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근칼럼 東松餘談] 기자와 기레기
[하동근칼럼 東松餘談] 기자와 기레기
  •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승인 2022.11.2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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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이 아침 조회 때 하신 훈화 가운데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말씀이 있다. “부모님이 뭐라고 꾸중을 하면 그걸 듣고 나갈 때 방문을 꽝 닫고 나가지 말라”는 요지로 기억하고 있다. 왜 그러냐면 방문을 꽝 닫고 나가는 행위 그 자체는 기실은 부모님을 때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 교장 선생님의 훈화였다. 어린 나이에 무슨 이유인지 지금도 그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내게는 매우 실감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 시점에 부모님에게 혼이 나고 방문을 거칠게 닫고 나간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유년시절의 기억이다.

최근에 대통령실을 출입하고 있는 모 방송사의 담당기자가 도어스텝핑을 끝내고 집무실로 들어가는 대통령의 뒷등에 대고 출입기자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언행과 난동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해당 방송사와 대통령실의 관계가 불편해지고 여기에다 대통령실이 역대 어느 대통령도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고, 시도조차 하지 못한 출근길 도어스텝핑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사태를 보면서 소환된 것이 유년시절 중학교 교장 선생님의 훈화였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기준을 적용하면 그 기자는 대통령에게 간접폭행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주변이 다 들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따지듯이 “뭐가 악의적이냐?”고 고함을 지른 것은 직접 대놓고 따지진 않았지만 대통령이 들으라는 의도에서 한 행동이 분명하다. 취재 행위가 아니라 정치행위에 해당한다. 출입기자가 취해서는 안 되는 덕목 중의 하나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는 자신이 소속된 언론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대통령실을 출입할 수 있을 정도면 그 회사에서는 속된 말로 최고로 잘나가는 기자다. 정치 감각이나 취재 능력도 뛰어나고 기사작성이나 리포트 수준도 다른 기자들의 귀감이 되는 정도로 실력과 인품이 훌륭하지 않으면 대통령실 출입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대통령실 출입기자는 해당 언론사의 얼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문제를 일으킨 방송사의 출입기자의 언행을 보면서 새삼 느껴지는 것은 그는 우선 자신이 소속한 회사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해당 언론사는 출입기자를 당장 교체해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그의 언행을 옹호하거나 칭찬하고 있다면 ‘그 방송에 그 기자’라는 시청자의 따가운 눈총과 외면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 편파방송에 매몰되어 있든지, 아니면 공정·객관보도를 도외시한 지 이미 오래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사태는 해당 방송사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중앙 일간지 모두가 일제히 대통령의 도어스텝핑 중단사태를 사설로 거론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재개되길 희망하고 있다. 일부 신문은 해당기자의 행위를 질책하는 한편으로 도어스텝핑의 중단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만큼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텝핑은 국민과의 소통이란 차원에서 한국 언론사나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이정표이자 시금석이 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도일 수도 있다. 일부 신문은 대통령실의 편협한 결정이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지만, 보다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도어스텝핑이 정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소란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사안이기도 하다. 여기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대통령이 공식 업무를 수행하는 자리에 출입기자가 슬리퍼 차림으로 현장에 나타났다고 하니 이는 주객이 전도된 몰상식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대통령실의 주인은 대통령이지 출입기자가 아니다. 객이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니다. 기자는 기사로 말을 해야 하고, 기자가 품격을 잃으면 ‘기레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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