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올 겨울 광화문 글판
[정용우칼럼] 올 겨울 광화문 글판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3.01.1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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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서울에 살 때 나는 교보문고에 자주 들렀다. 읽고 싶은 책을 사기도 하고 강의 교안을 만들 때 참고할만한 내용이 담긴 부동산 관련 신간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외에도 교보문고를 찾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었으니, 교보생명빌딩에 붙어 있는 글판을 보는 것이었다. 1991년부터 30여 년을 넘게 거리를 오가는 이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오고 있는 글판. 지금은 이곳 지수로 이사를 하였기에 인터넷을 통해 이 글판을 본다.

이번 ‘겨울편’ 문안은 이렇다. “겸손은 머리의 각도가 아니라, 마음의 각도다” 이동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칼럼 ‘겸손’에서 발췌했단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너도나도 타인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자신의 소리를 내는 것에만 몰두하는 현실이지만 다가오는 새해는 겸손한 경청의 자세로 시작해보자는 의미에서 이번 문안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꼭 올 겨울 광화문 글판 때문이 아니더라도 ‘겸손한 경청의 자세’, 한 해가 바뀌면서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야 할 덕목이다. 나이 들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연륜도 깊어져 남의 얘기를 더 잘 들어줄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남의 얘기를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성격은 편협해지고, 참을성은 쪼그라들어 내 생각과 다르거나 관심사를 벗어난 타인의 말을 인내하기가 점점 버거워진다. 미국 작가 포스터 월러스가 어느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이야기한 대로 우리 자신이 이 우주의 절대적 중심이자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뇌에 디폴트로 세팅돼 있어서 그럴까.

이러한 잘못된 삶의 자세를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목격할 수 있다. 모임에 가면 남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실컷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그래도 오랜만에 만남의 장이 이루어져 반가움에 쏟아내는 말이거니 생각하면 너른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 사람을 상대로 할 경우 이러한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팬데믹과 이어진 경기침체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절실한 지금, 우리 정치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원인 역시 난무하는 적대만 있을 뿐 서로를 경청하지 않는 데 있다. 정치권력과 소셜미디어가 야합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극단적일수록 돈이 된다는 것을 학습한 일부 수익추구형 정치 유튜버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보면 남의 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외쳐댄다. 그들 유투버들이 유명세를 탈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그들의 극단적 주장, 더 나아가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 경우에도 그 주장 내용들이 마치 정설처럼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기에 충분하다. 악순환이다. 교만(驕慢)한 자들이 세상에 넘쳐나서 그렇다. 이들은 대개가 잘난 체하고 뽐내며 건방지다.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아름다운 공동체에서 행복한 삶을 이어가려면 내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미카엘 엔더의 소설 <모모>에서 모모가 그랬던 것처럼. 소설의 주인공 모모가 가진 재주라곤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은 채 동네 사람들의 말을 인내하며 열심히 들어주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일이 생길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모모에게 가봐!” 다투던 사람들조차 경청하는 모모를 통해 다시 연결된다. 모모는 그저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소외되고 힘겨운 주변 사람들에게 삶의 활기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해준다. 우리도 모모에게서 배운다. 다름에 대한 편견과 판단을 유보하는 것 또 혐오를 중지하고 이웃들의 고통과 상처를 보듬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이 같은 경청의 자세가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을 행복한 삶의 길로 이끌어준다는 것을.

그런데 아름다운 공동체 유지에 꼭 필요한 이 경청도 겸손한 마음의 자세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겸손은 자기 마음 안에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덕목을 가진 자만이 상대방의 말을 내 사고의 틀로 거르지 않고 현실 그대로 받아줄 수 있으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다. 여기서 벗어난 마음 상태에서는 진정한 경청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법. 하여 교보생명 관계자가 말했듯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겸손이야말로 진정한 경청이 이루어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올 한 해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이 하는 말에 온전히 귀 기울이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우리 모두 새해에 새 꿈을 꾸자. 함께 꿈꾸면 달라질 것이다. 믿을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우리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이 작은 변화로 세상이 좀 나아지길 기대하면서. 그래야만 이번 겨울 광화문 글판 그 의미가 살아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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