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 세상엿보기] 송해길의 서사
[김용희의 세상엿보기] 송해길의 서사
  • 김용희 시인·수필가
  • 승인 2022.10.1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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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송해길에서 저녁6시 만나기로 했다.

경상도 골짜기 지리산이 멀지 않은 곳에서 1960년대 초등학교 한 반 약 60명이 6년을 같이 수학하고 졸업했다. 베이붐세대다. 그들 현재 서울에 열댓명이 산다. 3여년의 코로나시대가 끝나고 모처럼 동창회를 했다. 벌써 70줄, 세월이 많이 많이 흐른 게다. 늘 대여섯 명이 참석한다. 아직도 모두 현역이다. 건축일 세탁일 식당용역, 덕소에 아파트를 사둔 친구는 월세를 120만원 받는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한다. 더 많이도 받을 수 있다고. 이전 라디오에서 그랬다. 자랑질, 들어주고 이웃하느냐 아니면 거부하고 고독해지느냐, 빌라 연립 시행하는 이는 이전부터 전원주택 지어놓고 배낚시는 전문가 수준이 되었고, 두 친구는 노동으로 먹고 산다. 이 시점의 공통대화는 비슷하리라. 부인 얘기 자식 얘기 아직도 종사하는 일 얘기.

어느 노래 가사에 그런 게 있던가?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그래 한 때 삶의 무게 견디지 못해 긴긴세월 방황속에 세월을 묻었다. 속절없는 세월 탓해서 무얼해~” 지금도 방황 속에 세월을 묻는 이도 있고, 성실히 육체노동으로 살아 온 이도 있고, 세탁비 너무 과하게 받아서 지옥 갈 것 같다며 자책(?)하며 사는 이도 있고, 소위 집장사하면서 부를 쌓은 이도 있고...

그랬다. 부정직하게 부를 축적하거나 직원들 착취해서 자본주의의 승리자(어쩌면 실패자 일 수도 있겠지만)가 된 이도 있다. 우리 사회는 그것을 경영이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속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는 그건 경영이 아니라 노동의 착취요 헝거리 자본주의 최하급 경영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폭력으로 본다. 그러나 생계유지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어느 친구의 학교재단이 그랬다. 교직원의 노동착취로 방학도 거의 주지 않고 무한경쟁시켜 학교 순위 평가 최고등급 유지해 가는, 그건 노와 사의 고용계약이 아니라 생존을 담보로 하는 노예계약 착취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은 권위주의 말소라는 게다. 정치권의 거짓말과 현재 남북간의 강대강의 대결, 이런 정책 기조가 그래서 거꾸로 정책 아닌가 하는 게다. 힘의 논리 아니고 대화 협상 화합과 평등이 사회적 분위기로 가야만 하는 것이라고.

그 공허한 ‘자유’ 말로만 수십 수백번 외치면 무엇하리. 월세를 평생 백만원 내야 하는 세입자와 받을 수 있는 임대인을 합법화하고 장려하는 것이 자본주의다. 그렇게 자본을 기준으로 사회가 연결되는 사회는 질 들레즈의 말처럼 ‘비정상이 정상’이다. 그렇게 깡마르고 건조한 자본주의 사회, 인간성 인간미 인간의 존엄이 자본에 짓밟힌 사회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약자들의 생존적 소망 아니던가. 이런 식의 논조라면 또 공산사회주의라 한다. 아니다. 노사관계가 자본에 의해 종속되지 않고도 건강한 사회 만들어 가는 서구사회도 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아직도 깜깜한 밤이다.

여하튼 우리는 그런 세월 살아 온 것. 월남전 참전한 남진 세대보다는 늦지만 군대도 못 간 분들이 국군통수권자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나름 긴 군생활의 고통을 맛본 세대인 것이다.

물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은 꽃’이 되어야 할 나이이기도 하다. 사회적 불평등과 자본중심의 탈 인간적 사회에 대해 분노하는 시기가 지나 삶의 본질을 바라봐야 하는 나이. 바이든은 80에도 미국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다. 그러니 사회적 관심이야 놓을 수 없지만 그것에만 올인해서 분노 수치 올리기 시작하면 그건 아직도 미흡한 영혼이리라.

맞다. 자유가 필요하다, 신체의 구속 가난의 구속 그런 물질적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평화 욕망의 소멸, 경이로움에 감사하는 시간과 능력 말이지.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거부하는 관념적 자기체면적 논리 말고 그것 수용하고 순화시키는 통섭적 온전성(Integrity)의 인간 말이지, 분노하지만 분노하지 않는 인간.

어떻게 늙어 갈 것인가?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고 잘 늙는 방법이 뭔가? 어떻게 향기 나는 노년이 될 것인가? 우상이나 허상에 빠지지 않는, 오만이나 자만 고정관념이나 독선에 빠지지 않는, 미소와 포용과 달관의 노년으로 가는 길은 무엇인가?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고 가을바람처럼 자기를 비워가는 노년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사회를 통찰할 수 있는 식견은 어떻게 가질 것인가?

가끔은 유행가 가사만큼 공감 가는 것이 없다. “바람이 분다. 길가에 목로집. 그냥 가긴 서운하잖아. 나 한잔 자네 한잔. 때로는 깃털처럼 휘날리며 때로는 먼지처럼 밟히며. 밤늦은 골목길. 젖은 그림자 바람에 밀리고~”

막걸리 몇 잔에 낙지전골 연포탕 그렇게 가을밤을 보내고 커피 한잔으로 마무리하고 헤어지는 송해길 종로 3가. 낙원상가 근처의 붐비는 골목을 빠져나오니 유난히 밝은 달이 빌딩 사이에 떴다. 별빛마저도 빛나는 가을밤의 서정과 서사가 송해길에 어우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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