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소박한 필요
[정용우칼럼] 소박한 필요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4.01.1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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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나처럼 몸에 이런저런 병을 안고 사는 사람이 자주 접하게 되는 한 말씀이 있다. 유마힐 거사가 병문안 온 문수보살과 나눈 대화 중 한 부분, “어리석음·탐욕과 성내는 마음으로부터 내 병이 생겼습니다. 모든 중생이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모든 중생의 병이 나을 때 내 병도 나을 것입니다.”(유마경). 몸이 욱신욱신 쑤셔오는 통증을 느끼면서 가장 낮은 자세로 병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유마힐 거사. 이 분이 하신 말씀을 읽고 있으면 내 병의 원인을 스스로 알아차리도록 도와준다. 나아가 나와 연결되어 있는 ‘우리들’ 뿐 아니라 ‘우리들이 아닌 모든 다른 존재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도 대자비심으로 바라보게 한다. 나도 모르게 병에 대한 희망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고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불제자보다 뛰어나 당대부터 지금까지 교파를 초월해 존경받는 유마힐 거사. 그는 석가모니 부처 당대 바이샬리라는 도시에 살고 있던 부호였다. 큰 부자였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청빈한 삶을 살았다. 유마힐 거사가 세상을 떠날 때 살던 방이 사방(四方) 여섯 자(尺, 6척=1.8m), 한 모서리의 길이가 사람 키와 같은 한 길(丈)이였으니 그 청빈함을 짐작할 수 있다(큰 절 중에서도 총림(叢林)이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그곳의 가장 높은 어른을 방장(方丈)이라 부른다. 이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함).

유마힐 거사는 부자였지만 재가수도자다. 수도자였기에 청빈의 삶을 살았다는 것은 어쩜 당연하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도자도 아니면서 수도자적 삶을 산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 그리고 외국사람으로는 면세점(DFS) 거부 찰스 척 피니,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를 만든 창업주 이본 쉬나드 회장, 미국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일본 교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 등 수없이 많다(2023. 11. 23.자 조선일보 ‘만물상’-김홍수 논설위원). 이들은 아낌없이 나눠주고 빈손으로 간 괴짜 억만장자들이다. 그들은 억만장자지만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한 뒤, 방 두 칸짜리 임대 아파트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거나 집도 없이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면서 살았다. 낡은 옷을 입고, 컴퓨터와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으며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우리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정도의 무소유를 실천하면서 수도자적 삶을 살았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살리는 소금과 같은 존재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풍요와 편리라는 환상에 빠져 소유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한다. 게다가 디자인과 성능이 뛰어나고 가격까지 싼 물건들이 끊임없이 시장에 쏟아져 나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뿐만 아니다. 정교하게 부풀려진 광고와 마케팅 기술은 개인의 욕구와 욕망을 더욱 부추긴다. 상황이 이러하니 사람들은 사고 또 산다. 사고 또 사서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렇다면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가진다고 해서 전보다 행복해질까? 일정한 수준까지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어느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면 ‘과소유증후군’에 걸려들 수도 있다. 과소유증후군은 소유로 인한 질식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물건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데서 받는 스트레스를 말한다. 과소유증후군에 걸려들면 우리는 불행해진다. 행복하기 위해 물건을 소유했는데 오히려 불행의 늪에 빠지고 만다. 잠시 누렸던 우리의 기쁨마저 앗아가고,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며, 더욱 심하게는 우울하게까지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네 삶과 생활에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더군다나 나처럼 직장에서 은퇴한 후 고적한 시골에서 ‘수도승 흉내 내기’ 삶을 선택한 자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박노해 시인)”. 적은 소유는 절제된 소유, 이때 그 소유는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고 기품 있게 다가올 터.

그래서 나는 ‘소박한 필요’를 내 남은 삶의 키워드로 삼고자 한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며 살고, 편안하고 안전해 보이는 넓은 길을 버리고 좁은 길을 선택한 사람들, 그들 삶의 모습에 공감하며 나도 실제 생활에 적용해 보고 싶다. 그리하여 궁극에 가서 “내가 소유한 물질이 아니라 그것들을 소유하지 않으려는 마음이야말로 내가 가진 진짜 보물임을 깨달았네.”(‘바다가 들려준 이야기’-세르지오 밤바렌)라고 노래 부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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