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관심
[정용우칼럼] 관심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3.10.2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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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가을은 낙엽의 계절이다. 온통 낙엽천지다. 우리집 둘레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은 물론이고 이웃집 나무들로부터 떨어진 낙엽들이 잔디밭에서 뒹군다. 이 낙엽에 대해 조선 초기 학자이자 문인이었던 매월당 김시습은 이렇게 예찬한다. “낙엽이 지고 뒹구는 소리는 어떤 음악 소리보다 애절하고, 달빛에 비친 낙엽은 어떤 그림보다도 아름답다. 창문을 두드리며 떨어지는 낙엽은 나그네의 단꿈을 깨우기도 하고, 섬돌에 쌓인 낙엽은 오래된 이끼의 허물을 슬그머니 감추는 선행도 베푼다.”고. 그러나 정성 들여 잘 관리해온 잔디밭이 어지럽게 휘날리는 낙엽들 때문에 볼썽사나워지면 이런 느낌도 그냥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되면 낙엽은 생명을 다한 폐기물로 변한다. 이때쯤이면 이 폐기물들을 쓸어내지 않을 수 없다.

떨어진 낙엽을 쓸어내며 생각에 잠긴다. 노년이 되어 바라보는 낙엽은 나도 모르게 몰락(沒落)을 연상케 한다. 한때는 기력이 왕성하여 무슨 일을 해도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몸은 생기를 잃고 서서히 노쇠해간다. 그러기에 이제는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떠맡기보다는 모든 걸 내려놓고 쉬어야 할 때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요즘 세상, 자녀들이 맞벌이를 하는 탓에 그들의 육아 일부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에 놓인 노인들이 많다. 나의 경우 그런 상황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손주들이 아프거나 할 때면 딸과 아들의 육아를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손주 5명이 돌아가며 아프다. 드디어 엄마도 넉다운! 이런 상황이 되면 할머니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부친다. 드디어 아내도 몸 져 드러누웠다. 그러면서 하는 말. “너무 인기가 있어도 탈이다.”

아내가 몸 져 드러누우니 미안하다. 내가 육아에 미숙하여 아내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안겼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기야 나도 손주들이 우리집으로 몰려들면 그들을 안아주거나 유모차에 태워주는 등 나름 도움이 되고자 노력은 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태어난 지 17개월 되는 막내 손자를 안고 잔디밭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이 녀석이 자꾸 손가락으로 집을 가리켰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으로 알고 그대로 실행해주었다. 그런데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현관에 놓여 있는 할머니 신발을 집어 할머니에게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더러 밖으로 나가 자기와 함께 놀아달라는 의사표시. 말하자면 할아버지의 케어는 마음에 안 드니 할머니가 같이 놀아달라는 것이었다. 식사 준비 등으로 바쁜 할머니이지만 말 못하는 아이가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방법이 하도 가상하여 이를 받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할머니는 어린아이들 나이대로 그 눈높이에 맞춰서 별의별 놀이를 연구해서 잘 놀아준다. 예컨대 그중 하나. 시장바구니 캐리어에 아이를 태워 끌고 다닌다. 유모차보다는 특이하니 아이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거실 앞 의자에 앉아 아내가 아이들과 노는 모습을 보면 신기할 정도로 기상천외하다.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아이들에 대한 아내의 ‘관심’의 깊이가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여기서 ‘관심’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 우리집 옆에 나와 7촌간인 인척 한 분이 살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이서방네아줌마(버부리아줌마의 별칭)라고 불리는데 독거장애노인이다.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니 말을 못한다.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은 물론 불가하다. 아내가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7년 반 동안 이곳 지수에서 생활할 때다. 서울에서 대학교수직을 갖고 있던 나는 2주일에 한 번씩 이곳을 다녀갔다. 고향에 올 때마다 거의 우리집 식구처럼 생활하는 버부리아줌마랑은 어쩔 수 없이 자주 만나게 된다. 아내에게 무슨 부탁을 할 때나 무슨 애로사항이 있을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집을 드나들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아내는 그분의 방문 목적을 용케도 잘 알아내고 조치를 취해준다. 하도 신기해서 내가 아내에게 묻는다. “당신 어쩜 버부리아줌마의 방문목적을 그렇게 잘 읽어내느냐? 서로가 수화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때 아내가 나에게 단 두 글자로 답했다. “관심”.

위 아내와 관련된 이야기들에서 볼 수 있듯이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는 사랑으로 변하여 감동스런 모습들을 연출해낸다. 이렇듯 감동은 관심의 아름다운 기록! 감동으로 눈 뜨고 감동으로 눈 감는 삶을 살고 싶다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들을 향해 진정한 관심을 가져 볼 일이다. 내 아내가 손주들과 버부리아줌마에 대해 한 것처럼. 아내의 빠른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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