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 세상엿보기] 이상한 가을
[김용희의 세상엿보기] 이상한 가을
  • 김용희 시인·수필가
  • 승인 2022.11.2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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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은퇴하고 두번째 가을. 시간에 쫓기던 시절에서 지금은 시간에 밀려가는 날들. 이제 할 일이라는 것이 늙어가는 시간 앞에 서는 것 외에는 어떤 사회적 효용성도 없다는 느낌은 삶을 매우 허허롭게 한다. 사람은 비록 그것이 한갓 꿈이라 할지라도 꿈으로 꿈을 꾸어야 삶의 의욕과 생기가 돈다. 그게 삶의 에너지인 것이겠다. 그러나 소비되는 시간 위를 밀려가면...

그러지 말고 다시 꿈을 꾸라 한다. 괴테도 60이 넘어서 파우스트를 썼고 칸트도 이성론을... 그건 극소수 특별한 분들의 예외다. 일반인들은 이제 인지기능이 감소한다. 사물을 이해하고 파악하고 조합하는 기능.

해서 이제 세상적 효용성의 기준이 아니라 드디어 존재 앞에 서는 나이가 되어보자. 은퇴란 그런 기회요 미션이다. 자연 앞에 서고 사람 앞에 서는 것, 드디어 그것들의 존재론적 본체 실체와 만나는 시간으로.

이제는 안타까움이나 밀려난 자의 소외로, 혹은 상실감이나 버리지 못한 미련의 끝자락에서 계절의 뒷골목에 부는 바람으로 살 것이 아니라 또다시 꿈을 꾸어보자. 사회적 꿈 욕망의 꿈이 아니라 존재의 꿈, 다시 무위의 꿈, 관조의 꿈, 수용과 이해와 포용의 꿈 말이지. 그것이 무엇일지라도 나만의 창(窓)을 만들고 가을날 물들어 가는 단풍잎을 바라보고, 친구의 주름도 바라보며 바람 한 점에도 민감해지는 시간으로...

감사는 두 배로 늘이고 고통은 반으로 줄이는 그 무디고 감각적인 시간으로 말이지. 인간은 누구나 끝내 홀로서야 하는 것. 그 고독의 연습 말이지. 사실 이제 무슨 사회적 일을 하래도 썩 내키지도 않는다. 시간의 소비자가 되는 것에 길들여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섬강에 비치는 오후의 햇살이 평화인 것이요 자연이 만들어 내는 동양화 한 컷이 신비로운 특혜로 보여지도록. 이제 좀 더 성숙해지는 계절이 되기를, 사람사는 모습, 감정의 통로, 인간적 행복, 그리고 한 갓 꿈일지라도 그 꿈의 현시성과 영원성이 주는 의미를 더 깊게 알기위해...

낮에는 매월 한 번씩 만나는 학생들과 시모임을 했다, 이번에는 시의 ‘서술’과 ‘묘사’를 구분해 보고 누구나의 삶이 주는 아픈 ‘감정의 상처’들에 대해서도 시로 나눠봤다. 그리곤 넷이서 대학로 어느 지하식당에서 순두부 6천원에 막걸리 두 병까지 먹고 나오니 가을비가 제법 많이

쏟아졌다. 저녁에는 조카 초대로 이산갈비, 고기까지 구워주는 조카의 구수한 입담이 또다시 행복의 겹을 더한다.

비록 구멍 뚫리고 허허로운 시간일지라도 그렇게 가을비 오는 거리에서 여울지는 시간들이 또 하나의 즐거움인 게다. 사는 게 뭐 별건가 이리 작은 것들에 감사 만족하는 게지. 가을비가 내렸고 불고기에 막걸리에 두부김치. 우린 그렇게 작은 기쁨들의 파편으로 그냥 꿈으로 사는게지...

그런데... 왜 현인 선생의 ‘서울야곡’ 가사가 계속 귓가에 맴돌까?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그라스엔 눈물이 흘렀다~ 이슬처럼 꺼진 꿈속에는~ 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빈 거리에 버린 담배는~ 샛별같이 내맘같이 꺼지지 않더라~~~”

가을 나들이로, 혹은 젊은 이웃들과 풍경으로 음식으로 혹은 술 한잔으로 달래는 시간들이 어쩌면 빈 가슴을 애써 외면 하려는 슬픈 몸부림이었던가? 아니다 가을은 안으로 안으로 더욱 성숙해지는 계절일게다.

여하튼 이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인 것만은 틀림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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