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 고려 문헌이 전하는 진주의 자랑거리 용암사의 유물
[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 고려 문헌이 전하는 진주의 자랑거리 용암사의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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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0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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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가 삼한통일을 기원하며 창건했다’ 기록 전해와
진주 이반성 용암리에 소재…파손방치된 것 1962년 정리

전체적으로 비례가 잘 맞고 모든 부재가 8각으로 조성
고려시대 초기 조성 추정…불교미술사 연구의 귀한 자료

<34> 진주 용암사지(龍巖寺址) 승탑(僧塔)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승탑. 전형적인 팔각원당형이며, 파손된 지대석, 중대석, 탑신 등은 새로 만들었다. 사진 출처 : 뮨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승탑. 전형적인 팔각원당형이며, 파손된 지대석, 중대석, 탑신 등은 새로 만들었다.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근래 각 지자체는 지역특화산업보단 그들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전통, 문화재를 지역관광 홍보 수단으로 삼고 있다. 이는 정보·문화중심의 4차 혁명 시대에 발맞춘 지극히 바람직한 모습일뿐더러 우리 진주에도 정확히 부합되는 현상이다.

우리 진주의 자랑거리라면 역시 지역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다양하고 우수한 관련 유산들로, 이번 호에선 그 중 고려 초기 유물인 진주 용암사지 승탑 부도(浮屠)의 역사성과 문화재로서 가치를 알아보려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진주의 자랑거리라면 장구한 역사, 수많은 인걸(人傑)의 지속적 출현, 그리고 충절과 인권운동의 중심지라는 것이다. 또한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 △산청 사월리 석조여래좌상 △진주 용암사지 승탑 △진주 묘엄사지 3층석탑 △도기 바퀴장식 뿔잔 △중완구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 △진주성 △진주 평거동 고려고분군 △김시민장군 전공비 △쌍충사적비 △용암사지 석불 △청곡사 3층석불 △진주향교 △삼선암 고려동종 △두방암 다층석탑 △이충무공 진배미유지 △광제산 봉수대 △영남초정사 문루 △남악서원 같은 지역 선대인들이 남긴 문화 업적과 유적들, △개천예술제 △진주남강 유등축제 △진주논개제 같은 축제들, 그리고 ‘진주8경’이라 일컫는 △진주성 촉석루 △남강 의암 △뒤벼리 △새벼리 △망진산 봉수대 △비봉산의 봄 △월아산 해돋이 △진양호 노을 등 주요 경관들도 빼놓을 수 없을 진주의 보물이다.

필자는 앞 예들엔 들지 않았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이반성면 용암리의 고려 초기 유물인 용암사지 승탑에 관해 얘기해볼 것이다. 용암사지 승탑은 용암사(龍巖寺)에 있다. 용암사는 고려 박전지(朴全之)라는 분의 ‘영봉산 용암사 중창기’라는 문집 속 “도선국사가 지리산 성모천왕으로부터 세 개의 암사를 창건하면 삼한이 통일된다하여 선암사(仙巖寺), 운암사(雲巖寺)와 함께 용암사를 지었다”는 기록을 통해 창건 기원을 전하고 있다. 또한 고려 때 학자인 최자(崔滋)의 ‘만덕산 백련사 원묘국사비’ 같은 문헌도 그 기원을 일부 전하고 있는데, 해당 비문에 따르면 천태종을 중흥시킨 원묘국사와 관련된 ‘용암사설화’가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自智異山, 道過南原歸正寺, 其住持玄恪夢有人告曰, “明日三生持法華師來宜淨掃迎之。主人如教掃門庭具殽饌以待, 師乘晚果至, 玄恪具說所夢, 又師屢夢智者眾講妙宗, 或在華長庵安禪不動, 竟服魔魅, 或山神指劃寺基, 或龍巖社道人希亮夢金蓮座待師等, 異夢靈恠頗多, 然此非所宜言. 故不悉云。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지리산으로부터 남원 귀정사를 지나는데, 그 절의 주지 현각의 꿈에 어떤 사람이 와서 하는 말이 “내일 삼생지법화사(三生持法華師, 삼생 동안이나 법화를 수행한 사람)가 올 것이니, 깨끗이 소제하고 맞이하라”고 했다. 주인이 꿈에 시킨 대로 뜰을 쓸고 음식을 장만해두고 기다렸더니, 대사가 과연 어둠을 타고 이르러, 현각이 그 꿈 이야기를 했다. 또 대사가 여러 차례에 걸쳐 지자(智者)대사가 여러 사람에게 ‘묘종(妙宗)’을 강설하는 꿈을 꾸었고, 혹은 화장암(華長庵)에 머물며 참선하면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 끝내 마귀들에게서 항복받기도하고, 혹은 산신이 절터자리를 가리켜 주기도하고, 혹은 용암사 도인 희랑(希亮)이 금련좌(金蓮座)에서 대사를 기다리는 꿈을 꾸는 등 신이한 꿈이 신령스럽고 괴이한 것이 많았다하니, 이것은 우리 유자(儒者)가 말할 바가 아니므로 다 쓰지 않는다.”

이 외 보다 정확한 문헌기록은 더 없으나, 폐허지 위에 흩어져 있는 부조 및 석불좌상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며 사찰도 고려시대에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315년 충숙왕은 제찰사 한중회 등에게 전지를 내려 용암사를 경영하게 하였고, 1316년 가을에 사찰을 중창하게 해 1318년 80여 칸을 새로 짓고 20여 칸을 중수했다. 당시 전당 안에는 닥나무 종이를 바르고 왕골을 깔았다고 하며, 금당에는 석가여래상을 봉안했다고 한다. 또한 정오가 저축한 돈과 모금한 것으로 관음보살, 정취보살상을 도금했으며 대장경도 봉안했다고 한다. 그 시절 염장별감 이백겸과 방우정은 왕명에 따라 설전지 3만 여장과 옻칠한 함상자 140여 개를 만들었으며, 정오의 제자 승숙, 일생 등은 강화도 관당에 가서 부족한 장경을 찍어와 신본과 구본을 합해 모두 600여 함을 만들어 비단으로 치장한 뒤 새 전당에 봉안했다. 이 해 11월18일 방우정이 다시 왕명을 받아 7일 동안 낙성법회를 성대하게 베풀었다고 한다. 이러한 용암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현재 용암사지에는 해주 정씨들이 세운 화덕재가 있으며, 건물 뒤편으로 용암사지 승탑(보물 제372호)을 비롯해 용암사지석불(경남유형문화재 제4호, 1972년 2월 12일), 석등, 석비, 석조물 주변으로 와편과 자기편이 지표에서 확인되었다. 부도의 명칭은 명문, 문헌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용암사지 승탑’이라 이름 지어 보물로 지정하였다. 또한 용암사지 내에는 건물의 부재로 추정되는 치석된 석재들이 기단, 담장 등에 쓰이고 있다.

이처럼 용암사지에는 고려시대 승탑(부도)을 비롯 석불, 석등, 석비 등이 산재해 있어 불교 미술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바로 이것이 용암사지의 문화재적 가치인 것이다.

최초 용암사지 서북쪽에 있었던 승탑은 파손되었던 것을 1962년 원래 위치로 옮겨놓은 것이다. 기단은 8각으로 하대석 각 면에 구름무늬를 깊게 새기고 그 안에 불법을 수호하는 천부상(天部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했는데 그 수법이 매우 우수하다. 상대석에는 복발의 연화문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있고 복원된 탑신석 위에는 귀꽃이 장식된 팔각지붕형의 옥개석이 얹어져 있으며, 옥개석 아래에는 얇은 테두리의 편평한 받침이 있다.

또한 경사면은 완만하고 꼭대기에는 연꽃무늬가 얇은 띠로 둘러져있다. 상륜부는 석탑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보주, 보개, 보륜, 복발, 노반이 올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잘 맞고 모든 부재가 8각으로 조성돼 기본형을 따르고 있어 주위의 석불, 석등과 같은 시기인 고려 전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신웅

본지 주필

전 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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