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 세상엿보기] 새는 집을 두채 짓지 않는다
[김용희의 세상엿보기] 새는 집을 두채 짓지 않는다
  • 김용희 시인·수필가
  • 승인 2022.12.2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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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산새부부가 둥지를 짓고 4개의 알을 품어 새끼 두 마리가 태어났다. 부부간 서로 역할을 분담하여 드디어 새끼들을 둥지에서 떠나보내는 훌륭한 미션을 완성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꽤나 재미있다. 전생후생이 어떻고 자신을 죽인 자를 찾아 복수하는 기이한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이런 허구적 사실에 매료되는 것이 인간이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인간은 스토리 중심으로 돈다”고 김영하 작가가 말한다. 재벌의 막내로 다시 태어난 주인공이 그 재벌을 파괴시켜가는 함의는 여러 가지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다. 자본주의 사회를 고발하고 이권의 첨두에 서는 정치권을 근본적으로 적시하고 재벌사회의 승계구조나 그들간의 욕망의 스크럼을 확대시켜 조명한다.

인간은 사실보다는 허구에 매료된다. 역사도 정사(正史)를 읽지 않고 야사(野史)를 읽는다. 진수의 삼국지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읽는 이유다. 삼국지연의는 3세기 삼국지 보다 1100년 후에 적힌 소설이다. 홍길동전은 홍길동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무술을 구가한다. 역사는 그렇지 않다. 임꺽정도 녹두장군도 정도령도 홍경래도 모두 관군이나 밀정이나 현상금 도둑들에 피살되거나 제거되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역사에 집중하지 않고 소설 허구 스토리에 집중한다.

웹소설의 이런 허구적 상상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그건 약자와 사회적 진실 그리고 인간욕망의 본질에 대해 꼬집음으로써 인간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순기능이 있겠지만 독자로 하여금 사회현실을 외면하고 비현실적 상상으로만 치닫게 하는 역기능도 있으리라. 요즘 젊은이들이 현실을 똑바로 보려고 하지 않는 경향, 진리 자유 정의 같은 가치는 이제 박물관 소장품 정도로 보게 만드는 역활성화 기능도 있으리라. 웹소설로 얼마를 벌 수 있느냐의 자본주의 틀 내의 축재수단으로서의 작가역량이란 것이 현실적이란 게다.

어벤져스, 아바타 왜 이런 부류의 컨텐츠가 최고의 흥행물이 될까? 인간은 왜 말초적 감각적 허구에 집중하는 것일까? 그게 벽 같은 현실 앞에서 절망한다는 시위행위일까? 격하게 보면 99프로가 1프로를 위해 조직화 된 것이 자본사회다. 이건 다산이 국운이 소멸되어가던 조선 말에 혼신의 절규로 외치던 나라에 대한 걱정이다. 다산이 1호가 99호의 토지를 뺏고사는 현실과, 소설을 패관잡기로 경계해야 한다고 우려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산새부부가 알을 부화시켜 새들을 길러내는 그 생태적 본성이 인간에게도 욕망없이 구조화되면 좋지 않을까. 새는 집을 두 채 짓지 않는다. 천적을 두려워할 뿐. 천적이 없는 인간 종이라 스스로 천적이 되는 건가. 그 욕망의 뿌리는 왜 소멸될 수 없는가?

인간! 그 인간은 누구인가? 욕망의 포로? 그 욕망을 쫓다가 지쳐서 시간 앞에 굴복하는 존재인가?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선 내 누님같은 국화. “간밤에 네가 피려고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그리도 울고 서리 비바람도 그렇게 몰아쳤다”고 외친 그 시인도 친일의 의구심을 받으니 그렇게 핀 국화라면 그것도 소설일 뿐. “푸른 산빛을 깨치고 차마 떨치고 간” 만해의 연인에 대한 고백이 진실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니 겨울밤이 늘 길다. 긴긴밤에 부엉이나 울어 그 적막을 더하던 옛 시골의 정치(情致)가 서정이 그립다. 왕왕대는 정치권과 가십성의 티비와 일상의 가벼운 놀이나 신변잡기 혹은 얕은 인문학 놀이까지도 인간시간의 소멸 도구들일 뿐. 이 겨울 다시 본질 앞에 서고 싶다. 그게 인간의 존엄성 아닐까? 허구 욕망의 옷을 입고 랜선을 통해 전달되는 뿌리없는 이 시대에 갈증들. 중천에 뜬 겨울달이 청초하게 맑게 보이는 것은 이 시대가 어쩌면 이리도 흐려지고 부유하기 때문 아닐까.

그래! 남도의 시인 유치환의 갈증 앞에 서자. 어차피 외면 되지도, 부정되지도, 떨쳐버릴 수도 없는 그 갈증이라면 어쩌랴. 겨울산이, 겨울들판이 좋은 것은 그들이 어떤 수식도 가식도 없이 벗은 몸으로 서 있기 때문 아닌가. 봄의 설레임도 여름날의 치기도 가을의 성숙마저도 걷어내 버린 겨울산과 들녘.

새는 집을 두 채 짓지 않는다. 화폐도 만들지 않고 해지면 둥지로 날아들고 해 뜨면 먹이활동을 한다. 인간만이 스스로 탐욕의 피해자가 되어 드디어 지구를 동물들도 생존하기 힘든 환경으로 만들어 간다면, 인간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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