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가을 여행
[정용우칼럼] 가을 여행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10.0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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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가을이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 여행길에 나선다. 여행이라 하기엔 부끄럽다. 그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보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은 여행이다. 사전에서 여행이란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님’이라고 나와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유람을 목적으로 여러 낯선 곳을 두루 돌아다니다 보면 몸도 마음도 일상의 속박으로부터의 잠시나마 벗어나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낯선 길 위에서 겸손과 배려와 감사를 깨닫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오지랖과 심미안까지 갖추게 하니 여행은 행동에 옮기는 것만으로도 낭만이 되고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늘 나를 가슴 뛰게 하고 긴장하게 만들며 하늘높이 춤추게 한다.

나는 건강상 제약 때문에 먼 곳으로의 여행은 어렵다. 나중에 건강상태가 좋아진다면 몰라도 지금은 당일치기 여행 정도가 부담이 없다.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조금 멀리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건강상태 등을 고려, 아내가 먼저 제안했다. 지방도로를 이용해서 가까운 곳을 둘러보자고.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예전에 직장에 다닐 때는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기에 고속도로를 주로 이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직장에서 은퇴한 후라 시간적 여유가 많다. 게다가 은퇴 후 계속 시골에서만 살다보니 어쩐지 고속도로보다는 지방도로가 마음에 더 와 닿는다. 지방도로가 고속도로보다는 구속감이 적어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을 잃어버린 나는 가드레일 안에 갇힌 채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질주해야만 하는 상황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눈 돌릴 수 없을 때 나는 왠지 답답하고 괴롭다. 터널도 악마의 배 속처럼 공포스럽고 고가도로는 롤러코스터처럼 무섭다. 그래서 우리는 지방도로를 이용해서 가까운 곳을 이리저리 돌아보기로 한 것이다.

병원에 들러 주치의로부터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고 산청으로 향했다. 생초에 도착할 무렵 옛날 이곳을 지나면서 먹었던 어탕국수 생각이 났다.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서는 감히 맛볼 수 없는 음식 중의 하나다. 마침 점심시간이 가까워 온지라 여기서 우리 부부가 즐겨 먹는 어탕국수 한 그릇 사먹기로 했다. 음식점을 고르기 위해 돌아본다. 여기저기 원조라고 간판을 붙인 음식점들이 많다. 우리는 깔끔하게 단장된 집보다는 약간 어수룩해 보이는 음식점을 골랐다. 음식점 안으로 들어서니 옛날 냄새가 풍겼다. 가족사진도 걸려있고 시 한 편 적힌 액자도 걸려있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시를 읽어본다. 지은이는 조광래다. 내 고등학교 동창 축구감독인 그와 이름이 같다. 그런데 그가 이런 시를 써서 여기에 걸어둘 리는 없고... 지은이는 아마 음식점 주인의 아들쯤 될 것 같다. 그런데 ‘자율학습’이라는 제목이 달린 시는 그 기술이 참 솔직하다. 방과 후 자율학습 시간이 얼마나 싫었으면 이런 시를 썼을까 싶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지리산국립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달궁삼거리를 거쳐 성삼재까지 가보기로 했다. 8년 만이다. 딸이 결혼하기 전에 함께 들렀던 추억이 서린 곳이어서 이곳을 택했다. 게다가 몸 상태가 시원치 않은 나로서는 자동차나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높은 곳까지 이를 수 있는 곳을 좋아하는 데 성삼재도 그 중의 하나다. 성삼재는 자동차로 해발 1090미터까지 올라갈 수 있다. 성삼재에 이르는 길 중간 중간에서 우리는 여기저기 한눈을 판다. 별다른 제약 없이 내 리듬대로 시간을 내어 즐기고 싶은 곳을 구석구석 찾아보는 것이다. 잠시 쉬어갈 겸 우리는 달궁삼거리를 조금 지난 지점에서 냇가 근처 누각이 있어 차를 세운다. 여름철이 지난지라 조용하다. 몇몇 아주머니들이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고 있을 뿐. 나는 누각 아래로 내려가 본다. 요즘 잦아진 가을비 덕분에 물 흐름이 제법 세차다. 물이 참 맑다.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흐르는 물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생각난다. 노자 ‘도덕경’ 제8장에 나오는 말이다. ‘지극히 선한 것은 물과 같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이가 싫어하는 낮은 자리로 흘러간다. 그래서 도(道)에 가깝다’는 뜻. 마침내 성삼재에 이르렀다.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산봉우리 여기저기 구름이 엉켜있다. 이렇게 높은 산에 올랐을 때 앞이 훤히 트이어 있으면 갑자기 내가 확 솟아오른 느낌이 든다. 실제 눈높이도 그러하지만 마음의 높이도 함께 솟아오르는 것 같은 기분! 이땐 세상의 눈높이에서 나를 바라보지 않고 내 생각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여 경제에서, 명예에서, 온갖 얽힘에서 벗어난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병고에 시달리는 몸이지만 이렇게라도 일상의 빈틈을 마련하는 것. 여행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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