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개미
[정용우칼럼] 개미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3.06.2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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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하지(夏至)가 지났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니 개미들이 온통 난리다. 집 밖에서만 놀면 될 텐데 굳이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 안으로 들어온다. 손주들이 다녀간 다음 과자나 빵부스러기 따위를 제대로 청소하지 않았을 때는 더욱 심하다. 이들은 단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집 안으로 들어오더라도 한두 마리라면 아내도 그냥 모르는 체하고 지나가겠지만 이들은 통상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사람을 괴롭힌다. 자고 일어났는데 개미 물린 자국으로 가렵고 따가울 땐 여간 짜증 나는 일이 아니다. 특히 도시에서 살다가 이곳 시골로 이주한 우리 부부에게는 이러한 일이 생기면 더 이상 참지 못한다. 이럴 때는 우리도 개미 퇴치를 위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개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개미약을 뿌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개미약을 몇 차례 뿌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개미들이 말끔히 사라진다. 그들도 이 집에 자꾸 드나들면 죽게 된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우리 부부도 개미들이 자꾸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굳이 개미약을 사용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맹독성인 붉은 독개미, 이른바 붉은불개미나 목조문화재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흰개미 등이 우리 사람에게 이런저런 피해를 끼친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 살아서 그런지 개미 하면 먼저 겁부터 먹고 박멸해야 하는 해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름 지은 것만 보더라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개미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개미를 나타내는 한자는 의(蟻)다. ‘의를 아는 벌레’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개미를 익충(益蟲)으로 받아들여 왔다는 점을 시사한다. 개미에게까지 무한히 확장되는 생명 존중의 마음에서 그들의 존재 가치를 긍정적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흙 속 영양물질을 분해해 식물의 성장을 돕는 생태계 순환의 숨은 일꾼이기 때문이다. 한쪽 눈으로만 보고서 보잘것없는 곤충이라고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되겠다.

개미는 인간 못지않게 성공한 동물이다. 1억 1000만~1억 3000만 년 전 백악기 중기에 나타나 공룡 멸종과 인간의 출현을 지켜보며 생존해 왔다. 개미가 인간보다 훨씬 먼저 사회를 이뤘고, 지금까지 개체 수나 서식지로 봐도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지구상 곳곳에 존재해온 개미의 종수는 1만 4000여종에 이르고 무려 1경 마리의 개미가 산다고 추산한다. 개미 한 마리의 평균 몸무게를 인간의 100만 분의 1로 보고 전부 다 합하면 인간종의 무게와 비슷해진다. 전체 동물 무게의 15~20%다. 개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에드워드 윌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지적대로 “자연생태계의 균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온 개미는 인간과 함께 지구의 2대 지배자”라고 할 만하다. 에드워드 윌슨과 역시 세계적인 곤충학자인 베르트 횔도블러의 공저 ‘개미세계의 여행’에서는 한 발 더 나간다. “앞으로의 지구는 사람이 아니라 개미가 지배할 것이다.”

이런 주장에 이르기까지에는 개미가 뛰어난 ‘사회성 곤충’이라는 점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밝혀낸 연구결과는 수없이 많다. 우선 개미의 희생정신. 예컨대 개미는 굶주린 동료를 절대 그냥 놔두는 법이 없단다. 그 비결은 위를 2개 가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신을 위한 ‘개인적 위’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위’다. 굶주린 동료가 배고픔을 호소하면 두 번째 위에 비축해 두었던 양분을 토해내 먹인단다. 굶주림의 고통이 닥쳐올 때 남의 것을 뺏기 위해 무자비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과 비교된다. 게다가 개미들은 인간 사회를 뺨칠 정도로 분업화·전문화된 조직생활을 한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소설 ‘개미’를 통해 보여준 것처럼 개미는 집을 짓고 음식물을 모으고 저장하며 새끼를 기르고 전투를 치르는 모든 일이 분업화돼 있다. 개미들의 희생정신과 분업능력이 인간보다 더 뛰어나다. 한마디로 말해 개체로서 개미는 연약하지만 군체(群體)로서의 개미는 무시무시하다.

나는 이런 개미를 내 산책 코스인 강둑길에서 거의 매일 만난다. 시멘트 길 사이사이 간극에서 무언가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개미 군체를 만날 때는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들 움직임을 관찰하기도 한다. 평소에 시선을 거의 주지 않는 미물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 오묘한 세계가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의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응시 그 자체로 기쁨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저절로 정호승의 시 ‘봄밤’ 한 구절 읊조린다. “개미가 걸어간 길이/사람이 걸어간 길보다/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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