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바람
[정용우칼럼] 바람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3.09.02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오늘 아침 따라 바람이 거세다. 이럴 땐 바람의 영향을 받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 집 거실 앞 약 200미터 언덕에는 대나무밭이 펼쳐져 있는데 오늘처럼 바람이 불어대는 날이면 이 대나무들이 엄청난 율동으로 춤을 춘다. 바람이 들어선 대나무 숲은 마치 푸른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 같다. 대나무 숲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원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도 바람에 흔들거린다. 그러면서 바람으로부터 위로와 생명의 기운을 받아 성장한다. 아마 오늘처럼 세차게 바람이 불어대는 것은 온 우주에 가득 차 있는 기운으로 식물을 살리고 또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만약 바람이 없었다면 이 지구상의 식물들은 오래전에 멸종하고 말았을 터. 식물을 키워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바람 없이 햇빛과 물만 있으면 식물이 성장하는 것으로 보통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영양분을 공급받고 광합성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풍에도 신경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만큼 바람은 식물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 불가결한 요소이다.

이것은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은 다른 생명체보다도 모질기에 바람이 없어도 생명을 유지해 가는데 큰 지장이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람이 없는 우리네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람에게 먹고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바람을 쐬는 일이다. 우선 우리는 바람을 맞으며 기분 전환을 한다. 사방이 꽉 막혀 바람이 불지 않는 실내에서는 공기가 꿉꿉하고 후텁지근하여 숨이 탁 막혔건만 밖으로 나오면 바람이 여름 옷감 사이로 부드럽게 날아와 내 몸을 간지럽히면서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뿐 아니다. 바람은 우리네 삶에 진정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스승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중가수로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표현했는지 모른다.

-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한 인간은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을까?/(…)/그래, 그리고 얼마나 많이 하늘 위로 쏘아 올려야/포탄은 영영 사라질 수 있을까?/그 대답은, 나의 친구여, 바람 속에 불어오고 있지/대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네

바람이 있기에 우리는 욕망이라는 굴레, 그 부담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제대로 된 삶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 바람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비우고 떠나라고, 머무르지 말라고, 흐름에 따르라고. 그래야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제대로 가꾸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이처럼 사람에게나 다른 생물에게 무한한 은혜를 베푸는 바람. 그래서 우리도 바람처럼 살기를 희망한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들의 숨결을 위하여 한 줄기 바람이 되어라”(신영복 교수의 저작 ‘강의’). 이 말은 결국 어디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쓰는 삶(無所住而生其心 - 금강경)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리. 자신이 한 어떤 행위에 스스로 머물지 않는다는 말은 거기에 묶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묶이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 바람이야말로 집착하지 않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살려내고 또 생명을 불어넣어 주지만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는 바람처럼 살아가라고 한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위해 조그만 공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 공에 머물러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며, 착한 일을 하되 자신이 착한 일을 한다는 의식이 없이 해야 할 것이며, 따라서 좋은 일을 했어도 그건 당연한 일이고 으레 해야 할 일이니까 거기서 무슨 보답을 받겠다는 그런 계산이 없어야 할 것이며... 이 모든 가르침은 바람이 주는 은혜다.

다시 바람이 분다. 바람의 보법(步法)이 시원시원하다. ‘수많은 말들을 쏟아 놓으며/시원스런 걸음으로 지나간다’(문효치 시인의 ‘바람도 생각이 있다’). 이때다 생각하고 바람이 주는 가르침을 얼른 읽어내야 한다. 집착하면 더 큰 것을 잃게 되는 것이 세상 섭리. 바람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이 집착에서 나를 해방시키면 내 마음에 새롭고 풋풋한 공간 생겨날 터이니... 더 이상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을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된다. 바람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손만 놓으면 되는데, 매달리지만 않으면 되는데, 좋고 싫은 마음에 붙잡은 것들을 내려놓지 못한다. 내 나이, 이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하여 오늘같이 바람 부는 날이면, 모든 나무와 풀잎들이 몸을 낮추어 그 바람의 기운을 받아 생명을 가다듬어가듯이, 나도 이 바람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내 영혼이 한층 더 순수하고 자유로워지길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