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붕어빵
[정용우칼럼] 붕어빵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3.01.1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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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어느 날인가 중학교 동창 카카오 단톡방에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 한 편이 올라왔다. 류시화씨의 책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서 발췌한 글이란다. 우리나라 최고 여배우 중 한 분이신 김혜자씨와 작가 류시화씨의 네팔 여행에서 있었던 가슴 따스한 이야기 한 토막.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혜자씨와 류시화씨가 카트만두 외곽의 유적지에 갔다가, 길에서 장신구들을 펼쳐 놓고 파는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김혜자씨가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옆으로 가서 앉았습니다. 물건을 사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김혜자씨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울고 있는 그 여인의 옆에 앉아 그녀와 같이 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말도 없이 그녀의 한 손을 잡고 말이지요. 먼지와 인파 속에서 국적과 언어와 신분이 다른 두 여인이 서로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쪼그리고 앉아서 같이 울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네팔 여인의 눈물은 옆에 앉아 우는 김혜자씨를 보며 웃음 섞인 울음으로 바뀌었으며, 이내 밝은 미소로 번졌지요. 공감이 가진 치유의 힘이었습니다. 헤어지면서 김혜자씨는 팔찌 하나를 고른 후, 그 노점상 여인의 손에 300달러를 쥐어 주었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정말 큰돈이었습니다. 여인은 놀라서 자기 손에 쥐어준 돈과 김혜자씨를 번갈아 쳐다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좌판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류 작가가 왜 그런 큰돈을 주었느냐고 묻자 김혜자씨는 류시화씨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횡재를 하고 싶지 않겠어요?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들잖아요.” 김혜자씨는 그 팔찌를 여행 내내 하고 다녔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다. 그리하여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내 조그만 위로라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대로 흉내내보리라고. 그런데 기회가 찾아오는 듯했다. 지난 가을 아내가 이곳 지수로 오면서 붕어빵 몇 개를 사왔다. 적당하게 구워진 노르스름한 색깔에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따끈따끈한 팥으로 채워진 붕어빵.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의 겨울 간식. 내가 웬 붕어빵이냐고 묻자 아내가 이야기해주었다. 진성에서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농로 입구에 이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다면서,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말을 못하는 장애인이라는 것까지. 아내는 이곳을 지나갈 때 가끔씩 들러 붕어빵을 산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내에게 제안했다. 우리도 연말에 그 아주머니에게 김혜자씨가 하신 것처럼 ‘횡재’ – 표현은 이렇게 했지만 그저 붕어빵 판매가격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으로 사주는 것일 뿐 - 한 번 안겨주자고. 아내도 나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연말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림 때문인지 붕어빵에 대한 추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한겨울을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해준 붕어빵. 일제 식민시대 우리나라에 들어 온 이후 1980년대 서서히 자취를 감추더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복고 바람이 불면서 다시 유행했다. 불황이 심해지자 늘어난 실업자들이 붕어빵 장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붕어빵틀, LPG가스 등 초기 자본금이 적게 들고 똑같은 재료에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운영하기 쉬운 점이 고려되었을 듯. 그런데 이 붕어빵이 요새 들어 다시 사라지고 있단다. 계속된 금리인상으로 연일 경기침체가 예고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 ‘불황지표’로 불리는 붕어빵이 사라지다니... 재료비 폭등 탓이라고 한다. 붕어빵의 몸값이 크게 올라 이른바 ‘금’붕어빵이 되어 버린 것. 한국물가정보가 지난 12월 14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붕어빵의 주재료는 5년 사이 평균 50% 가까이 뛰었다. 모든 게 오르는데 붕어빵값만 제자리걸음일 리가 만무하다. 고구마 크림·피자 소스·크림치즈·불닭 소스 등이 든 ‘특별한 놈’은 한 마리에 2천~3천원이나 하고, 팥으로 만든 ‘평범한 놈’도 두 마리에 천원이 기본이다. 4마리에 천원이던 5년 전에 견줘 두 배 이상 뛰었다. 더는 ‘가성비’로 경쟁하기 힘든 음식이 된 셈이다(한겨레신문). 사정이 이렇다보니 진성에서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농로 입구에서 붕어빵을 팔던 아주머니도 어쩔 수 없이 장사를 접었을 게다. 붕어빵 굽는 장치가 실려 있는 조그만 차는 그 자리 그대로 있지만 영업을 위해 시건장치가 풀려 있는 날은 만나기 어렵다. 하여 내 조그만 위로가 전달될 수 있는 기회 역시 무산되어버렸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선행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이마누엘 칸트)라고 했으니... 나 자신 그 조그만 의무를 다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찾아올까. 이른 시일 내 붕어빵 아주머니의 복귀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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