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돼지국밥과 정치
[정용우칼럼] 돼지국밥과 정치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11.2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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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나처럼 어린 시절을 이곳 시골에서 보냈던 사람들은 어른이 되고 난 후 우리가 예전에 겪었던 경험담을 주고받을 때는 종종 흥분한다. 초등학교 동창들이나 형제자매가 모여 이 이야기들을 나눌 경우,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반성장에 돼지새끼 팔러 가는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

그 당시는 돼지새끼를 집집마다 키웠다. 시골에서 중요한 가계 수입원 중의 하나 였으니...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돼지가 새끼를 낳아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시장에 내다팔아야 할 만큼 성장한다. 요새 사람들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돼지새끼를 팔기 위해서는 이들을 리어카에 싣고 6㎞ 떨어져 있는 반성장으로 가야 한다. 만약 돼지새끼를 팔아야 하는 시점이 겨울이라면 이들을 운반하는 게 여간 고생스런 일이 아니다. 날씨도 추운데 리어카를 앞에서 끌거나 뒤에서 밀어야 하는 것 자체도 고생이거니와 혹시 비탈길에서 돼지새끼가 리어카에서 탈출이라도 하는 때에는 이놈을 잡기 위해 한바탕 쇼를 벌여야 한다. 이런저런 고생 끝에 무사히 반성장에 도착했어도 그날 돼지새끼 값이 형편없을 때는 다시 집으로 데려가야 하는 불상사도 생긴다. 이 수고를 마다하기 위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값이면 파는 것이 상책이다. 생산자 입장에서 기분은 별로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돼지새끼를 팔고나면 우리 일행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다. 시장 변두리에 자리 잡은 돼지국밥집이다. 어린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국밥 한 그릇, 어른들은 거기다 소주 한 잔까지 곁들이고 나면 그간의 수고로움도 즐거운 추억이 되어 가슴에 묻히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6Km의 장정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때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옛날 추억의 음식점들이 그 자리에서 그 맛을 유지한 채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니... 지금도 반성장에 가면 여러 돼지국밥집을 만날 수 있다. 반성장도 현대화작업을 거쳐 깔끔하게 단장되었고 국밥집도 제법 세련되게 단장되었다. 그러나 어느 집 할 것 없이 돼지국밥은 예전 그대로 맛날뿐더러 손님도 많다. 그 맛이 전국적으로 소문나서 EBS나 MBC 등으로부터 맛집 인증도 받았다. 그래서 어느 돼지국밥집을 찾아가도 무방하지만 나는 EBS 맛집 인증을 받은 곳을 단골로 삼아서 자주 드나든다. 사장 아주머니가 걸쭉하니 입담이 좋고 품도 크기 때문이다. 일전에 iMBC 사장을 역임한 동창친구랑 이 집을 찾아가서 “이 친구가 iMBC 사장을 역임한 바 있지만 아주머니 좋아 MBC 인증 맛집 안 가고 내 단골집인 이곳으로 찾았다.”고 했더니 기분 좋게 수육 한 접시 추가 서비스해줄 줄 아는 아줌마다. 어쨌든 이 국밥집은 돼지고기 음식을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는 추억의 맛집이요, 가성비 높은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해주는 음식점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이런 맛집이 내 집 가까이에 있어 참 좋다. 집밥 싫증 나 외식 한 끼 하고 싶을 때는 나 혼자 100원 짜리 순환버스를 타고 와서 먹기도 하고 지인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돼지고기 요리를 좋아한다면 대개 이 집을 찾는다.

내가 자주 가는 이 집 돼지국밥은 구수하고 뽀얀 국물이 일품이다. 아마 거기에 자기들 나름의 비법이 있는 모양. 이 국물에 쌀밥과 야들야들한 고기 몇 점이 들어가고 그 위에 약간 간이 된 식재료를 얹어준다. 우리 지역에서는 이 식재료를 ‘정구지’라 부른다. ‘정구지’는 돼지국물이나 고기 못지않는 돼지국밥 필수 식재료다. 우리나라에서 돼지국밥을 제일 즐겨먹는 부산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 열 가지 가운데 첫 번째가 ‘돼지국밥에 정구지 무침 안 주기’라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다. 이 우스개소리는 우리 지방 사람한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으려나. 하여튼 돼지국밥에 ‘정구지’ 무침 없다는 것은 ‘앙꼬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

그런데 이 ‘정구지’가 ‘부추’라고도 불린다는 사실. 내가 이곳 고향을 떠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여 처음으로 타지방 친구들과 함께 돼지국밥을 먹을 때 비로소 알았다. 우리는 서로 ‘내가 맞고 너가 틀리다’고 하면서 언쟁 아닌 언쟁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사 두 용어 모두가 표준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가가 아니다. 이 식재료가 첨가되어 돼지국밥이 맛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각 당이 선택한 정책이 그 이름과 내용은 다를 수 있지만 서로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고 하면서 다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정책이 수립 시행됨으로써 일반 국민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돼지국밥 필수 식재료인 ‘정구지’ 또는 ’부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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