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어린 손주와의 약속
[정용우칼럼] 어린 손주와의 약속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11.0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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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어린 아이와의 약속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중국 고사 한 토막을 소개한다. 네이버 창에 들어가 ‘증자의 약속 철학’이라고 치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춘추시대 공자의 제자인 증자는 약속과 신뢰를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증자의 아내는 어느 날 시장에 가려고 하는데 어린 아들이 따라가겠다고 생떼를 쓰자 아이를 달래려는 마음에 무심코 약속을 하게 됐습니다. “얘야, 엄마가 시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면 저녁에 돼지를 잡아서 맛있는 요리를 해주마.” 물론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장에서 돌아와 보니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증자가 마당에서 정말로 돼지를 잡고 있었고, 어린 아들은 신이 나서 옆에서 팔짝팔짝 뛰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행동에 깜짝 놀라 말렸지만 증자는 기어코 돼지를 잡으며 말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흉내를 내고 배우게 마련이오. 그런데, 당신은 어머니로서 아들을 속이려 했소. 어머니가 아이를 속이면 그 아이는 다시는 어머니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니, 훗날 어떻게 아이를 가르치겠소?”

나도 내 어린 손주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이 사는 대전에 다녀왔다. 지난 추석 연휴 때 내가 사는 시골을 찾아온 손주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10월 말이 되면 초등학교 1학년인 큰 손녀의 생일인데 내가 생일파티는 물론이고 생일선물도 사주기로 약속했다. 지난해 생일 때는 대전 롯데호텔에서 가족식사모임을 하면서 축하해주었는데 이번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라 친구가 많이 생겨 따로 저들끼리의 생일파티를 갖기로 했단다. 손녀가 많이 컸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가족축하모임을 생략하자니 어쩐지 서운한 것 같아 따로 간단한 식사모임이라도 갖기로 했다. 내가 주인공에게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한우곰탕이란다. 나는 어린 애가 참 이상한 음식도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나 그 또한 기특하여 한우곰탕집을 찾았다. 식사 중에 손녀가 물었다. “할아버지, 그 전에 약속한 장난감도 사주는 거지?” 나는 그렇다고 했다. 물론 이것은 누나 생일선물 때문에 덤으로 얻어 걸친 손자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식사를 하면서 어떤 장난감을 사길 원하는지 손녀, 손자에게 물었다. 손녀는 비밀이라고 했고 세 살배기 손자는 청소차를 사고 싶다고 했다. 이제까지는 굴착기만 보면 사족을 못 썼는데 이번에는 청소차란다.

우리는 식사 후 장난감 가게로 향했다. 가게 규모가 엄청나게 큰 만큼 장난감도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다. 장난감 가게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되는 모양이다. 손녀는 초등학생인지라 그 흥분을 조심스레 갈무리하면서 자기가 사고 싶은 장난감을 찾아본다. 그런데 손자는 아직 어린지라 들떠 있는 기분을 감추지 못한다. 이것저것 만져 보며 돌아다니더니 드디어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들이 진열되어 있는 코너를 발견한다. 굴착기와 청소차 등이 진열되어 있는 코너. 사고 싶은 것이 청소차라 해서 우리는 긴장했다. 손에 잡은 청소차가 클뿐더러 고기능이라 값이 만만치 않았다. 엄마는 재빨리 아이 손에서 청소차를 뺏어서 진열대에 올려놓고 손잡아 이끌고 바로 옆에 있는 굴착기 코너로 향했다. 어린 아이인지라 조금 전의 청소차는 잊어버리고 이내 굴착기에 빠져든다. 집에 가면 굴착기가 여러 대 있지만 손자의 굴착기 사랑은 끝이 없다. 이게 좋다는 엄마의 권유에 따라 만족한 듯이 굴착기 하나를 가슴에 안고 계산대로 향한다. 손녀는 끝내 비밀의 장난감을 찾아내지 못한 채 같이 계산대로 향하고. 그 제서야 점원에게 비밀의 장난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점원 이야기가 지금 품절상태라 연말이라야 출고된다나. 할 수 없이 우리는 연말에 다시 들르기로 약속했다.

이로써 나는 손녀의 생일과 관련해서 한 약속을 지켜낸 셈이다.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하늘을 쳐다보니 눈이 시리도록 맑고 푸르다. 이 깊어가는 가을, 그 정취를 즐기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헤어진 후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계족산으로 향했다. 아내와 함께 계족산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통화 끝에 장난감 이야기다. 손자가 조금 전에 산 굴착기 잘 가지고 놀더니 갑작스레 아빠한테 장난감 가게 다시 가지고 한단다. 자기 사고 싶은 것은 이게 아니라고 하면서. 우리 부부는 산책을 멈추고 다시 장난감 가게에 들렀다. 손자가 좋아하는 청소차를 가격 불문하고 사버렸다. 아이에게 전달할 때 엄마가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해야지.”라고 말한다. 아이는 그저 감격스러워 내 양다리를 붙잡고 묵념하듯이 가만히 서있었다. 어린 아이와의 약속 그리고 약속 지키기. 신뢰와 사랑의 마중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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