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벌초 그리고 영혼의 고양(高揚)
[정용우칼럼] 벌초 그리고 영혼의 고양(高揚)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3.09.1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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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추석명절을 며칠 앞두고 있다. 추석명절을 맞아 내가 사는 이곳 시골의 주변 산과 언덕에 설치된 분묘들이 하나하나 벌초가 이루어져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간다. 이들을 보고 있는 나도 마음이 정리가 되고 깨끗해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조상님들도 여름 내내 무성하게 자란 풀 속에서 갑갑하게 지내시다가 저렇게 말끔히 풀이 정리가 되었으니 바람도 통하고 시야도 터져 시원하실 것 같다. 벌초를 하는 사람들도 일 년 내내 뭔가 그렇게 바빠서 조상님들 한 번 찾아보지 못하다가 추석을 맞아 찾아뵙고 오랜만에 벌초를 했으니 조상님들에 대한 도리를 다한 것 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어떤 지방(특히 제주도)에서는 추석 전에 벌초를 안 하면 조상님들 영혼이 명절 차례 상에 덤불을 뒤집어쓰고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올 만큼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자식의 효와 도리 차원에서 벌초를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고향을 떠나 멀리서 직장에 다니는 사람 중 시간 내기가 어려운 경우 차선책으로 벌초대행하는 사람에게 이 작업을 맡기기도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벌초는 조상님들에 대한 효도인 셈이다. 조상님들의 육체는 모두 죽음을 맞이하지만 영혼은 죽지 않고 여전히 건재함을 믿는 것이다. 하여 벌초는 영혼이 있음을 믿는 행위이다. 영혼이 살아 있음을 믿고 이 영혼에 대해 산자로서 예의와 의무를 다하는 행위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이런 사실은, 엄청나게 교통이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추석맞이 벌초가 행해졌다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나도 추석 전에 조부모님, 부모님 묘소를 찾아 벌초를 했다. 나는 건강상태가 여의치 못하여 아들이 예초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함에 따라 낫으로 일일이 벌초를 한다. 기계처럼 효율성과 속도감은 없지만 낫을 사용하여 직접 벌초를 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조금씩 조금씩 풀을 베어내면서 조부모님, 부모님의 영혼과 대화를 한다. 예전에 어머니 살아계실 때 하시던 방식이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어머니께서 조상님(할아버지 – 어머니에게는 시아버지) 분묘 벌초 때 그들의 영혼과 대화하시는 장면이 기억에 선하다. 아마 그 방법이 특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먼저 봉분을 정리하고 나면 어머니는 덜 깎인 풀들을 재차 정리하셨다. 이때 어머니께서는 봉분을 손으로 쓰다듬어 가면서 중얼 중얼 구시렁거리며 대화를 하셨다. 나는 그 대화 내용을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벌초가 끝날 때까지 한참 동안 그렇게 대화를 나누시곤 했다. 나는 나머지 주변의 풀들을 베어내면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께서는 살아 있는 자와 대화를 나누듯이 그렇게 진지하고 진솔한 모습으로 죽은 자와 대화를 나누셨다. 죽은 자의 영혼이 따로 존재함을 확실하게 믿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나도 어머니한테서 배운 그대로 조상님들과 대화를 한다. 가족 간에 일어났던 이런저런 일 보고도 하고 향후 가족 구성원들에게 이루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이런저런 소망도 이야기한다. 이 외에 매년 되풀이 하는 이야기도 있다. 조상님들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지 못한 데 대한 죄송스러움과 아쉬움을 고하는 것. 조상님들의 영혼이 이해하고 받아들여주시는지는 모르지만 이 이야기를 고함으로써 내 마음의 위로로 삼는다.

이처럼 우리는 벌초를 통해 조상님들과 함께 하면서 영혼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고 가다듬는 계기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와 반대의 길을 걷는 자가 가끔 발견된다. 그들도 벌초는 하는 것으로 보아 보통의 우리들처럼 영혼의 존재를 믿는 것 같기는 하다. 다만 영혼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할 뿐. 영혼의 존재는 믿으면서도 행위는 개차반이다. 짐승 같은 짓을 일삼으면서도 자신이 늘 옳다는 자기기만에 빠진다. 우리는 그런 자들에 대해 ‘영혼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그들은 영혼이 없다는 저격에 끄덕도 않는다. 도리어 영혼은 가져다가 어디에 쓸 거냐며 되묻는다. 영혼보다는 육체에 되도록 많은 만족을 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삶에 기쁨과 위로와 평안이 깃들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현인으로부터 배워 알고 있다. 이제 내 나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음이 흘러내리듯 내 육체 또한 사그라져 갈 터. 이제는 육체적 만족보다는 영혼의 고양에 힘써야 할 때다. 인간에겐 육체의 즐거움을 넘어서는 더 근원적 만족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 삶의 더 견고한 터전 마련을 위한 영혼의 고양! 추석명절 전 벌초를 통해 다시 한 번 새롭게 하는 나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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