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 세상엿보기] 한국 혼돈에 빠진 이유
[김용희의 세상엿보기] 한국 혼돈에 빠진 이유
  • 김용희 시인·수필가
  • 승인 2024.01.1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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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생각하지 않는 기계적 인간을 양산하는 나라. 지혜는 사라지고 지식만 충만한 이들이 이끄는 나라. 몸체는 성년인데 정신연령은 청소년급인 나라. 해서 지금 한계 절망에 부딛힌 것. 잃어버린 30년, 아니 50년이 올 수도 있는 나라. 우리 스스로 왜 여기서 멈추고 좌절과 혼돈의 늪에 빠져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나라. 정신적 정서적 인격적 성숙도가 아이와 같은 나라가 우리나라 아닌가 싶다.

왜 우리에게는 철학자도 없고 노벨상도 없는가? 국민적 역량의 부족인가? 일류국가의 요건으로서 민족적 차이는 크지 않다. 왜냐하면 민족적 우수성이 이유라면 이집트에서 로마 그리스로, 에스파니아 네들란드로, 영미국 등 유럽으로 세계 지배권이 이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유대인들은 왜 그리도 미국을 지배하고 노벨상을 매집하는가?

우리나라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 시험문제를 보면 생각하지 않는 인간, 기계적 인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철학 문학이 사라지고 기계적 지식과 고소득을 위한 생존학만 난무한다. 과학 공학도 천대받으니 국가성장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사법고시 행정고시는 암기력 테스트이지 사고력 테스트가 아니다. 그건 AI가 훨씬 잘한다. 지금 행정고시를 AI와 인간이 대결하면 비교가 안될 정도겠다. 출제되는 문제가 그렇다. 영국은 수학이 인문학과에 있단다. 수학을 깊이 알다보면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철학이 깊어지면 신학으로 이동하게 된단다. 소크라테스에서 인간은 이미 그 완결성을 보여줬다. "내가 아는 것은 단지 내가 모른다는 사실뿐"이다. 한계적 인간에 대한 자각, 그게 이성의 완성이다. 그러니까 겸손과 양보가 없고 스스로 완결된 인간이라 자만하니 협력과 상생이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 자각하지 못하니 다들 저래 난리법석이다. 지도자들이 전체구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의 틀에 갇혀 프레임놀이만 한다, 이러니 계속 왜곡되고 편협되어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올림피아드 수학경시대회 석권하고 옥스퍼드 수석 입학한 김준석 형이란 친구가 ‘전지적 남자’란 프로에서 수학교수로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결국 자기는 문제를 풀기만하는 로봇으로 길러졌다는 사실 앞에서 절망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힌다. “You are not the genius we looking for...” 출제된 문제 앞에 앉아서 30분을 사유하고 30분만 답을 적는 인간유형은 문제를 받자마자 풀어나가는 기계적 인간과는 비교될 수 없었다는 게다.

사유가 사라진 곳, 지금은 또 게임만 난무하고, 티비는 먹방이나 하고 얕은 가십에나 탐닉한다. 그렇게 ‘시간 죽이기’만 탐닉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사유해야 한다. 수학을 넘어, 철학을 넘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신학이란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수학도 철학도 없이는 얕은 관념의 내를 벗어나지 못 한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이것을 깨우친 이가, 이것을 깨우쳐 주러 국민 앞에 나왔을 때, 이 장벽을 넘을 정치 정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국민역량이 성장해 있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박동환같은 철학자가 무지기수로 나오는 나라여야 한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그건 '내가 사라지는 것'이겠다. 어려울 것도 없겠다. 불교의 해탈 성불도 ‘무아’가 되는 것, 고집멸도가 그것. 기독교는 자신을 부정하고 예수를 따르라 한다. 똑같은 얘기같다. 그게 ‘거듭남’이겠다. 더 큰 욕망 가지고 영원히 사는 것이 ‘부활’이 아니라 이처럼 자기존재를 부정했을 때겠다. 그것은 세속적 욕망의 통을 완성시키는 그런 거꾸로 구원은 아닌 것이다. 즉 구원은 ‘이기적 자아의 소멸’이지 ‘이기심의 완성’이 아니다.

그게 대한민국이 나가야 할 방향같다. 미국은 기부문화로, 유럽은 다 퍼주는 세금으로 이미 자기완성의 길로, 구원의 길로 가고 있는데 우린 아직도 까마득하다. 부자 청년이 묻는다 “주여 어찌해야 구원을 얻으리까?” 예수가 답한다 “네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그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과 ‘이성을 초월’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이성을 마비시키면 인간이 아닌 것이 되고, 이성을 극복하면 인간을 넘게 된다. 부디 이성이 마비된 국가가 아닌, 이성을 넘은 인간들이 지배적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가 되어 개인도 국가도 사회도 다시 그 의미를 찾아가는 나라, 사회, 개인이 되기를 바래본다. 비록 개념적 관념으로 보여도 그것만이 우리가 당면한 아니 본질적인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현대철학이 이미 내린 결론은 ‘주체가 사라진 인간’이다. 많이 내려놓은 정당이, 지도자가 승리해야 우리에겐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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