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국화꽃
[정용우칼럼] 국화꽃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3.11.09 1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이 년 전인가 싶다. 막내 동생이 아들과 함께 지수 우리 집을 방문했다. 아들이 대학 졸업 후 농협중앙회에 취직했기에 조상 묘소를 찾아 인사드리고자 한다면서. 그때 멋지게 관리된 국화 화분 한 개를 선물로 갖고 왔다. 물만 잘 주면 한 달 이상 피어 있을 거라는 이야기까지 보탰다. 대학에서 조경학을 가르치는 동생인지라 그 말이 맞겠지 생각하면서 수시로 물을 주었다. 그랬더니 과연 한 달 이상 아름다움을 선사해주었다. 동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전달했다.

이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아내가 올해 가을에 접어들면서 막 피기 시작한 국화 화분을 두 개나 사왔다. 거실 앞에서 역시 한 달 넘게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는데 지난주부터는 노란색의 꽃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다. 아마 며칠 더 지나면 화분을 치워야 하리. 인연을 다해가는 모양이다. 이때쯤이면 화단에 심어져 있는 국화꽃을 즐길 시점이 되어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올해 봄에 아내가 화단 여기저기에 국화를 많이 심어 놨다. 빨갛게 피어 두 달째 절정을 이루고 있는 맨드라미와 함께 조화를 이루며 형형색색 국화꽃이 피어나고 있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색채감이 깊어 꽃들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모습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묵향 같은 그윽함도 스며 나온다. 화들짝 피어난 꽃이 아니라 긴 시간 속에 농익어 피어난 꽃이어서 그러리라.

국화꽃 감상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선다. 이종사촌 동생의 딸 결혼식이 진주 동방호텔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결혼식이 진행된다. 그런데 주례가 없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에 대한 찬반양론이 있기는 하지만 하여튼 최근 트랜드인 것만은 확실하다. 주례 대신 사회자가 진행을 해나간다. 사회자가 마지막 순서로 ‘부모님 인사’ 시간을 알린다. 신랑 아버지가 단상에 올라 한 말씀하신다. 첫머리부터 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의 몇 연을 낭독하는 것이 아닌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온 우주가 관여한다는 이야기. 1연의 소쩍새, 2연의 천둥, 4연의 무서리 등 국화를 피우기 위한 자연의 인연들을 계절에 따라 나열한다. 비록 하나의 작은 꽃에 지나지 않지만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의 인연과 기다림이 있었다는 사실은 생명의 신비로움에 대한 감탄과 경외감을 표현한다. 신랑의 아버지는 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 긴밀한 인연을 맺고 우주의 현상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신부의 탄생, 성장과 지금의 꽃처럼 아름다운 자태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낸다. 남편인 아들 또한 마찬가지... 조금 색다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에 담는다.

신랑의 아버지가 말씀했듯이 국화가 모진 세월을 견뎌내며 우주의 여러 인연을 담아 처음으로 그 진실한 꽃 한 송이를 피워냈을 때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는가. 꽃도 그러하니 사람은 더욱 그러하리. 그런 의미에서 국화꽃 한 송이,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우주를 안고 피어나고 탄생하는 것. 곧 국화꽃 한 송이 한 송이가 하나의 우주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하나의 우주다. 그러니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우주를 만나는 것이다. 그만큼 소중하고 고귀하다는 이야기. 이런 소중하고 고귀한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서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면 그 끈질긴 인연은 어떻게 혜량할까. 불교에는 7000겁의 인연이 뒤따라야 부부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1겁(劫)이란 시간은 1000년에 한 방울씩 물방울이 떨어져 큰 바위에 구멍을 내는 시간을 말한다. 1겁은 43.2억 년이니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가 된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결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서 관계하는 모든 일들이 다 그러하다. 오늘 내가 만나고 상대하는 사람 하나하나가 사실은 제각기 독자성이라는 파편으로 드러난 우주적인 존재들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일으킨 한 생각, 한 가지 행동은 사실 그 한 사람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 우주를 대상으로 일으킨 것. 이러한 정황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모든 행위 하나하나를 허투루 할 수 없다. 내 삶에 등장하는, 오늘 내 앞에 나타난 바로 그 한 사람에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 앞에 나와 인연 맺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참된 지혜와 사랑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를 도우며, 구하고 살려야 한다. 특히 나의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처럼 가까운 인연관계라면 더할 나위 없다. 이 같은 마음으로 가족과 벗과 친지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될 때, 그 참된 지혜와 사랑은 우주 끝까지 퍼져나간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들어야 할 품이 작지 않듯, 좋은 인연에도 많은 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오늘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