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손녀의 춤
[정용우칼럼] 손녀의 춤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4.04.0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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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며칠 전, 서울에서 친구 한 분이 진주에 왔다. 아내가 스페인 여행 중이라 모처럼 혼자 지내게 되었는데 갑자기 진주를 방문하고 싶어졌단다. 그 방문 계획에 나를 만나는 일정도 집어넣었고. 그 친구는 아직 경제활동을 하는 중이라 시간 내기가 여의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나를 위해 한나절을 비워주었다. 우리는 반갑게 만나 점심식사를 했다. 술도 제법 마셨다. 기분 좋게 취한 상태에서 지난 세월 우리 둘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여러 일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만큼 즐겁게 놀았다.

그는 내 고교 동창친구인데 지난해 겨울 초입에 아들 결혼식을 거행했다. 한 달 전에 결혼식을 갖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직접 참석해서 축하 해주고 싶었다. 그 당시 건강상태가 제법 좋아졌던 나는 이때에 맞추어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도 볼 겸해서 서울나들이를 계획했었다. 고속버스표도 미리 예약해 두고 양복 정장과 와이셔츠도 장롱에서 꺼내 다림질 해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완료한 상태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이곳 고향으로 내려온 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대와 설렘 때문인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거리다가 새벽을 맞고... 잠을 이루지 못하니 오랜 지병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 있는 나는 그만 기침감기가 발병하고 말았다. 이런 상태로는 도무지 서울에 다녀올 수 없을 것 같아 버스 예약을 취소하고 서울나들이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 후 몸이 정상화되기까지는 며칠이 걸렸다. 그런데 몸은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평소 지병이 있는 자들이 겪는 우울증 증세가 다시 나타났다. 서울나들이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탓인 것 같다. 제법 오랫동안 이 우울증 증세가 가라앉지 않으니 연말 대전 딸네 가족들과 함께 하기로 한 송년파티도 자연 무산되었다. 송년파티를 기대하고 있던 손주들에게 애들 엄마가 이야기한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몸이 아프면서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 대전에 올 수가 없단다.” 이 말을 듣고는 초등학교 다니는 손녀가 “그럼 내가 지수 한 번 갔다 와야겠네.” 하더란다. 예전에 내가 병고로 인한 우울증 증세가 나타날 때 어린 너를 품안에 꼭 안고 있으면 이 할아버지 생명의 율동으로 우울증 증세가 사라지곤 했다는 이야기를 손녀에게 해준 적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말하자면 자기가 지수로 가서 할아버지 품에 한 번 안겨주면 예전처럼 우울증 증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 그런데 이제는 손녀도 초등학교(2학년)에 재학 중이고 또한 각종 학원에 다니고 있는 터라 이곳 시골까지 다녀갈 시간을 쉽게 낼 수 없다. 그래서 손녀와 엄마가 묘안을 생각해냈던 모양이다. 손녀가 춤을 추고 엄마가 이를 동영상으로 찍어 나에게 보내주기로. 이런 과정을 거쳐 나는 손녀의 춤추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받아보게 되었다.

손녀의 춤 동영상을 받고 나는 몇 번이나 재생시켜 보았는지 모른다. 마음이 우울할 때도 이 동영상을 보면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참 춤을 잘 춘다. 그래서 딸에게 전화를 해서 “우리 예쁜이가 춤을 너무 잘 춘다.”고 했더니 딸은 그저 그런 춤이라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요즘 유행하는 춤이란다. 딸은 그렇게 이야기 했어도 나에게는 어느 춤꾼 못지않지 않게 잘 춘 최고의 춤이다. 나의 이러한 생각에 혹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냥 그런 춤을 최고의 춤이라고 하다니... 그 의문도 정당하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에 정답이 없는 만큼 춤 감상의 감흥에 정답이 있을까. 격식이나 형식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떠나 감동하는 나만의 이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누구나 감상적으로 되는 포인트가 있다. 이 감상의 포인트로 인해 내 어린 손주의 춤이 맘에 꽂혔다면 그것을 최고로 쳐도 무방하다.

이처럼 일견 보잘 것 없는 춤이지만 내가 손녀의 춤에 대해 이토록 찬사를 아끼지 않은 이유는 나와 손녀 사이에 불어난 공감능력 때문이다. 내 춤으로 인해 할아버지가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손녀의 염원, 그리고 이 춤을 통해 위로받고 있다는 할아버지 생각이 함께 작동한 것이리니... 나는 이 사실을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도 감동이라고 했다. 하여 각기 손녀를 두고 있는 우리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노년에 들어 이런저런 병고에 시달릴 때마다 느끼는 감정. “어린 손녀는 우리의 약아(藥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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