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재연구원, 조선시대 궁궐 석재 산지 규명
국립문화재연구원, 조선시대 궁궐 석재 산지 규명
  • 황화영 기자
  • 승인 2024.04.15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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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궁궐 원형 복원 위해 석재 산지 조사‧연구
한양도성 내, 서교(西郊), 동교(東郊) 등 크게 세 지역 특정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조선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과 종묘에 사용된 석재의 산지를 확인키 위해 고문헌 조사, 현장 조사, 비파괴 분석 기술 등을 활용한 연구를 진행했다고 15일 밝혔다.

조선의 궁궐은 1339년 태조 4년, 경복궁과 종묘가 창건된 후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덕수궁), 경덕궁(경희궁)이다.

이들 궁궐은 임진왜란과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과 중건을 반복해,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궁궐 대부분이 훼손되고 변형됐다. 이에 문화재청에서는 1980년대부터 궁궐의 원형을 되찾기 위한 복원을 시작,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이때 사용할 대체 석재를 선정하기 위해 석재 산지 조사와 연구를 함께 수행해 왔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이 조선의 궁궐에 사용된 석재 중 총 9,961점에 대해 비파괴 암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사용 석재 종류는 담홍색 화강암 95% 이상과 진홍색 화강암, 흑운모 화강암 등으로 확인됐다.

또한 궁궐 조성 시 사용된 석재 산지 관련 고문헌 기록을 조사한 결과, 한양도성 내, 서교(西郊), 동교(東郊)까지 크게 세 지역으로 석재 산지를 특정했다.

한편, 한양도성 내에서는 돌산이나 바위에서 석재로 쓸 돌을 캐거나 떠내는 부석(浮石)이 금지됐으나, 이후 1865년 경복궁 중건 때 삼청동에서 부석한 사례가 기록돼 있다, 또 창의문 밖의 사동, 녹번, 옥천암, 응암동, 사암동 등의 일대에 해당하는 서교는 17~18세기에, 노원, 불암, 우이, 조계 등의 동교는 18세기 후반부터 각각 빈번한 부석처로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연구 결과를 토대로 『국역 조선시대 궁·능 宮·陵에 사용된 석재 산지』 보고서를 발간했다. 또한, 실제 궁궐 현장의 석재들과 비교하는 추가 검증 작업을 통해 각 특성이 서로 일치한다는 사실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한편, 지난해 10월 복원 공개된 광화문 월대에도 비파괴 조사와 분석 기술을 적용하여 조사한 결과, 광화문 월대 난간석주(구부재)와 구리 동구릉에 보관 중인 난간 부재는 암석학적으로 동일한 특성을 보였다는 사실과, 이들의 석재 산지는 서울 노원구의 수락산과 불암산 일대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앞으로도 석조 문화유산에 대한 활발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궁궐 복원에 사용할 대체 석재 선정을 위한 근거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국민과 지속해서 공유하는 적극 행정을 이어갈 것이다.”고 했다. 황화영 문화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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