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 세상엿보기]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김용희의 세상엿보기]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 김용희 시인·수필가
  • 승인 2022.11.0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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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또다시 마른 물음을 울어야 하나. 수백명의 아이들을 한꺼번에 보낸 후 그 기억이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참담한 일이 발생되었다. 온 국민이 우울하고 또 사회적 집단적 트라우마에 빠져야 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또 발생하였다. 어떤 진단으로도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비통한 사건이 다시 일어났다. 왜 어찌 늘 이리 꽃다운 생명들이 들꽃처럼 스러져 갈까. 왜 이른 봄 내린 폭풍우에 강물에 휩쓸려가는 새싹들처럼 속수무책으로 사라져 가야할까?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어처구니없게도 다수의 어린 생명들이 피기도 전에 져야 하는가? 국가경쟁력 10위의 국가, 단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격상 된 나라. 그러나 왜 이렇게 내부적으로 관리능력 부재와 안전망 소멸의 국가로 낙인되어 가고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사건의 원인은 어쩌면 사회적 오류, 사회적 시스템이나 보편의식의 부재로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역사와 문화, 전체적인 정치와 사회구조 속에서 그 원인과 해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철저한 분석과 진단,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문제와 미성숙성, 외형적 성장과는 달리 내적 치밀성과 성숙성의 결여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자살률 1위, 출산율 최하위, 산재율 1위... 이런 지표들은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고 외형적으로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골 깊은 문제들은 우리 사회는 그동안 숨겨오고 있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 하더라고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 사회적 흠결과 하자를 왜 꼭 아이들이 감당해내야 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정부 당국자의 말처럼 어쩔 수 없었던 사건이라고는 하지 말자. 그렇게 변명하고 자위하면 다시 또 이런 사건이 일어나도 어쩔 수 없다는 자괴감이나 절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이 분열된 사회의식 탓이라고도 하지 말자. 그렇게 사회와 환경에 탓을 돌리면 그것은 국가행정의 자기변명과 자기보호의 몸부림으로 밖에는 안보인다. 그리고 사후 수습에 당연히 만전을 기해야 하지만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원인 규명, 책임소재 파악, 체제 혹은 사회보편적 의식과 분위기의 격상이다.

어느 분이 이전 참사 때 3년을 울었다는데 다시 얼마를 더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댓글이 가슴을 멍하게 한다. 이번 사건도 사건이 일어난 자체를 부정하고 회피하고 싶을 만큼 참혹한 일이지만 그리고 그것이 깨어나면 잊혀질 한 밤의 꿈으로 돌리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에, 부정되지 않는 현실이기에 우린 또 그 모두의 고통을 직시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국가의 기본적인 목적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호 아닌가? 왜 국민들이 왼종일 흘릴 것은 눈물뿐이어야 할까? 차마 티비를 볼 수 없어 자꾸 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까마득한 것인가? 다중이 집결하는 행사는 많다. 불꽃축제, 광화문이나 시청 집회... 국가권력은 누리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이런 다중 집회에서 국민안전을 우선시 하라고 준 것 아닌가? 그것이 행정부가 행정안전부 된 이유 아닐까? 이태원의 좁고 경사진 골목에서의 집합적 놀이는 어쩌면 예상할 수도 있었던 사고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국민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성과지상주의, 실적지상주의, 말초적 자본과 말초적 권위가 사회의 보편적 가치관이 된 사회, 좋은 차 좋은 집, 사회적 권력이 타인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는 사회, 정권이 상대를 정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사회... 그렇게 외형과 강권만 성장하고 하부구조가 부실하게 흔들리고 있는 사회, 그 위에 집을 지은 사회, 안전성과 보장성이 없는 카카오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 구조 아닌가?

사회적 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한다. 정치나 권력을 수임받는 것이 어쩌면 부담이 되는 사회, 부에 따라서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의식이 더욱 중요한 가치기준이 되는 사회. 무엇보다 권위적 분위기에서 탈피하여 각자의 인격이 존중되는 민주적인 사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정치적 구호가 되거나 성과와 성장의 수단이 되거나 권력의 대상이 되지 않고 실제적으로 목적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규범적 당위론적 얘기는 선언적일 뿐 힘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당사자들이 위나 아래나 대상이나 법률 등의 탓으로 돌리며 유체이탈화법을 쓰는 것은 강력 제지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지금처럼 정치적 데스매치하면서 사회의 중심점을 뺏어버리니 이런 민생축제는 관심 놓아버리는 것 아닌가. “정치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글을 쓴 지 꼭 일주일 밖에 안되었는 데. 그들 간의 감옥놀이 사생결단으로 국력과 관심을 모두 낭비하니 정작 돌봐줘야할 사회의 일상이 이렇게 망가지는 것 아닌가. 임명권자만 쳐다보는 관료주의 사회 되니 이렇게 아래 국민들은 방기해 버리는 결과가 나타난 것 아닌가 말이다.

현시점에서는 이런 사건 앞에 서면 국민이 흘릴 수 있는 것은 눈물뿐이다. 가슴이 먹먹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다. 언어가 막히는 것이 이러한 사고 현장에서의 누구나의 심정이다. 정치인들이여 제발 정쟁 그만하고 민생을 보살펴 달라. 국민의 일상과 삶을 보살펴 달라. 국가의 존재 이유는 당신들의 권력다툼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함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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