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씨앗
[정용우칼럼] 씨앗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3.03.2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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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해가 정동에서 떠서 정서로 지기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추위와 더위가 고른 시기인 춘분도 지났으니 이제 봄 한가운데로 접어 들어간다. 따뜻한 봄볕에 봄꽃들도 앞다투어 꽃망울을 자랑하고 나뭇가지에 새움 돋는 소리가 토닥토닥 들려온다. 얼마 전에 뿌리를 심었던 튤립과 수선화가 새싹을 틔워 땅위로 솟아올랐다. 새싹을 틔워 솟아난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한 뿌리도 상하지 않고 심은 대로 다 올라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모든 것이 잠시도 머물지 않고 변하고 있다. 그날그날이 같아 보여도 똑같은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 봄이 뿜어내는 기운 덕택이다.

시골생활은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는 삶. 그래서 시골 생활은 ‘철’의 변화에 민감하다. 계절마다 기후의 변화를 읽어내고 그에 맞춰 씨를 뿌리고 거두어들이는 일.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게는 그들과 상관없는 별개의 삶일 뿐이지만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삶의 요소다. 지금은 바야흐로 봄의 향기가 흩날리는 계절, 우리 작은 정원에 봄이 온 것을 기뻐하면서 나와 아내는 집 주변 정원과 텃밭에 씨 뿌릴 준비를 한다.

지난해 우리 집 정원에서 따 두었던 꽃씨들을 현관 관물대에서 꺼낸다. 그 씨앗들은 현관 관물대에서 조용히 1년을 기다렸다. 고요히 1년을 기다려준 씨앗이 고마워 손바닥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문질러본다. 가벼운 씨앗 하나에 불과 하지만 그 안에 묵직한 생명을 담고 있다. 이 씨앗을 뿌리면 싹이 트고, 잎과 줄기가 자라서 펼쳐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 여물고, 다시 씨앗으로 남을 것이다. 하나의 작은 씨앗 속에 이처럼 많은 극적인 일들이 들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기에 그 과정들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장엄한 생명의 서사(敍事)다. 나와 같은 기분에서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 시인인 히노소조(日野草城)도 ‘씨앗을/손에 쥐면/생명이 북적거린다(ものの種/にぎればいのち/ひしめける)’라고 노래했는가 보다.

씨앗이 펼치는 생명의 서사를 생각하면 더 다양한 꽃씨들을 심고 싶어진다. 특히 아내가 새로이 심어보고 싶어 하는 11종류의 꽃. 하여 그 꽃씨는 서울 종묘상에 주문해 놨다. 며칠 있으면 택배로 도착할 것이다. 이들이 도착하면 미리 준비해놓은 묘판에 허리를 굽혀 가장 순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미래를 파종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씨앗이 발아되면 화단과 텃밭으로 옮겨 심으면 된다.

이렇게 씨앗 하나하나를 묘판에 심고 그것이 발아하였을 때 화단에 옮겨 심는 것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즐겁다. 오랜 세월 누적된 유전적인 정보대로 자기의 미래를 이어가기를 꿈꾸고 있을 씨앗. 그 씨앗 안에 응축되어있는 강력한 에너지가 나에게 전해져 오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작은 씨앗은 가르쳐서 아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이미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 알고 태어나는 셈이니... 그래서 특별히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떻게 싹을 틔워야 하는지, 어떻게 광합성 작용을 하고, 어떻게 병충해를 이기며 살아야 하는지, 언제쯤 흙을 뚫고 올라와야 하는지, 언제쯤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울지, 어떻게 씨앗을 다시 맺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씨앗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전환과 생장의 원리가 놀라울 정도로 신비스럽다. 이 지구상에 잉태되어 태어난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 안에는 이런 삶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것. 그래서 이 씨앗 하나하나가 곧 존재.

고대 인도의 우파니샤드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고대 인도의 아루나 성자는 보리수나무의 씨앗을 통해 우리가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임을 증명한다.

“저 보리수나무에서 열매 하나를 따 와 보거라.”/(“여기 따 왔습니다.”)/“그것을 쪼개라.”/(“예, 쪼갰습니다.”)/“그 안에 무엇이 보이느냐?”/(“씨들이 있습니다.”)/“그 가운데 하나를 쪼개보아라.”/(“쪼갰습니다.”)/“그 안에 무엇이 보이느냐?”/(“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총명한 아들아. 네가 볼 수 없는 미세한 것, 그 미세함으로 이루어진 큰 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보아라.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이 있음을 믿어라. 아주 미세한 존재, 그것을 세상 모든 것들은 아트만으로 삼고 있다. 그 존재가 곧 진리이다.”

작음을 큼으로 키워내는 것이 조물주 하느님이 하실 일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일까. 욕심내지 않고 작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겐 몇백 배로 보상해준다는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변화는 언제나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일까. 씨앗 하나 놓고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의 파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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