 딸 가족이 이곳 시골에 자주 오고 갔다. 그만큼 손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자연 이들과 함께 만들어낸 추억도 많이 생겼음은 물론이다. 아름다운 추억은 자주 되살아나는 법.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되새기며 거실에 앉아 녹색 잔디밭과 화단을 내다보고 있으면 지난여름 내내 손주들이랑 함께 한 즐거운 시간들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다.

오늘 아침에는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창문을 열어젖히니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리니 어디에선가 잔디밭 위로 날려 온 말간 갈색의 매미 허물을 놓고 손주들에게 매미의 일생을 이야기해 주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간다.

매미의 일생은 조금 특이하다. 우선 매미가 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 매미는 ‘알-애벌레-성충’의 단계로 이어지는데, 매미가 여름에 짝짓기를 통해 나무껍질 등에 알을 낳으면 그 알은 1년 동안 나무껍질에서 생활하다가 알에서 깨어나 땅속으로 들어간다. 알에서 깨어난 매미 애벌레(유충)는 땅속에서는 나무뿌리의 수액을 섭취하며 여러 번 탈피하면서 성장한다. 이렇게 몇 년 - 올여름 매미는 5년 전(우리나라에 많은 참매미와 유자매미는 5년을 주기로 지상에 나오지만, 어떤 것은 7년, 13년, 17년 만에 나오는 것도 있음) 땅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것 - 을 보낸 뒤에 여름이 되면 비로소 땅위로 올라와 껍질을 벗고(羽化) 성충이 되는 것. 설명은 이렇게 간단히 하지만 성충이 될 때까지 수없이 많은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하기 때문에 땅위로 올라와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될 수 있기까지 정말 많은 행운이 따라야 한다. 이런 행운을 부여잡아 수년을 땅속에서 기다리다가 겨우 땅 위로 올라오기를 성공은 했지만 1-2주일(어떤 것은 한 달)밖에 살지 못한다. 그래서 여름철 이 한 두 주는 매미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하루하루이다. 그 시기 안에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아야만 자기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우는 이유는 이 짧은 기간 동안에 짝짓기를 하기 위해 자기의 존재를 온 몸으로 알리는 것이다.

여름철은 원래 온갖 생명들이 그 활력을 마음껏 펼치는 계절인지라 무언가 소란스럽다. 그 중 매미의 울음소리는 으뜸이다. 매미가 울면 뇌신경은 온통 그 매미 소리에만 집중된다. 그만큼 결사적으로 치열하게 울기 때문이다. 결사적인 매미 울음소리는 나무를, 마을을 활활 불태울 정도. 여기저기서 울어댈 때는 여간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소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사람에게 소란스럽게 들리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자기들에게 있어서는 처절한 구혼의 노래다. 1-2주일(어떤 것은 한 달) 안에 이 구혼의 노래를 들어 응답하는 수컷을 찾아내야 한다. 한창때는 개체수가 많으니 짝을 찾을 수 있는 기회도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가을 초입에 들어선 지금, 힘 빠진 채 구슬프다 못해 처절하게 울어대는 저 매미들은 뒤처진 매미들이다. 지금 비로소 세상에 나온 이 뒤처진 매미들은 한창때처럼 개체수가 많지 않아 그 짝을 구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나왔으니 자기 본연의 의무를 다하고자 나름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늦긴 했지만 자기 본연의 의무를 완성하고 말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그래서 이 가을 초입에서 처절하게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가 더욱 내 가슴에 파고들고... 그런 이유로 더욱 이들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꼴찌에게 보내는 응원의 박수다.

세상에는 꼴찌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병고에 시달리고 있어 건강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여러 즐거움을 놓친 사람들, 몸과 마음의 선천적 후천적 결함 때문에 보통사람들처럼 운신할 수 없는 장애인들, 부모로부터 몸은 받았지만 가난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자들, 부모가 누구인지 몰라 보육원에서 성장한 후 얼마간의 정착금만을 손에 쥔 채 갑자기 ‘어른’이 되는 자립준비청년들. 그들은 가을 초입에서 울어대는 뒤처진 매미를 닮았다. 이들 뒤처진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정도에 따라 그 나라가 선진국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자기보다 뒤처진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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