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손녀의 눈물
[정용우칼럼] 손녀의 눈물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12.0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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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입동이 지난지도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우리 집 화단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도 상록수를 제외하곤 거의 다 잎사귀를 떨구어 완전 나목이 되었는데 유독 목련만 아직 잎을 달고 있다. 목련은 잎사귀가 사람 손바닥보다 커서 눈에 확 뜨인다. 잎사귀가 커다보니 바람이라도 조금 불면 잔디밭으로 날려 이리저리 뒹군다. 며칠 있으면 이 목련마저 잎사귀를 완전히 떨구어낼 것이다. 그러면 나는 마지막으로 우리 집 주변에 흩어져 있는 낙엽들을 깔끔하게 거두어내야 한다. 이 목련 잎을 거두어내면서 나의 가을은 끝이 난다. 이 가을의 끝자락에서 지난날을 돌이켜 본다, 누군가가 가을은 상실과 이별의 시기라고 했다. 아마 이 낙엽들 때문일 게다. 서늘한 기운과 적막한 분위기에서 잎이 떨어져 나간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노라면 상실감과 더불어 감상적이 되어 울적한 기분도 들게 된다. 그러니 우수의 계절이라고 해도 되겠다. 우수의 계절에 걸맞게 올해 나의 가을은 유별나게 침침하고 음울했다. 내가 사랑하는 두 분의 죽음 때문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노래 ‘천 개의 바람이 되어’(A Thousand Winds)에서처럼 매제와 이모님의 영혼이 바람이 되어 나를 어루만져주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허탈해하고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니...

10월에 돌아가신 이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9월에 돌아가신 매제도 나보다 연장자다. 이렇게 되다보니 이젠 내가 형제자매들 중 최고 연장자가 되었다. “이제 다음은 내 차례다.” 이런저런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자의 독백인지도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과 직접 맞닥뜨리면서 회한에 젖어 나도 모르게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다. 이 말이 어느 날 딸가족모임에서 지나가는 대화거리가 되었던 모양. 마침 그때 주변을 서성거리던 내 손녀 귀에 이 말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 순간 손녀가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고 애 엄마(딸)가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손녀의 하삐(우리 집에서는 할아버지를 이렇게 부른다) 사랑이 이렇게 크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돌이켜보니 유치원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손녀가 유치원 수업 도중 펑펑 울길래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하면서 담임 선생님이 애 엄마(딸)에게 전화를 했더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유치원 수업 중에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라는 약간 단조의 노래를 듣는 시간이 있었다는데... 인터넷에 들어가 가사를 찾아보니 이러했다.

길고 커다란/마루 위 시계는/우리 할아버지 시계//구십 년 전에 할아버지 태어나던 날/아침에 받은 시계란다//언제나 정답게/흔들어주던 시계/할아버지의 옛날 시계/이젠 더 가질 않네/가지를 않네//구십 년 동안 쉬지 않고 똑딱똑딱/할아버지와 함께 똑딱똑딱/이제 더 가질 않네/가지를 않네//언제나 정답게/흔들어주던 시계/할아버지의 옛날 시계/이젠 더 가질 않네/가지를 않네//구십 년 동안 쉬지 않고 똑딱똑딱/할아버지와 함께 똑딱똑딱

이 시계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시간을 기억하는 내용인데 그 내용 때문인지, 음정 때문인지 슬픈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담임 선생님이 왜 우냐고 그랬더니 ‘우리 하삐는 안돌아가셨다’고 대답하더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감회가 솟구쳤다. 키운 정이 사람 간의 관계를 이토록 친밀하고 감동스럽게 할 줄이야. 손녀가 태어날 즈음, 엄마는 서울특별시청 직원으로 근무했고 아버지는 환경생태학 박사과정 말미 논문 준비에 여념이 없었기에 손녀 육아는 아내가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 아내를 도와주기 위해 가끔 안아주는 것이 내 역할의 전부이긴 했지만 자꾸 안아 어르다 보니 족저근막염이 생겨 고통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새 생명을 키워낸다는 보람에 그저 행복했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렇게 세월은 흘러 손녀는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제법 많이 컸다. 이젠 내 이런저런 병고도 안다. 병고가 심해지면 죽는다는 것도 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상실감. 손녀가 죽음에서 연유하는 이 상실감을 제대로 알까마는 그래도 죽음이 우리의 관계를 모두 끊어버린다는 것쯤은 아는 모양. 그래서 하삐가 죽는다는 것은 슬프고도 슬프다. 하여 하삐의 죽음 이야기만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우리 서로 살아오면서 맺어진 깊은 정 때문이다. 진실한 감정, 그 느꺼운 마음에서 솟아나는 눈물. 이러니 그냥 운다고 할 수 없다. 눈물은 흘리되 가슴으로 우는 울음이다. 가슴으로 우는 울음은 손녀 가슴이 따뜻해질 때까지 말없이 꼭 안아줘야 멈추리니... 손녀와 하삐 간 지고지순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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