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강아지똥과 민들레꽃
[정용우칼럼] 강아지똥과 민들레꽃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09.20 1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가을비 그치더니 벚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수북하다. 계속 떨어지니 쓸어내도 허사다. 자고나면 잔디밭 위로 또 떨어져 이리저리 뒹군다. 잔디밭 위에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는 것도 마냥 싫지는 않다. 그런대로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좋을 때도 있다. 그러나 계속 그대로 둘 수는 없다. 며칠을 미루다가 마음 다잡고 거두어낸다. 거두어내면서 잔디밭 여기저기 솟아오른 잡초도 함께 제거해 나간다. 잡초 제거 작업을 하다 보면 여치도 자주 만난다. 우리 집 잔디밭에는 농약을 치지 않으니 여치들이 많이 산다. 그들이 뛰노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다. 그런데 가을이 깊어짐에 따라 이들 여치도 볼 수 없게 되리라. 그들도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긴 발목을 접는'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들도 어쩔 수 없이 가을 풀처럼 말라가며 함께 생(生)을 접을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 발목 접는 곤충들 옆으로 가을 냄새도 짙어간다.

잔디밭에서 잡초를 제거한 후에는 잔디를 깎는다. 아마 이번 잔디깎기가 올해 마지막이 되지 않나 싶다. 처서가 지난 지도 한참 되었으니 잔디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아 구태여 잔디를 깎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잡초를 제거한 후 잔디를 깎아 놓으면 겨울내내 예쁘게 노래진 잔디밭을 즐길 수 있다. 잔디를 깎아 놓은 후에는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땅을 단장한다. 여기에는 자갈을 깔아놓았기 때문에 손으로 잡초를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작업을 할 때마다 보게 되는 것이 민들레꽃이다.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면 제일 많이 접하게 되는 꽃. 자갈로 뒤덮인 우리 집 주차장에서도 여기저기 꽃을 피워내는 것처럼 생명력이 강해서 아무데서나 잘 자란다. 이른 봄 제일 먼저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늦은 가을까지 꽃을 피우는 풀이다. 이 민들레는 다른 풀과는 달리 처서가 한참 지난 지금도 잎을 키우고 꽃대를 키워낸다. 그 덕분에 이 주차장 부분을 단장할 때는 거의 예외 없이 노란 민들레꽃을 만나게 된다. 가을이 깊어가는지라 꽃대는 실하지 않다. 꽃도 보통 때보다 조금 작다. 그렇지만 작은 대로 예쁘다. 꽃은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주차장 단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풀 또한 걷어낸다. 이 풀을 걷어낼 때는 이웃집 강아지(길고양이일지도 모름)가 자기 영역 표시를 위해 싸놓은 똥이 비에 녹아 자갈 사이로 뭉개져 내린 모습도 함께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주차장 단장을 위해 이 작업을 할 때마다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똥’이라는 동화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 이 동화를 읽었지만 나에게 다가온 감동은 여느 명작 소설 못지않았다. 내용은 이렇다. 돌이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흰둥이가 길을 가다가 똥을 누었는데, 그 똥이 개똥이었다. 더러운 개똥이었기 때문에 온갖 질타와 비웃음을 산다. “나같이 더러운 똥이 세상에 왜 있냐?”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삶의 희망이 없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민들레 싹을 만나 이 싹을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되어주면서 자신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고 기뻐한다.

동화를 읽고 느끼는 점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생명과 사물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을 테고, 어떤 사람은 사랑과 나눔에 관해 또 어떤 사람은 희망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이 동화를 읽으면서 ‘쓸모’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강아지똥도 아름다운 민들레꽃을 피워내기 위해 거름이 됨으로써 자기의 쓸모를 입증한 셈이니...

조물주 하느님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물주 하느님의 뜻은 무시하고, 자연의 도(道)는 무시하고 우리의 이기(利己)에만 집착하여 쓸모 있다, 없다, 좋다, 나쁘다를 평가해 왔다. 돌이켜 보면, 내가 좋아하는 유형이 아니라고 해서 그들을 마구 쓸모없는 놈으로 매도하며 함부로 대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정치 지도자가 된다면 더없이 위험하다. 히틀러의 경우, 삶의 존엄을 잃어버린 채 생존만을 이어가는 사람을 안락사시킬 프로그램까지 만들지 않았는가.

지금 숨을 쉬고 있는 존재를 ‘쓸모없음’으로 분류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오히려 좀 더 시야를 넓히고 생각을 가다듬어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인간 세상을 보다 이롭게 하고 잘 교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차장 단장을 하면서 걷어낸 강아지똥과 민들레꽃이 공리적, 경제주의적 사고에 점차 물들어 가는 나를 빤히 바라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한참 부끄러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