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우정(友情)
[정용우칼럼] 우정(友情)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3.07.0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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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내가 대학에서 부동산학부장 직을 맡고 있을 때 책 한 권이 보내져왔다. 책 제목은 임대주택정책론. 내용을 살펴보니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완하여 펴낸 것이었다. 임대주택사업으로 부영그룹을 키운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부동산 관련 전문서적도 펴내고 나중에는 나의 모교 진주고에 강당을 지어 무상으로 기부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또 한 차례 일을 벌였다. 고향사람들에게 현금 1400억원을 지급했단다. 전남 순천 운평리 죽동마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동산초등학교(25회)와 순천중학교(15회)를 졸업한 후 가정 형편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상경해 고학으로 야간고등학교를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82세 고령인 이 회장은 동산초등학교 남자 동창생들과 순천중학교 동창생들에게 1억원씩 지급했으며, 같은 기수로 순천고를 졸업한 8회 동창들에게는 5000만원씩 전달했단다. 확인된 순천중·고 동창생들만 80여명에 이른다(2023. 6. 28. 자 서울신문). 지연, 학연으로 인하여 이렇게 거액의 돈을 받게 된 친구들 입장에서 보면 여간 행운이 아니다. 친구 잘 둔 덕에 뜻밖의 횡재를 누리게 된 이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진정한 우정을 느끼며 마음 속 깊이 그를 흠모할 것 같다.

이러한 우정은 분명 부럽기는 하지만 그 당사자가 아닌 우리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오히려 돈이 개입되지 않고서도 훌륭하게 우정을 나눈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 중 하나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는 고사가 있으니... 전국시대 진나라에 거문고 명인인 백아(伯牙)라는 이가 있었는데 종자기(鍾子期)라는 친구가 그 소리를 듣고 백아가 거문고를 연주할 때 자기의 감정을 담아내는 재주를 매우 아꼈다. 하루는 백아가 산위에 오르는 것을 상상하며 연주하는데 종자기가 ‘훌륭해, 높고 험한 것이 태산 같군’하며 정확히 백아의 마음을 꿰뚫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종자기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자 백아는 절망한 나머지 자기 거문고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 없어졌다며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는 고사다.

진정한 우정은 눈 부시는 법. 눈부신 모든 것들은 드물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은 이중근 회장처럼 많은 돈도 가지고 있지 않거니와 돈이 있다 하여도 선뜻 나누어줄 수 있는 용기도 없다. 뿐만 아니라 백아와 종자기처럼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조예도 가져 있지 아니하다. 그런 까닭에 위 두 이야기에 나오는 우정은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좀 낯설 만큼 귀하다. 그렇다고 하여 기죽을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또 다른 우정이 있는 법. 굳이 광고하거나 특이하게 소리 내지 않아도 되는 소소한 우정, 서로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연스럽게 그 삶을 존중해줌으로써 생겨나는 담담한 우정. 이들 우정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니 더욱 소중할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노년 세대. 시간의 흐름이 빠름을 절감한다. 젊었을 때는 영원히 살 것 같았는데 나이 들어감에 따라 그것도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 이 세계와의 영원한 이별의 순간을 상상하면 지금의 일시적이고 부정적인 감정들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서로 아끼고 사랑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들끼리라도 가능하면 자주 모여서 식사하거나 근거리 여행이라도 다녀오려고 애쓴다. 우리 초등학교 동창친구들 모임은 부부 4쌍 그러니까 8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름 하여 ‘팔사모’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이다. 비교적 자주 보는 편인데도 모이기만 하면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많다. 이렇게 모여 식사 하고 헤어질 땐 서로 선물도 주고받는다. 우리가 – ‘우리’라고 했지만 나는 농사를 짓지 않으니 얻어먹기만 하는 편이다 - 농사지은 채소 등 식재료다. 그러나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땐 직접 날라다주기도 한다.

얼마 전의 이야기다. ‘팔사모’의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집에 있느냐고 묻는다. 오늘 내 5번째 손주 돌잔치 하러 진주 나간다 하였더니 그러면 귀가할 때 우리 집에 잠깐 들르라고 한다. 약속한 대로 들렀더니 복숭아 한 박스를 내놓는다. 며칠 전 다른 친구들에게는 익은 것 모두 따서 먼저 배달했단다. 내가 가장 가까이 사니 다시 복숭아가 익거든 따서 가져가려 했다고 귀띔한다. 그간 익은 것 전부란다. 복숭아가 익기를 기다리는 마음. 그것이 익으면 친구에게 갖다 주겠다는 마음. 잘 익은 복숭아처럼 맛깔스러운 친구의 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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