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흙
[정용우칼럼] 흙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3.03.13 13: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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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지난 겨울은 혹독했다.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날이 부지기수였으니... 그 때마다 어서 나는 이 겨울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개구리가 얼음을 뚫고 나온다는 경칩이 지나면서 풍경의 빛과 온도가 하루가 다르다. 겨울옷이 무겁게 느껴지고 몸 어딘가가 근질근질하다면 그건 봄기운 탓일 게다. 겨울이 드디어 지나가는 모양이다. 모질었던 날씨가 조금씩 풀리니 겨우내 굳었던 마음은 어느새 설레고 들썩인다. 이럴 때면 현관을 열고 나가 집 주변 화단을 한 바퀴 돌아본다. 우리 집 화단에서 제일 먼저 흙을 뚫고 올라온 상사화, 튜립 그리고 수선화 순이 얼마만큼 자랐는지 살펴본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져간다. 그리고는 평소에 마음에 두었던 나무 곁으로 다가가 본다. 아직은 겨울의 모습 그대로 고요해도 눈여겨보면 싹을, 꽃을 올리기 위해 분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수유는 곧 꽃을 피울 자세다. 속속들이 풀린 산하에 봄빛이 그득히 찰 날도 멀지 않았다.

이처럼 봄은 우리에게 꿈을 선사하는 계절이다.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하나 준비해야 한다. 논과 밭을 갈아 씨를 뿌릴 준비를 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봄의 생기가 대지를 데우면서 땅이 풀렸다. 곡괭이의 강한 힘조차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얼었던 흙이 부풀어 오른다. ‘밥처럼 부드럽다’(백점례 시인의 ‘경칩 무렵’)고나 할까. 그 위를 걷고 있노라면 푹신한 카펫을 밟는 기분이다. 이때다 싶어 나와 아내는 텃밭 작업에 들어간다. 텃밭 전체에 자라나 있는 잡풀을 뽑아내고 또 몇 개의 묘판을 새로 일구어내는 일이다. 얼마 되지 않는 넓이의 묘판이지만 내가 여름 동안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야채를 키워낼 것이다. 가로 세로 약 2미터 정도의 묘판에 두둑을 만들고 고랑을 내는 일 그리고 잔디와 풀을 베어 오랫동안 삭혀두었던 퇴비를 흩뿌리는 일. 이 작업을 하면서 흙냄새를 맡아 본다. 생명의 환희 같은 것이 가슴 가득 부풀어 오른다. 맨손으로 만져보는 흙의 촉감, 그것은 영원한 모성이요 생명의 모태다. 그래서 흙을 매만질 때는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는가. 농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손주들도 그랬다. 손주들은 흙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정말 잘 논다. 옷이 어떻게 되건 얼굴이 어떻게 되건 아랑곳 하지 않고 잘도 논다. 흙을 파고 그릇에 담고 또 부어버리고... 계속 반복하면서 노는 모습을 보면서 흙이 가진 매력을 생각해 본다. 어린아이가, 흙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이토록 좋아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것을 보면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매력은 흙 자체가 가져 있는 생명력일 터. 미세한 생물들이 그 안에 다 있다. 우리가 흙이라 할 때 그것은 무생물이 아니다. 무기물도 아니다. 그 자체가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하니 씨앗과 구근으로부터 생명을 움트게 하고 모종을 자라게 하는 것이리라. 꽃만 움트게 하고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음식물을 길러내 주니 가히 생명의 젖줄이라 할만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흙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 거대한 탄소 저장고다. 지구 토양에는 탄소 2조5000억t 가량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공기 중에 떠 있는 탄소량의 3배가 넘는다(2022.2.28.자 농민신문). 흙을 살리는 것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별로 해주는 것도 없는데 한없이 베푸는 흙. 우리는 이런 매력적이고 신비스러운 흙을 마구 대해 왔다. 별생각 없이 농약이나 제초제를 뿌려대고 있으며 비닐, 플라스틱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고 있다. 그러니 흙이 지니고 있는 생명력이 다 죽어가는 것이다. 흙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는 뭇 생명까지도 죽이는 셈이다.

3월 11일은 흙의 날이다. 흙의 날은 우리 땅과 농민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날이자 기후위기를 막고 지구를 살리는 흙을 지키기 위한 실천을 촉구하는 날이다. 농업에 종사하지 않아도, 농촌에 살지 않아도 누구나 흙 살리기에 동참할 수 있다. 친환경농산물·지역농산물을 많이 먹으면 화학제품 사용이 줄고 물류 이동에 따른 탄소배출이 감소해 흙의 산성화를 막을 수 있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는 것도 폐기물로 생기는 흙의 오염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흙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우리 후손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물려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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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성 2023-03-15 14:34:48
여기 있었네~ 좋은 글 자주 보러 올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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