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사람이 없다
[정용우칼럼] 사람이 없다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4.02.1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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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우리 동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설날이 되면 온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어린 우리들은 세배하기 위해 일가친척집 방문하고 덕담 듣고 세뱃돈도 받고... 어른들은 동네 일가친척 어른들께 세배 다녔고 그것이 끝나면 다른 성씨 어른들, 다른 부락에 사는 어른들까지 찾아 세배를 드리곤 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났던 그런 시절. 가난하고 힘겹기만 한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천국을 엿볼 수 있는 유년 시절을 보낸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완전히 변해 버렸다. 설날이 되어도 세배 오는 사람도 없고 가는 사람도 없다. 설날이 되어 방문한 자식들도 자기 집 부모만 찾아보고 외지로 떠나버린다. 그것도 어려울 경우, 부모가 자식들이 사는 도시에 가서 설을 지내고 온다. 이러니 명절이 썰렁하다. 설날 사정도 이러하니 다른 날은 더하다. 예전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트럭에 생필품을 싣고 다니며 파는 이동만물상도 가끔은 다녀갔지만 몇 년 전부터는 뚝 끊겼다. 더욱 가끔은 가까운 절에서 스님들이 시주 받기위해 다녀가곤 했는데 이마저도 완전 끊겼다. 동네를 다녀 봐도 사람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령의 할머니들은 이 세상을 하직했고 몇 안 되는 비닐하우스 농사짓는 젊은이들은 하루 종일 그곳 현장에서 지내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날 수 없어 동네를 방문한다 해도 물건을 팔거나 시주를 받지 못하니 그들의 발길마저 끊기고 만 것이다. 그래서 온 동네가 더욱 적막하다. 이런 모습은 나 같이 ‘수행승 흉내 내기’하는 사람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속세와 단절된 피안의 세계 같은 느낌이 들어 내면을 관조하는 고요함과 온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는 데 도움은 된다. 그러나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빈집들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근원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이렇게 사람들이 살지 않는 집이 늘어나다 보니 그 집들이 들고양이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여기저기 쓰러져 가고 있는 집들은 동네 흉물로 변해간다. 그래도 바로 정리하지 못한다. 정리하기 위해서는 국가에 상당한 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쓰러진 집들은 대부분 슬레이트 지붕인데 이게 암 유발 물질로 분류되어 아무나 철거할 수 없고 전문 인력이 투입되어야만 하는데 이에 따르는 비용이다. 시골집을 소유한 사람들이 감당하기에는 엄청나게 큰 비용.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다 보니 흉물스럽게 방치된 집들만 늘어나고 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해보고자 정부에서는 앞으로 소멸지역에서 집을 구입할 경우에는 1가구 2주택에서 면제해 주기로 했다지만 그 정책은 별반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집을 사기는 했지만 동네 구성원이 되어 살지 않는 한 삶의 생기를 불어넣거나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 시골집들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어쩌면 더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변해 갈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소멸 대상이다.

시골 동네 상황이 이렇게 급변한 이유는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종의 절멸을 막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타락과 죄악의 오염에 맞서는 순수함과 생기를 내뿜는 아이들(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그런데도 모두들 아이 낳기를 꺼린다. 이기적 욕망 그 회오리바람이 불처럼 우리 인간사회를 불살라버린 결과다. 또 백번 양보하여 아이가 태어난다 해도 이 시골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한 사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 있었으니... 지수초등학교가 학생 수가 줄어 폐교 대상이 되자 이곳 출신 경제인들이 전입해온 학생들 모두에게 장학금을 지불하면서까지 노력했으나 그래도 전입하는 부모가 없어 결국 폐교되고 말았다(교명이 유명한지라 폐교를 면한 옛 송정초등학교에 그 이름을 바꿔 달기는 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요 근래 아주 신선하게 다가오는 기사 하나를 보았다. 기분이 좋았다. 증오의 정치, 혐오의 정치로 나날을 지새우는 가운데 나온 모처럼 만의 신선한 기사라서 반가웠다. 여야 정치인들이 ‘저출생’ 기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놓고 서로 간 경쟁을 했다는 기사. 인구감소 대안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 외국인 수입, 로봇 활성화 등도 바람직한 정책이지만 결국은 아이를 많이 낳게끔 유도하는 정책이 문제해결의 관건이다. 하루빨리 인구감소에 직면한 다른 나라들이 검토했던 정책, 역사적으로 인구감소기에 채택했던 정책들을 모두 고려하여 여야가 경쟁적으로 효율적인 대책들을 내놓기 바란다. 시간이 없다. 이웃나라 일본이나 중국보다 인구감소가 현저히 빠른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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