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까치집
[정용우칼럼] 까치집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4.03.13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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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비가 내리는 날이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강둑길 산책을 할 수 없다. 그럴 때에는 거실 앞에 놓여있는 실내자전거를 탄다. 실내자전거를 탈 때는 우리 집 주변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에게 눈길이 자주 머문다. 우리 집 서쪽 방향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키 큰 은행나무도 그 중 하나다. 키가 엄청 크다. 약 30미터. 이 나무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까치집 두 개가 걸려있었다. 이파리가 달려있을 때는 까치집이 있는지도 몰랐지만 겨울이 되면 이것들이 나뭇가지 사이에 걸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몇 년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더니 어느 날 이 까치집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까치가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10일 전부터 이 나무를 중심으로 해서 까치 두 마리가 계속 날아다닌다. 며칠 동안 그랬다. 나는 그때 눈치 챘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서로 사랑하는 짝을 찾았나보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고 새끼를 키울 보금자리를 지으려고 탐색중인 것 같다고.

내 추측이 맞았다. 그러고서 10여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 또 실내자전거를 탈 기회가 생겼다. 여느 날처럼 집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은행나무를 쳐다보는데 놀랍게도 까치집이 한 채 지어져 있지 않은가. 지상으로부터 20미터 정도 위치다. 신기하게도 예전에 까치집이 지어져 있다가 사라져버린 그곳에 다시 지었다. 사람으로 치면 재건축한 셈이다. 집 속이 약간 보일 정도이니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까치들은 이 집 주위를 맴돌거나 집 안으로 들어가 작업 중이다. 집을 지어나가면서 이 두 마리 까치도 알콩달콩 사랑의 기쁨을 넓혀 가리니 그리고 집을 완성 한 후에는 귀여운 새끼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인터넷에 들어가 살펴보니 까치들은 3-4월이 산란기라서 그 전에 까치집을 완성한단다. 새끼를 낳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집이 필요하기 때문. 까치집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1600-1800여 회나 날개짓을 하여 건축 재료를 물고 와야 한단다. 새들도 우리 사람들처럼 자신들이 기거할 곳은 저리도 정성을 기울여 짓는구나 싶다. 우리가 일견 보기에는 엉성하게 가지만 얽어놓은 것 같지만 거기에는 치밀한 건축기법이 총동원된단다. 흔히 '헝클어진 머리'를 묘사할 때 쓰는 까치집에도 자연이 전하는 위대한 건축술이 담겨있다니... 까치집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과학에 기반한 정교한 건축물인 것이다.

게다가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안전하게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는 높은 나뭇가지 사이에 집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까치들은 행운아이다. 시골 사는 행운이랄까. 도시권에 자리 잡은 까치집은 그렇지 못하다. 도시가 커 나가면서 녹지가 줄어든다. 집 지을 데를 찾지 못한 까치들은 집터로 전봇대를 택하게 된다. 까치는 집을 지을 때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그걸 두텁게 쌓아서 집을 만들어 가는데 도시 지역에서 나뭇가지를 구하지 못하다 보니 쇠 옷걸이, 철사 도막 같은 걸 가져다가 집을 짓는다. 전도체가 전봇대에 놓이다 보면 전선과 전선 사이를 연결하는 경우가 생긴다. 또 맑은 날씨에는 괜찮다가도 비가 내리면 전도체로 변하기도 한다. 이것이 정전의 요인이 된단다. 까치집이 정전 요인의 10%를 상회하기에 이르렀다니 한국전력으로서는 애물단지인 셈이다. 그래서 철거대상이 되고... 한국전력에서 주로 봄철이 되면 이 까치집 제거 작업을 한다. 이렇게 되면 까치 부부와 막 태어난 새끼들은 졸지에 보금자리를 잃은 채 거리로 쫓겨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집 근처 은행나무 가지 사이에 지은 까치집은 행운을 잡은 셈.

이 행운을 잡은 까치들이 부럽다. 하여 나도 운이 허락한다면 저들 행운아 까치들처럼 높은 곳, 바람과 햇빛을 벗 삼아 노닐 수 있는 허공에 집 한 채 짓고 싶다. 그러나 날개가 없으니 아예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마음이 솜처럼 가볍다면 그 기분을 그대로 간직한 집 한 채 지어낼 수 있으려니... 그러나 어쩌겠는가. 까치들은 키 큰 나무만 있으면 재건축을 저렇게 잘도 해내는데 우리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의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 터. 우리네 재건축 시장을 둘러싼 잡음이 이를 잘 증명해 내지 않는가.

나는 오늘도 실내자전거를 타면서 은행나무 가지 사이에 지어진 까치집을 바라본다. 하루 빨리 이 집이 완성되어 귀여운 아기 새가 태어나길 기대한다. 벌써부터 둥지 밖으로 새어나올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까치는 좋은 소식 전해주는 길조라 했으니 그들 지저귀는 소리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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