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근칼럼 東松餘談] 기성사실과 기정사실
[하동근칼럼 東松餘談] 기성사실과 기정사실
  •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승인 2022.09.1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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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일상 대화에서 자주 쓰지는 않지만 법적으로 결정된 사실을 확인하거나 절차과정을 따지는 경우에 자주 쓰는 용어로 ‘기성사실’이란 단어와 ‘기정사실’이란 말이 있다. 이 두 용어는 언뜻 보면 같은 의미거나 비슷해 보이지만 내용상 상당한 차이가 있다. ‘기성사실’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의미하고 ‘기정사실’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기정사실화하다’라는 표현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사실로 간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왜 뜬금없이 ‘기성사실’이니 ‘기정사실’이니 복잡한 단어를 들고 나와 의미차이를 따지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이 단어가 갑자기 생각난 것은 지난 추석연휴 초입에 북한이 핵 무력 사용 정책을 법제화해 공개하면서다.

북한이 발표한 핵 무력 사용정책의 내용을 보면, 앞으로 “북한의 핵은 자신들 마음대로 할 테니까 간섭하지도 말라. 여차하면 무조건 핵을 쏘아버릴 것이다. 그러니 아예 건드리지 말라”고 국제사회에 대해 협박을 하고 나섬과 동시에 “절대 핵을 포기할 수 없으며 백 날, 천 날, 십 년, 백 년 제재를 가해보라”고 강변했다. 북한은 그동안 핵무기를 보유하고 개발하고 있으면서도 표면상으로는 핵무장 해제를 조건으로 한 비핵화 협상을 미국 등과 추진해 오면서 스스로 핵무기의 보유사실과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예 대놓고 스스로 핵무기 보유사실을 ‘기성사실’로 하고 앞으로 핵무기를 어떤 상황이 되면 사용하겠다는 11개 기준을 국제사회에 공개해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사실을 ‘기정사실’로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른바 ‘불가역적인 핵보유국’임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핵무기 보유’라는 기성사실을 전제로 ‘필요할 경우 쏘겠다’는 결정을 기정사실로 못을 박고 나선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제는 더 이상 미국 등 서방국가의 경제 규제에 굴복하거나, 경제 협력 등 당근을 앞세운 비핵화 협상에 더 이상 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위 말해 협상의 여지를 아예 없애 버리고 대화의 빗장을 걸어 잠가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나 미국 등 우방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적 규제를 계속 강화하는 한편으로, 대화와 외교를 통해 북한의 완전 비핵화를 계속 추진한다는 입장을 일단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핵무기를 ‘기성사실’로 하고 핵무기의 사용도 ‘기정사실’로 발표한 이상, 어떤 조건의 접근 방법과 대응방안이 북한을 비핵화 협상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을지 또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어떤 의미에서는 마주 쳐야할 손뼉의 한쪽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다.

문제는 이 같은 북한의 강경한 태도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성사실로 인정하고, 이후의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보다 더욱 강력한 규제와 압박수단을 강구해 어쩔 수 없이 비핵화 협상의 장으로 나오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의 견지해온 입장처럼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사실 확인이 안 된 만큼, 여전히 비핵화협상을 전제로 한 기존의 대화와 협상태도를 견지하면 이른바 ‘당근과 채찍’ 전략을 계속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그렇게 많아 보이질 않는다. 불과 몇 년 전, 판문점 회담을 통해, 하노이 회담을 통해 트럼프에게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고 말하고, 김정은에게는 ‘트럼프가 지원을 약속했다’고 말해 회담 당시 세계적인 관심과 주목을 유도했던 문재인 전임 대통령의 실패한 ‘불가역적인 핵폐기 쇼’의 결말은 결국은 북한의 ‘불가역적인 핵 보유와 선제사용’이란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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