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뿌리
[정용우칼럼] 뿌리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4.03.2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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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매년 가을이 되면 막내 동생이 대추 한 박스를 보내준다. 자기 동서가 충남 보령에서 농사지은 것이라면서. 그런데 그 대추는 내가 예전에 먹어보지 못한 대추다. 그 맛이 일품이다. 대추 크기도 엄청나다. 요즘 들어 품종개량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대추나무를 이웃 용식이네 집 담벼락 근처에도 심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엄청나게 많이 열리기도 하려니와 그 크기도 동생이 보내준 대추와 거의 비슷했다. 이 모습을 보고 나도 우리 집에 그런 대추나무 한 그루 심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반성장에 가서 한 그루 사서 우리 집 출입문 근처 화단에 심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면서 우리가 선택하여 심어놓은 곳이 마땅치 않아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아내와 상의했더니 아내도 그러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옮겨 심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있던 차, 봄이 다가오면서 막상 이를 실현하자니 마음이 무겁다. 나무뿌리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묘판에서 옮겨져 이제 겨우 정착했다 싶었는데... 이곳으로 옮겨져 지난 일 년 동안 비바람이 불어도, 가뭄이 들어도, 예측하고 준비하여 적응하고 잘 견뎌내면서 땅속 깊이 단단하게 뿌리를 박아나가고 있는데 또다시 삶의 터전을 바꾸어야 한다니... 내가 원망스럽게 느껴질 터이다. 이런 원망을 뒤로하더라도 나 또한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이렇게 매년 삶의 터전을 옮겨대는데도 과연 이 대추나무가 다시 뿌리를 내려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뿌리의 힘을 믿는다. 여러 번 옮겨 심어 힘겹기는 하겠지만 땅속에서 식물체를 떠받치고 밑동으로서 또 수분과 양분을 빨아올리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해줄 것으로 믿는다. 수년간 나무와 꽃들을 키우고 가꾸면서 획득한 경험의 소산이다. 내가 또다시 옮겨 심을 이 대추나무도 굵은 뿌리와 실뿌리가 연결되어 어떤 어려움도 버텨내며 생명의 물을 힘차게 순환시켜 봄이면 어김없이 싱그러운 새순이 돋고 여름엔 무럭무럭 자라서 가을이면 맛있는 대추를 우리에게 풍성하게 선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세상의 모든 꽃은 뿌리의 꽃이며 그 꽃이 지면서 열매를 맺는다. 그런 점에서 뿌리가 바로 꽃이고 열매다, 뿌리의 노고와 사랑 없이는 꽃도 열매도 없다. 꽃과 열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뿌리가 튼튼하고 강하면 자연재해도 견뎌낸다. ‘기적의 소나무’에 관한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이와테(岩手)현의 다카다 소나무 숲엔 높이 10m의 쓰나미가 덮쳤다. 2km의 해안선에 나란히 있던 소나무 7만 그루는 쓸려나갔고 숲 바로 뒷마을의 거의 모든 건물은 붕괴했다. 마을에서만 1750명이 사망·실종했다. 하지만 27.7m의 소나무 한 그루는 황폐화된 벌판에 꼿꼿이 서 있었다. 173년 된 소나무가 어떻게 쓰나미를 버텼는지, 아무도 모른다. 비(非)현실적인 소나무는 일본인에게 ‘재해에 굴하지 않는 희망’으로 기적의 소나무가 됐다. 보존 처리한 소나무는 본래 위치에 서 있고 쓰나미에도 버틴 뿌리는 일본 각지를 돌고 있다. 기적의 소나무는 지진과 같은 재해를 피해 도망갈 수 없는 섬나라 일본인에겐 희망의 메시지다. 얽히고설킨 직경 13m의 거대한 뿌리 앞에서 합장하는 일본인도 있을 만큼(2023.09.26. 조선일보).

그래서 용비어천가(제2장)에서는 이렇게 노래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니 꽃도 예쁘고 열매도 많이 열리고...’ 이렇게 뿌리가 우리네 삶에 좋은 이미지를 선사하면서 우리의 삶에도 뿌리의 역할은 미화되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해준다. 이는 곧 뿌리가 우리네 삶에서 기본, 근본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하나의 메시지다. 기본이 무너지고 말단이 횡행하는 시대, 본질을 숨긴 채 가식과 허상의 껍질만 잔뜩 두르고 있는 우리들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정치의 계절. 너도나도 국회의원 후보자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서 활동에 비해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정치는 민생이 근본이고 당쟁은 말단이다. 지지율이 안 오른다고 고민하기 전에,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고민하기 전에 정치의 근본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정치만 그러한 게 아니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기본이 튼튼하고, 본질이 아름답고, 내면이 충실하면 지지와 존경과 칭찬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대추나무를 옮겨심기 전에 뿌리에게 위로를 보내며 한 생각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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