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의자
[정용우칼럼] 의자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4.02.2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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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지난해 가을, 아내와 함께 합천 영상테마파크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간여행 제대로 한 셈이다. 2004년에 건립한 영상테마파크 안에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세트장이 수없이 많다. 상해임시정부 건물, 조선총독부 건물 등등... 이 테마파크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5분 정도 언덕으로 올라가면 청와대를 68% 축소하여 만든 세트장도 있다. 외관뿐만 아니라 실내구조도 매우 흡사하다. 청와대가 개방되기 이전에는 그야말로 인기세트장이었지만 청와대 개방이후 희소성이 떨어졌단다. 그래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대통령 집무실과 회의실, 기자회견장 등이 마련되어 있는데 곳곳이 사진 촬영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다. 그 중에서도 대통령 의자는 압권. 나도 아내의 권유에 따라 이 의자에 앉아 한 컷 찍었다. 촬영 후 사진을 확인해 보니 찍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말하자면 영 어울리지 아니했다. 정장 아닌 그냥 일반복 차림도 그렇거니와 머리도 염색하지 않아 하얗고, 얼굴은 늙어 쭈글쭈글... 무엇보다도 그 격(格)이 맞질 않았다. 높은 사람 앉는 의자에는 그 격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함부로 앉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얼핏 지나갔다. 말하자면 잘못된 자리에 앉았다. 주역(周易)은 효(爻)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경우를 ‘득위(得位)’라 하고, 잘못된 자리에 가 있는 경우를 ‘실위(失位)’라고 하면서 득위는 아름답지만 실위는 위태롭다고 했다. 위태롭지 않으려면 나 같은 사람에게는 역시 우리 집 거실 앞에 놓여 있는 소박한 의자(아파트단지 폐가구 재활용품)가 제격이다. 이곳이 한층 느긋하고, 편안하고, 행복한 곳임을 알겠다. 이런 이유에서 옛 현인들은 ‘실위’는 경계하고 ‘득위’는 권장했던 것 같다.

지금은 늙고 병들어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한창 활동할 나이의 나 역시 ‘의자 앉기 게임’에 집착했던 적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의자를 빙 둘러 모아 놓고 의자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심판이 사인을 주면 민첩함을 발휘해 내 의자를 쟁취하는 게임. 언뜻 평범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파고들면 내 의자, 내 자리를 갖는 것에 대한 인류의 오랜 욕망과 본능, 집착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것이 지나칠 정도로 선을 넘었을 때는 본인은 물론 국가에도 해를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경고라도 하듯 외젠 이오네스코(프랑스 작가, 세계적인 반연극 - 앙티 데아트르 - 의 거장)는 ‘의자들’이라는 희곡을 발표해서 인간의 부조리를 냉혹하게 비판한다. 아주 풍자적인 이 희곡에는 나이를 알 수 없는 두 노인 부부만 무대 위에 등장하는 데, 이 두 노인 부부는 초대받은 높은 손님들이 몰려올 때마다 “어서 오십시오.”하고 인사하면서 무대 위에 의자들을 갖다 놓는다. 그 의자에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로 보이는 것은 빈 의자들뿐이다. 결국 무대 위에는 빈 의자들만 늘어나게 되는 셈. 이오네스코는 이 전위극을 통하여 인간을 하나의 도구로 형상화 하고 있다. 인간의 지위라든가 명예라든가 그런 것은 없고 다만 있는 것은 하나의 도구인 ‘의자들’ 뿐이라는 강력한 충격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최인호, ‘눈물’). 우리에게 의자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셈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의자를 놓고 맹렬히 싸운다.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를 독점하려 하며, 낮은 자리에 앉은 사람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호시탐탐 노린다. 여기서 인간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종종 행사나 집회에서 이런저런 자리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나 순서에 자기 이름이 없다고 항의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도 다 이러한 갈등구조 때문에 일어난 조금은 슬픈 소란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다. ‘직(直)’한 사명감은 없고 오로지 ‘직(職)’만 탐하는 무리가 화를 당할지 욕을 당할지에 대한 가늠도 없이 그저 눈앞의 이익을 향해 불나비처럼 덤비고 싸우는 흉한 꼴을 보이고 있다. 자기가 최고 능력자이며 자기가 당선되면 모든 민생문제를 해결할 듯이 나선다. 그러나 가짜는 안 된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자기가 제일 잘 아는 법. 자기 자신을 직시하여 만약 가짜다 싶으면 이쯤에서 물러서는 것이 옳다. ‘남우충수(濫竽充數) - 가짜 악사로 머릿수를 채우는 행위, 즉 자격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비유 : 한비자(韓非子)’ - 는 자기도 망치고 국가도 망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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