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정원가꾸기
[정용우칼럼] 정원가꾸기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3.04.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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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우리 대학 부동산학부 1기 졸업생 한 분이 나에게 카톡으로 전남 순천 국제정원박람회에 다녀오면서 찍은 사진 여러 장을 보내왔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정원의 모습, 그리고 그 정원에 심어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각종 꽃. 가히 장관이었다. 순천시민의 힘으로 정원이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정원가꾸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장 박람회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 최근 개막한 국제정원박람회가 구름인파로 넘쳐나고 있단다. 10년 만에 열린 박람회라서 그런지 주말에만 방문객이 20만 명에 달했다는 보도를 접하고선 나는 방문 계획을 조금 늦출 수밖에 없었다. 대신 우선은 봄맞이 우리 집 정원가꾸기에 열중해야 하리.

백화다발(百花多發)·백화제방, 모든 꽃이 함께 피는 아름다운 봄이다. 어느새 모든 꽃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우리 집에 심은 연산홍이 절정이다. 그냥 연산홍이라 했지만 꽃 모양이나 색깔이 가지각색이다. 10 종류 꽃이 어우러져 지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그 옆과 뒤로 분홍색 꽃잔디가 배경을 이루고 있으니 과히 환상적이다. 20년 넘게 정성들여 키우고 관리해 온 덕분이다.

정원을 만든다는 것은 사계절을 집안에 들이는 일이고, 집에 생명의 빛을 더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원가꾸기의 밑바탕에는 경건함이 있고 대지, 물, 공기, 사계절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이 있으며 생명력에 대한 확신이 있다. 나는 이 믿음과 확신에 이끌려 이리저리 다니면서 섬세한 손길로 300평에 이르는 공간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깔아 준다. 특히 올해는 손주들이 많이 컸기에 육아 도우미 역할을 줄인 아내가 이곳 지수에서 많이 머무르고 있어 손길이 더욱 바빠진다. 아내 역시 꽃들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탓에 서울 종묘상에 주문해서 묘판에 씨 뿌려놓은 것만 해도 11종류나 되니 이 종묘를 옮겨 심을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지난해 집 주변 축대공사를 하면서 화단까지 조성해 두긴 했다. 하지만 화단의 일부를 상추 등 식재료를 심은 탓에 꽃 심을 공간이 약간 부족할 것 같기 때문이다. 아내는 잔디밭의 일부를 화단으로 조성하기를 제안한다. 아름다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아내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솟아나 나도 흔쾌히 동의한다. 며칠에 걸쳐 잔디밭 일부를 걷어내고 대신에 꽃 심을 화단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 조성한 화단에 모판에서 어느 정도 자란 모종들을 옮겨 심는다. 아직은 새싹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름다운 꽃들을 선사해줄 것이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정원이 있다는 것은 정녕 반가운 일이다.

땅에 식물을 키우고 가꾼다는 것은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 게다가 식물은 녹색으로 생명을 연상케 하니 그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흙을 밀어내고 움트는 새싹, 자고 일어나면 한 마디씩 자라 있는 모습은 식물이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진실을 알려준다. 손을 대면 그 생명감이 내 몸에 옮겨오는 기분이 든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옛 현인들도 정원가꾸기에 몰두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잘 아는 헤르만 헤세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오로지 밤에만 글을 쓸 정도로 정원 일을 아꼈다. 1962년 뇌출혈로 사망할 때까지 50년을 정원에 매달린 그는 정원의 달인이었다고 전한다. “나는 내 작은 정원에 봄이 온 것을 기뻐하면서 콩과 샐러드, 레세다, 겨자 따위의 씨앗을 뿌린다. 그러고는 먼저 살다 죽어간 식물들의 잔해를 거름으로 준다. 그러면서 죽어간 것들을 돌이켜 생각하고, 앞으로 피어날 식물들에 대해서도 미리 생각해 본다. 이 질서 정연한 자연의 순환을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사실로 받아들인다.”

헤세가 아니더라도 각종 식물을 예술처럼 배치한 정원, 이 작은 우주 속에서 어슬렁거리거나 머무르면서, 일상 너머에 있던 자연의 경이를 감각하고 사유하고 상상한다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정원가꾸기를 마치고 거실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나와 아내는 우리 집 정원을 조망한다. 짙은 향기를 뿜어내 나비들을 유혹하는 꽃들 그리고 그에 응하여 모든 꽃에 차별 없이 모여드는 나비들이 우리 집 정원에서 새로운 세계, 새로운 질서를 열어간다. 그 새로운 세계, 새로운 질서 속에서 나는 편안하다. 고요함을 익히고 한가로움을 찾으면서 중국 고전 대학(大學)에 나와 있는 한 문장 “편안한 이후에 능히 깊이 생각할 수 있다.”(安而后能慮)를 되뇌어 본다. 우리 집 정원에 피어난 각종 꽃과 나비들, 이 존재하는 것들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참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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