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근칼럼 東松餘談] 견원지간
[하동근칼럼 東松餘談] 견원지간
  •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승인 2023.05.0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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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견원지간이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개와 원숭이의 사이라는 뜻인데, 두 동물처럼 관계가 매우 나쁠 경우를 일컫는 사자성어다. 개인적으론 개와 원숭이 사이가 정말 나쁜지 실제 본 일은 없다. 견원지간이란 단어는 서유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천계에서 골칫거리인 손오공을 잡기 위해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이랑진군’이란 장군이 개를 풀어 손오공의 부하 원숭이를 공격하면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데 이 또한 분명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실감이 나질 않지만 양자 간 사이가 나쁜 관계를 놓고 견원지간이란 말을 흔히들 쓰고 있다.

지난 문재인정부 때 한국과 일본 관계는 마치 견원지간처럼 서로 으르렁거렸다. 양국 정부가 서로 질시하고 견제하고, 왕래나 거래관계를 중단하고, 서로 약점을 치받아 상대방의 입장을 곤란하게 한 일들이 잦았다. 그런데 윤석열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갑자기 한일관계가 마치 과거 냉전시대의 해빙무드처럼 화기애애해질 것 같은 분위기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조성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일본을 방문한데 이어 가시다 일본 총리가 이번에 답방을 하면서 이른바 셔틀외교가 12년 만에 복원됐기 때문이다. 양국 정상은 회담을 통해 두 나라의 관계 발전을 위해 전방위 협력을 확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특히 북핵의 위협에 공동대응하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현장에 한국시찰단 파견 동의, 반도체 공급망 공조 강화 등 양국 현안에 대해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로 한 점은 매우 평가할 일이다.

한국과 일본보다 더 견원지간 관계가 심했던 나라로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을 들 수 있다. 이 두 나라는 ‘견원지간’이라기보다 오히려 ‘철천지원수’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이른바 싸움이 치열했고 잦았다. 양쪽이 피해도 장난이 아니었다. 19세기 중후반만 놓고 보더라도 두 나라는 보불전쟁과 제1, 2차 세계대전 등 대규모 전쟁을 거치면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웠다. 콧대하면 프랑스를 내세우지만 그 콧대 중의 콧대인 드골 대통령은 1940년 독일에게 지면서 영국으로 쫓겨나 망명정부로 연명하는 수치를 당하기도 했다. 그랬던 두 나라인데 드골과 아데나워 두 지도자가 이른바 통큰 외교를 통해 상호화해협력조약을 맺으면서 지금의 두 나라 관계가 설정되었다. 그 과정에서 양국 정상이 벌인 회담은 모두 15차례나 됐다. 결과적으로 양국 지도자의 미래를 내다본 결단이 드골에게는 ‘프랑스의 영광’을, 아데나워에게는 ‘라인강의 기적’이란 선물을 안겨 주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에서 보이고 있는 명쾌한 외교행보는 향후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국제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지렛대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문재인정부의 경우 중국과 북한에 경도된 국지적 국제관계의 스펙트럼이었다면, 이번 정부가 보이고 있는 행보는 새롭게 전개되는 신냉전시대에 선택과 집중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대처해야 할지 깊이 고려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공식 사과가 없다는 이유로 굴욕외교, 굴종외교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는 야당의 공세는 과거에 치중한 접근방법으로 합리적인 미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위한 비판,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한일 관계가 프랑스와 독일보다 심한지 어떤지는 별개의 차원이지만 관계개선을 하겠다는 의지와 자세는 배워야 할 자세다. 과거 문재인정권처럼 문 닫아걸고 거북선 12척만 부르짖는 정신승리만 주장해서는 아무런 관계 발전은 없다. 그런 점에서 한일 두 정상은 드골과 아네나워의 만남보다 더 자주 만나서 일본식 표현으로 이른바 ‘갑옷의 끈을 풀고’ 허심탄회한 협상을 통한 관계 발전을 모색하다 보면 과거사 문제도 자연스레 풀리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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