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술(막걸리)
[정용우칼럼] 술(막걸리)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3.05.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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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5월은 가정의 달. 그중 어버이날도 있다. 내 어버이는 모두 돌아가셨기에 나는 어버이날에는 묘소를 찾는다. 이번 어버이날은 이런저런 병에 시달려 찾지 못하고 있다가 시간이 흘러 건강을 회복하고서야 조금 늦게나마 묘소에 와서 어버이께 감사의 묵념을 올린다. 묘소를 찾은 김에 주변 폐전 여기저기 솟아난 찔레덩굴이며 칡덩굴을 걷어낸다. 작업이 고된지라 5월이지만 땀이 많이 흐른다. 잠시 쉬면서 한창 모심기 작업 중인 논을 내려다본다. 지금은 모두 기계로 모를 심지만 예전에는 여러 사람 품앗이하여 모를 심었다. 중참 때나 점심시간이 되면 식사와 함께 쭉 들이키던 막걸리 한 사발. 그 꿀맛! 고된 작업으로 목말라 하던 참이라 생각만 하여도 목구멍이 근질거린다.

이렇게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뜻밖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부부동반으로 만나는 초등학교 동창친구들이 통영에 있는 어느 음식점을 찾아가기로 한 것. 소개한 동창 친구의 표현을 빌리면 비빔밥집인데 반찬이 40가지가 나온다고 했다. 그중에 정구지 부침개가 나오는데 막걸리 안주로 딱 좋단다. 우리 모두는 이에 동의하고 8명이 승용차 2대에 분승하여 지수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가기로 했다. 소문난 맛집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제법 한참을 기다린 다음에야 우리 일행 차례가 왔다. 친구가 말한 대로 40여 개의 반찬이 2개의 상에 진열되어 나왔다. 경상도 음식치고 짜지 않은 것에 우리 부부는 높은 점수를 매겼다. 각종 반찬만으로도 술안주로 그만인데 이 반찬 외에도 정구지 부침개도 있었고 그 맛 또한 일품이었다. 부침개가 있으니 술은 당연 막걸리가 제격이고... 비빔밥도 맛있지만 나는 밥보다는 막걸리에 더 먼저 손이 간다. 친구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잔을 비운다. 이름이 술이라서 그런지 술술 잘 넘어간다. 이렇게 잘 넘어가니 자칫 잘못하면 과음하기 일쑤다. 이쯤 되면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술이 술을 마시게 되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속담처럼 상황이 나쁘게 변할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실수하기 마련. 술을 과음하게 되면 대뇌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져 판단과 사고력의 저하를 가져와 뜻하지 않는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투에서도 국화를 뜻하는 9패는 국화주를 말하며 그림 안에서 목숨수자가 달랑 걸려있다. 이것은 술을 잘못마시면 패가망신한다는 뜻이리. 실제로 우리는 술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례를 많이 접하게 된다. 경제 파탄, 가족 해체 등등... 이러한 이유로 정약용은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내는 흉패(兇悖)한 행동은 모두 술에서 비롯된다.”고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술을 즐겨 빚어 마신다. 여러 가지 덕(德)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할 때는 요기가 되고, 힘이 빠질 때는 기운을 돋우고, 근심을 잊게 만들어 주고... 더욱 중요한 것은 술이 사람들 간의 유대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준다는 것. 아마 술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보다 술을 마셨을 때 사람들과 더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뜻에서 ‘시경(詩經)’의 여러 시에서도 노인을 봉양할 때나 친구와 어울릴 때나 꼭 필요한 것이 술이라고 했을 터. 게다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는 주장도 많다. ‘한서(漢書)‘에서는 술을 ‘온갖 약 가운데 으뜸(百藥之長)’이라고 했고 최근에 들어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편 학자도 있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의 교수인 찰스 홀래헌은 이와 관련해서 연구를 진행했다(2021.04.17. 이데일리). 연구 방법은 간단하다. 최근 3년 이내에 병으로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55~65살의 사람들을 모은다. 그리고 술을 적절하게 마시는 사람들과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사람들,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들로 집단을 나눠서 각각의 집단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 조사한다. 연구 결과는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20년 이내에 사망할 확률은 무려 69%에 달했다. 마찬가지로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사람들의 사망률은 60%였다. 그런데 적절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사망률은 고작 41%밖에 되지 않았다. 적절한 음주는 '독'이 아닌 '약'이라는 이야기.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술은 좋은 얼굴과 나쁜 얼굴을 모두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술은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곳. 잘만 즐기면 누릴 만한 고양과 상승의 세계에 이르고, 한순간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나락이다. 논어에 ‘불위주곤(不爲酒困)’이라 했다. 술 때문에 곤경에 처할 만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진정 술 마시는 자세이다. 이런 사람은 술을 ‘하늘이 내린 멋진 선물(天之美祿)’(漢書)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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