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 세상엿보기] 서울의 봄
[김용희의 세상엿보기] 서울의 봄
  • 김용희 시인·수필가
  • 승인 2023.11.2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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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이 선풍적 인기다. 1979년 10.26과 12.12 그리고 5.18 그렇게 신군부의 권력은 완성됐다. 그리고 육사 11기 하나회의 좌장 전두환은 11, 12대 7년을 권좌에서 머물렀다. 전두환, 노태우, 수경사 장태완, 참총 정승화, 헌병감 김진기, 특전사 정병주... 감기(2013), 아수라(2016)의 김성수 감독은 12.12의 긴박했던 9시간을 140분으로 압축해서 몰입도 있게 보여 준다.

7년의 집권, 그리고 이한열 사건과 6.29 직선제 선언. 대통령선거인단,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그저 먹기 간접선거는 궁정동 총탄과 화이트 칼라의 저항으로 퇴출되고 다시 역사는 진행된다. 노태우 그리고 전의 백담사 2년, 김영삼시절 내란수괴죄로 노. 전 모두 사형선고, 곧 출소. 그러고도 전은 90세까지 골프치며 장수한다. 그는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선 한 인간이다. 이승만은 제주 4.3 그리고 연이은 여순사건으로 시작되어 12년을 집권하고 1960년 4.19로 끝났다. 박정희는 5.16으로 시작되어 10.26으로 종식되고, 18년을 집권했다

‘서울의 봄’이란 타이틀은 사실 그때 회자되던 단어다. 김재규, 차지철은 ‘남산의 부장’들이란 영화로 이병헌이 열연했었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하에서 늘 캠퍼스는 휴강과 전단지와 혹은 최루탄 경찰과의 대치로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결국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과 최루탄 사망 이한열 사건으로 급기야 6.29로 이어져 왔다. 박근혜는 촛불로 탄핵, 헌법재판소에서 파면이 결정된다 이정미 재판관의 선고 장면이 아직도 또렷하다.

우리의 민주화의 숨가쁜 여정은 그렇게 달려온 것이다. 백성을 속이든, 무력으로 진압하든 늘 민의는 다시 되살아 나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러기에 우리 민족성은 ‘들풀민족’'인게다. 밟아도 죽지 않는 그러나 강력하지는 않은, 일제에 수난 그리고 이승만, 군부, 다시 신군부... 그리고 어쩌면 3당야합이란 김영삼, 그리고 민간정부 김대중과 연이은 노무현이 끝나갈 무렵 경제란 이름의 저수지관리자 MB. 다시 박근혜로... 앰비와 박을 정죄한 검찰출신 권력이 집권, 소위 문민권력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는 게다. 선 굵은 워카권력과는 또다른 문필의 권력...

다시 ‘서울의 봄’'으로 가보자. 이 영화는 상업적 기술적으로 성공한 것 같다. 긴박성과 몰입도를 끝까지 유지한다. 그리고 선과 악의 대결? 아니 원칙과 반칙의 대결, 이방원권력 또한 문민권력인 정몽주와 정도전을 숙청하고 섰으니, 그러나 사실 선악의 구도로 역사를 보는 것은 무리다. 권력은 힘의 작용이다. 군인권력, 검찰권력, 민의가 모여 저항하는 것도 그리하여 급기야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도 힘(POWER)이다.

전두환 신군부는 서울의 봄에 집권한다. 정보장악과 하나회 조직을 통한 힘의 집권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영화적 상업적 요소를 가미하여 관람객의 호응도를 높인 드라마일 뿐이다. 역사의 진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역사란 이름, 선악이라는 구도를 통하여 흥행성을 노릴 뿐이다. 해서 당시를 살아낸 이들에게는 어쩌면 씁쓸함을 가져다준다. 그건 영화니까 어쩔 수 없겠다. 5.18이 저항의 지역, 동학의 주 무대 전라 광주에서 시작된 것도 이유있는 사건이리라.

사실 더 우울한 것은 지금이 어쩌면 더 혼란스러운 시절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장태완과 정병주 그들은 참군인 맞다. 어물쩡하게 당한 정승화, 비겁하게도 ‘사후재가’라고 결재시간까지 적어넣은 최규하 같은 이들과는 다르겠다. 윤봉길, 홍범도 안중근과 맥을 잇는 이들이 이들이겠다.

한 나라의 민주화는 백성의 성숙도와 과감성 때문이겠다. 그게 구라파에서 보여준 궤적들이며 그들은 그렇게 지금 축구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서울의 봄’을 보는 이유는 현 정부의 실상을 반추하기 위함이겠다. 지금의 정치를 차후 다시 상업화 드라마화 한다면 혹시 더 많은

영화적 깊이와 작품성과 다양성, 권력이라는 이름의 진 이면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역사를 상업화하는 돈벌이 문화를 보면서 그러나 그것에 빠져 지금 여기의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역우민화는 다시 우려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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