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사천에서의 어느 하루
[정용우칼럼] 사천에서의 어느 하루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09.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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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그저께 매제(妹弟)가 이 세상을 하직하셨다. 매제지만 내 여동생과 나이 차이가 제법 있어 나보다 연장자다. 내 여동생과는 41년 동안 부부로서의 인연을 맺었으니 제법 길고 긴 인연의 끈을 맺은 셈이다. 부고를 접하고서 바로 경북대학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고 그날로 다시 내가 사는 이곳 지수로 돌아왔다. 3일장인지라 오늘 장지에 다시 가기로 하고.

장례식장에서 상주들과 함께 지낸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그곳 장례절차를 마무리하고서 7시경이면 장지를 향해 출발할 수 있을 거라 했다. 하여 우리 부부는 대구에서 장지인 사천 서포까지 오는 시간을 감안, 9시경에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장지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전화가 왔다. 화장장에서 시간이 지체되어 2시간 가량 장지 도착이 늦어지겠다고 했다.

2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차 극복을 위해 우리 부부는 그곳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다솔사(多率寺)를 찾았다. 1500년의 역사적 숨결을 간직한 다솔사는 봉명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소나무길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정도 올라가면 다솔사다. 아내는 본전인 적멸보궁 뒤에 설치되어 있는 사리탑을 돌며 참배한다. 부처님 진신사리 108과가 모셔진 곳이라 기도발이 세단다.

아내가 사리탑 참배와 탑돌이 하는 동안 나는 중학교 다닐 때 이곳 소풍을 와서 전해들은 희미한 기억을 다시 소환해 본다. 임진왜란 때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다솔사를 승병기지로 삼아 의병활동을 하였고 일제시대에는 많은 스님과 지식인들이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 항일 활동을 펼쳤다는 역사적 사실. 그리고는 절터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웅진전을 둘러본다. 이곳은 만해 한용운 스님이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하셨고 작가 김동리 선생은 이곳에 4년 동안 머물며 소설 등신불을 완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당시에도 적멸보궁 위쪽에 자리 잡은 차밭 역시 유명했으니...

우리 부부도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산책하며 명상에 잠기곤 했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길 중간중간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까이는 다솔사 전경이, 멀리는 와룡산이 눈에 들어온다. 새삼 높아지는 하늘 때문인지 산의 윤곽이 뚜렷하다. 그만큼 가을이 익어간다는 증거. 삶과 죽음을 함께 응시하기에 안성맞춤인 시, 공간(時, 空間)이다. 숨 쉬는 모든 존재는 죽음이라는 속성을 내치지 못한다는 것, 세월을 피할 수 없기에 늙음 또한 피할 수 없고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병 역시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잠시 깨닫는다. 내가 지금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며 집착하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버려야 할 것들이며 유일하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살았을 때의 행동, 생각, 말들 곧 업(業)뿐. 우리 보통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이러한 업을 어쩔 수 없이 쌓아 가야 하기에 하산을 해서 다시 장지로 향한다.

장지에 도착하여 조금 기다리니 장례예식장 버스(운구차)도 도착하였다. 제물을 차린 후 장례지도사의 지도 아래 장례절차가 진행된다. 매제의 77년 삶이 한 줌 재로 변하여 땅에 묻히고 동생이 남편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드린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41년간 고락을 같이한 동생이 안쓰러워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세상에 허무한 일 많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허무는 없으리라. 모든 것들이 꿈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으며,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또한 번개 같으니(금강경),,, 허무로다 허무로다. 나도 모르게 몇 번을 되뇐다.

이처럼 오랜 기간 인연의 굴레로 엮여진 한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은 종종 우리를 허무의 극까지 몰고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사람은 계속 살아내야 한다. 인생이 원래 그러하니... 장례절차를 모두 마친 우리는 상주 가족과 헤어져 또 다른 삶의 여정을 이어간다. 서울에 사는 동생들이 예약해 놓은 고속버스 출발시각까지 제법 여유가 있다면서 근처 어디 가서 차 한 잔 하자고 했다. 우리는 사천 사남에 자리잡고 있는 어느 커피숖을 향해 출발했다. 내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 친구가 경영하는 커피숍이다. 개업한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한 번 가보지 못해 마음의 짐이 되어 있었는데 좋은 기회를 잡은 셈이다. 생각보다 멋진 커피숍이었다. 대지 면적이 1200평, 그 대지 위해 건물이 3채나 앉아 있었다. 그중 한 채로 우리를 안내했다. 예전에 방앗간으로 쓰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으로 상당히 운치가 있었다. 그 주변에는 나무와 꽃들이 조화롭게 잘 배치되어 있었고... 마치 도심 속의 작은 공원 같았다. 멋진 공간에서 친구 사장과 즐겁게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 삶의 활력을 되찾고 허무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는다. 이렇게 오늘 하루를 살고 내일 역시 또 그렇게 하루를 살 것이다. 모질게 이어지는 우리네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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