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7순(七旬)을 맞으며
[정용우칼럼] 7순(七旬)을 맞으며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4.01.3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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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우리의 삶은 시간 속에 있다. 그래서 나이라는 것이 생겼고 올해 새해가 시작되면서 한 살 더 나이를 먹어간다. 내가 말띠니까 새해에 우리 나이로 71살이 된다. 우리 조상들은 매우 현명했다. 생명의 씨앗을 모태에 넣고 싹틔워 열 달 동안 길러주신 수고와 사랑을 귀하게 생각해서 태아에게도 나이를 부여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태어나면 이미 한 살이 된다. 그래서 71살이다. 그런데 올해 윤석렬 대통령 덕분에 다시 한 번 70살이 된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두보의 ‘곡강시’에서 유래한 말이다. 여기 등장하는 70살,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드물게 오래 산 사람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평균 수명이 고작 35살이었다고 하니 일흔이란 얼마나 진귀한 나이였을까?

올해 설날을 넘겨 날씨가 따뜻해지는 3월 말경에 내 아들 딸 그리고 형제들이 7순잔치를 열어준단다. 가끔씩 갖는 가족 모임의 형태를 빌리는 식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7순잔치라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다. 7순이 되면 여러 가지 떠오르는 기억 때문이다. 그 기억 중의 하나로 일본 영화 ‘나라야마부시코(楢山節考)’를 들지 않을 수 없다(후카사와 시치로(深澤七郞)가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여 1983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만든 영화. 3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라야마부시코’의 줄거리는 가야 할 때를 아는 노인의 아름다움으로 요약된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마을에서는 할 일을 다 마친 노인이 오래 사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다. 심지어 증손자를 볼 때까지 살아 있다면 그 노인은 쥐새끼를 낳았다며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올해 예순아홉이 된 오린은 아직 빠진 이가 하나도 없자, 이를 부끄럽게 여겨 부싯돌로 때리고 마침내 절구에 내리찧어 두 개를 부러뜨린다. 그러고서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이가 빠져 졸참나무산에 갈 때가 되었다며 온 동네를 춤을 추며 다닌다. 오린은 졸참나무산에 가지 않으려고 아들의 지게에 매달리는 옆집 노인을 안타깝게 여긴다. 아들, 손주 다 결혼시키고 증손주까지 볼 판인데, 여자들이 둘이나 되는 집에 노인이 남아 할 일이라곤 귀한 곡식을 축내는 것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린은 졸참나무산에 가는 것을 기꺼이 기다리며 하루빨리 그날이 오라며 성대한 잔칫상도 마련해둔다. 할머니 덕분에 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뻐할 자식들을 생각하니, 오린은 그저 싱글벙글이다. 이 이야기는 그 당시 일본 사회의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기는 하지만 70살을 맞는 나로서는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음은 사실이다. 생존을 위한 집단적 삶의 방식을 어떻게 탓할 수 있겠냐마는 나와 같은 나이 70살이 되면 좋든 싫든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 야만적이고 불쾌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우리는 영화에서의 오린처럼 70살에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 더 오래 건강하게 살고자 별의별 수단 방법을 강구한다. 하지만 세월은 우리를 가만 놔주지 않는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늙음을 막을 방법이 없다. 나이가 드는 것도 싫고, 늙어 보이는 것도 싫고,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모든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 역시 싫지만 우리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

거부할 수 없다면 그저 받아들이는 것도 세월에 대한 예의일지 모른다.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이해하다 보면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젊은 시절에 비해 많은 것이 보이고, 이전에 그저 그렇게 보이던 사소한 것들이 특별하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무엇이 내 행복에 있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분별하는 능력도 더 좋아지고 의미 없는 것들보다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지혜 또한 늘어난다. 이것만으로도 노년의 삶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 여유로움을 예술로 승화시켜나가야 한다. 멋지게 늙은 사람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했다(엘리너 루스벨트-미국 제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부인). 참 멋진 말이다. 그러나 이런 경지는 그저 오지 않는다. 노인으로서 자기 성찰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 관계를 더 풍성하게 가꾸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만 ‘예술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정도의 멋진 노인이 되는 것이다. 성찰 없이 그저 오늘을 어제처럼 사는 노인은 삶의 핵심적 맥락을 짚는 성숙한 어른이 아니라 세상 흐름에 뒤쳐진 노인, 고집불통 꼰대로 전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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