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축구단 창단’ 시민단합과 진주브랜드 제고에 큰 역할
‘진주축구단 창단’ 시민단합과 진주브랜드 제고에 큰 역할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7.0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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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행정가 대한축구협회 장연환 국장

진주축구단 운영경비 연간 총 10억원 선이면 충분
K4로 출발해 잘하면 K3로 승급돼 흑자운영도 가능
축구협회, 진주출신 축구 인적네트워크 잘 활용해야

진주고교 졸업 후 이태리 축구학교에서 7년간 유학
호서대학교 교수 때 월드컵 앞두고 축구협회에 차출
2002년 월드컵 개최와 그 사후처리 성공적으로 진행
14년간 매월 ‘기술보고서’ 발간 국내 축구 발전 일익
‘콩 박사’로 유명한 전 경상대 농대 장권열 교수 차남
장연환 대한축구협회 파주트레이닝센터 국장은 진주출신으로 평생을 축구행정에 종사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유능한 축구행정가이다.
장연환 대한축구협회 파주트레이닝센터 국장은 진주출신으로 평생을 축구행정에 종사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유능한 축구행정가이다.

장연환(60) 대한축구협회 국장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유능한 축구행정가이다.

장 국장은 진주출신으로 이태리 고베르치아노 축구학교에서 유학한 다음, 호서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축구협회에 차출됐다. 월드컵을 앞두고 유능한 축구행정가가 절실히 필요할 때 축구협회에서 요청하자 교수직을 버리고 국가의 부름에 응했다. 장 국장은 “모든 사람들이 교수직을 버리고 협회로 가는 데 대해 반대했지만 저는 당시 축구에 미쳐있었다. 축구행정을 배운 사람으로서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른 후 장 국장은 평생을 대한축구협회에서 기술교육과 심판교육 등에 종사하며 보냈다.

장 국장은 축구협회에 있으면서 매월 ‘기술보고서’를 발간했다. 장 국장이 와서 시작한 일이다. 이 보고서에는 매월 가장 핫(hot) 했던 축구게임, 감독, 선수들의 성향, 세계축구의 흐름 등을 과학적인 기법을 통해 분석해 제공했다. 따라서 이 기술보고서는 국내에 있는 감독, 선수 등 축구관계자들의 필독서가 됐다. 이 보고서를 읽지 않고는 축구계 대화에 끼어들지 못할 정도였다. 이 기술보고서로 인해 국내 축구기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게 장 국장의 평가이다. 14년 동안 이 일을 한 장 국장은 다음으로는 축구심판들의 교육에 매진했다. 특히 가장 많은 경기가 치러지는 아마추어 경기의 심판들의 자질향상을 위해 아마추어 심판 등급을 1,2,3,4급으로 분류한 것도 장 국장이 한 일이다. 이렇게 심판들의 등급을 분류해 놓자 상위등급으로 승급하기 위해 심판들이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최근 진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진주축구단 창단에 대해 장 국장은 “늦었지만 아주 잘하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장 국장은 “진주는 축구와 오랜 인연이 있고 조기축구회가 전국에서 가장 많을 정도로 축구가 시민생활의 일부가 돼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진주축구단 창단이 시민단합과 진주브랜드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장 국장은 그러나 “축구단 운영은 양날의 칼과 같다며 잘 하면 시민단합과 브랜드 제고에 큰 도움이 되지만 잘못하면 적자의 늪에서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유능한 축구행정가의 도움을 잘 받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국장은 진주축구단 운영에 대해 개인 견해를 전제로 10억 정도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많은 돈을 들여서 하는 것도 좋지만 처음에는 진주출신의 축구인적네트워크를 잘 활용하고 대한축구협회의 도움을 받아서 출범하면 그리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훌륭한 축구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국장은 경상대학교 농대에서 ‘콩 박사’로 유명한 장권열 교수의 둘째 아들이다.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축구선수도 아니면서 이태리 코베르치아노 축구학교에서 7년간 유학하는 특이한 선택을 했다. 진주고등학교 동기로는 박대출 진주갑 국회의원, 조경규 전 환경부 장관, 우상일 문체부 국장, 정병하 대검 감찰본부장, 김경수 전 고검장, 박금석 하동부군수, 양재정 두성식품 대표, 홍한표 대련세라믹 대표, 주옥수 경남과기대 교수, 하충식 창원한마음병원 원장 등이 있다.

다음은 장연환 국장과의 인터뷰이다.

▲현재 장 국장이 대한축구협회(이하 축구협회)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대한축구협회 파주트레이닝 센터를 관리하고 있는 국장이다.

▲파주트레이닝센터는 무엇하는 곳인가.

-국가대표선수들이 훈련하는 곳이다. 대표선수들이 훈련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훈련하는 데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그런 것들을 차질 없이 지원을 하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이다.

▲축구협회는 언제 들어왔나.

-2000년 1월 3일 들어 왔다.

▲어떻게 해서 들어오게 됐나.

-당시 저는 이태리에서 축구학교를 졸업하고 호서대에서 전임강사로 재직하고 있던 때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있었다. 세계적인 행사인 월드컵을 준비해야 되는 데 우리나라에 축구행정가가 귀했다. 그래서 협회에서 요청이 왔고 흔쾌히 수락했다.

▲대학교수는 안정된 직장인데 축구협회에 가는 것에 갈등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저는 축구에 미쳐있던 때이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치러지는데 기여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제 열정을 바쳐서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른다는 생각만 있었다. 직책이 제 인생에 도움이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은 전혀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다.

▲월드컵을 성공시키는 데 선수나 감독이 아닌 행정가들이 필요한가.

-선수나 감독은 플레이어들이다. 그 플레이어들이 잘 뛰고 게임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뒤에서 보이지 않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축구행정가들이다. 축구행정가들이 유능해야 게임이 잘 진행되고 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러진다. 이뿐 아니라 행정가들이 유능해야 선수단이나 선수들이 잘 성장할 수 있다. 좋은 선수와 좋은 구단이 되려면 반드시 유능한 축구행정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어야 한다. 2002년 월드컵이 성공한 데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동한 축구행정가들의 공이 크다.

▲장 국장이 축구협회에서 지금까지 주로 한 일은 무엇인가.

-2000년 협회에 들어온 이후 2002년 월드컵 개최 때까지는 정신없이 지냈다. 오로지 월드컵 성공을 위해서 밤낮없이 일했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그 사후처리 때문에 한동안 바빴다. 정신을 좀 차리고 난 이후에는 가장 오래 한 일은 축구협회가 매월 발간하는 ‘기술보고서’를 만든 일이다. 14년 동안 이 일을 했다. 이 보고서는 전국의 선수단과 선수들에게 제공된다.

▲기술보고서는 어떤 내용으로 발간되나.

-매월 가장 핫한 게임을 분석하여 게재한다. 또 그때그때의 축구계 흐름, 새로운 기술, 유명감독, 선수의 기량 등을 종합 분석하여 발간한다. 이 보고서만 보면 축구계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래서 축구감독이나 선수들은 이 보고서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제가 제안해서 발간하기 시작했다.

▲그럼, 장 국장은 세계축구의 흐름이나 기술현황, 우리나라 축구계의 흐름, 선수들에 대해 잘 알겠다.

-그렇다. 우리나라만 한정해서 말하자면 우리나라 감독들의 성향, 선수들의 장단점, 구단, 선수단의 현황 등을 저만큼 아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축구협회에서 발간하는 기술보고서는 감독이나 선수들이 꼭 읽어야 한다.

▲진주출신의 유명선수였다가 지금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광래 감독은 어떤가.

-조 감독은 머리가 좋고 섬세한 사람이다. 때로는 만화 같은 전략을 구사한다. 그래서 선수들이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조 감독이 역량을 발휘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대구FC에서도 3년차에 접어들자 1부로 올라와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도 조 감독의 그런 성향 때문이다.

▲조 감독의 경우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구단에 가면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감독은 뛰어난데 선수들이 못 따라올 수도 있다. 그래서 급하게 성과를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실패할 위험도 있다.

▲최근 U20대회에서 준우승한 정정용 감독의 성향은 어떤가.

-정 감독의 성향은 ‘팀은 하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활동하는 사람이다.

▲대부분 감독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꼭 그렇지는 않다. ‘팀은 하나다’는 주제는 최근의 흐름이다. 이렇게 되려면 선수들과 부단히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감독의 희생이 크다. 감독이 부지런하고 희생하는 정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말은 좋지만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타선수 출신들은 오히려 이런 면에서는 약점이 될 수도 있다.

▲협회에서 기술보고서를 만든 것 외에 또 어떤 일을 했나.

-축구협회 심판국장을 했다.

▲심판국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대한축구협회 심판국은 축구심판들에 대해 교육, 배정, 행정적 지원을 하는 곳이다. 축구심판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구체적으로 아마추어심판, 프로심판, 국제심판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아마추어심판에 대해서 1,2,3,4급으로 단계를 나눈 것을 제가 만든 것이다.

▲그게 어떤 의미가 있나.

-사실 가장 많은 경기가 열리는 것이 아마추어 경기이다. 초, 중, 고, 대학, 실업팀의 경기는 모두 아마추어 게임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가장 많은 심판도 아마추어심판이다. 그런데 제가 오기 전까지는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이 없었다. 이것을 단계를 나누어서 관리하니 심판들의 자질이 크게 향상됐다.

▲이태리로 축구유학을 간 이유는 뭔가.

-제가 유학을 간 때가 1985년이다. 당시는 이태리가 전 세계 축구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다. 일반인들이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유명축구선수인 아르헨티나 출신의 마라도나는 이태리 나폴리팀에 있었고 프랑스 출신의 미셀플라티니는 유벤투스 선수였다. 또 독일 출신의 마테오스는 인터밀란에 소속돼 있었다. 이처럼 당시는 이태리가 세계축구를 주도하고 있었다. 요즈음은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가 세계축구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데 당시는 이태리 세리아 A리그가 그랬다. 그래서 이태리로 유학을 갔다.

▲학교는 어디인가.

-피렌체에 있는 고베르치아노 축구학교였다.

▲이태리는 축구학교가 별도로 있나.

-그렇다. 우리나라 유도대학처럼 축구학교가 별도로 있어서 축구마케팅, 축구행정 등을 가르친다. 거기서 7년간 축구행정을 공부하고 귀국했다.

▲귀국해서는 무얼 했나.

-처음에는 국내에 적응하느라 진주에서 ‘장연환 유소년 축구단’을 만들어 운영을 했다. 3년간 하다가 호서대에서 교수 제의가 와서 전임강사를 4년 정도 했다. 그리고는 앞에서 말한 축구협회 요청으로 축구협회에 들어갔다.

▲진주 얘기를 해 보자. 요즈음 진주에 축구단을 만든다는 움직임이 있다.

-저도 들어서 알고 있다. 조규일 진주시장이 공약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다. 경상대학교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용역을 한다며 연락이 와서 얘기를 해 준 적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아주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주는 진주고등학교 축구부로 인해 축구와 오랜 인연을 가진 도시이다. 지금도 전국에서 조기축구회가 가장 많이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시민들이 축구를 사랑한다. 이런 전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축구구단을 만들면 시민들을 단합시키고 진주시의 브랜드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창희 전 시장 때도 축구계에서 이런 말들이 있었지만 이 전 시장이 통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사실 늦은 감이 있다.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나.

-축구는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스포츠이다. 따라서 도시 브랜드를 높이는데 축구만한 스포츠가 없다. 또 진주에서 축구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진로를 열어주는 의미에서도 진주축구단이 있다는 것은 큰 희망이 된다. 시민들을 단합시키고 애향심을 갖게 하며 진주시 브랜드를 높이고 어린 학생들에게 장래를 열어준다는 여러 의미에서 축구단을 만드는 것은 비용보다 그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문제점은 없나.

-축구단을 창단하는 것은 양날의 칼이다. 잘 운영하면 앞에서 말한 시민단합, 진주 브랜드 제고 등에 크게 도움이 된다. 또 흑자운영으로 돈도 벌고 후진들의 양성, 진주출신 유명 축구인의 탄생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 운영하면 많은 돈이 낭비되는 적자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축구단을 창단할 때 처음부터 대한축구협회 등과 잘 소통하고 유능한 축구행정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기본을 잘 짜야 한다.

▲비용은 얼마나 들 것으로 생각하나.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제 생각으로는 첫해에는 10억 원 정도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12억~13억 원 정도면 축구구단을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적게 드나. 시에서는 30억 원 이상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 같던데.

-축구행정을 잘 모르면 결국 돈으로 메워야 한다. 그러나 돈을 많이 쓴다고 꼭 좋은 구단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제 생각으로는 10억 원 정도면 크게 어렵지 않게 운영할 수 있다고 본다.

▲진주시가 축구구단을 만드는 데 대한축구협회의 도움이 필요하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조언을 잘 해주고 길을 잘 이끌어 주면 돈을 적게 들이고 구단을 운영해 성공할 수 있다. 이런 게 없으면 결국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시쳇말로 수업료를 많이 내야 한다. 축구단이 성공하는 것은 유명한 선수를 영입하는 것보다 유능한 축구행정가를 영입하는 게 먼저다.

▲구단을 만들면 어떻게 진행되나.

-처음에는 K4로 시작해야 한다. K4로 시작해서 일 년 동안 잘 하면 K3로 승급을 해서 게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면 진주시민축구단은 흑자운영도 가능하다.

▲장 국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아버님이 유명한 ‘경상대 콩박사’로 알고 있다.

-그렇다. 아버님이 경상대 농대에서 재직하신 장권열 교수이다. 제가 2남4녀 중 세 째이다. 위로 누나와 형님이 계신다. 아들로는 차남이다. 아버님은 평생을 콩에 대해 연구해 일반에게는 이름보다 ‘콩 박사’로 많이 알려져 있다.

▲지금 생존해 계신가.

-아니다. 1994년도에 돌아가셨다. 좀 일찍 돌아가셨다. 오래 사셨더라면 국내 콩 연구에 더 큰 업적을 남기셨을 터인데 안타깝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책을 놓지 않으셨다. 개인적으로 아버님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이다. 어머님은 아직 살아계신다.

▲논문을 그렇게 많이 쓰셨다고 들었다.

-그렇다. 평생 430편의 논문을 쓰신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그 기록이 후배들에 의해 깨어지지 않고 있다고 알고 있다. 아버님의 연구업적을 평가받아 지난해 논개가락지의 날에 논개가락지 교육부문 상을 받았다. 저도 공부를 하는 사람이지만 아버지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한다.

▲장 국장은 학교를 어디를 졸업했나.

-진주고등학교와 앞에서 말한 이태리 고베르치아노 축구학교를 졸업하고 호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친한 친구로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

-축구계에는 대부분 감독들이 선후배 할 것 없이 친하다. 학교 친구로는 박대출 진주갑 국회의원, 조경규 전 환경부 장관, 정병하 현 대검 감찰본부장, 김경수 전 고검장, 우상일 현 문체부 국장, 박금석 하동 부군수, 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양재정 두성식품 대표, 홍한표 대련세라믹 대표, 주옥수 경남과기대 교수, 창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하충식 한마음병원 원장 등이 있다.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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