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도 진주 금곡농협 조합장 - 네 번 출마해 당선된 후 이번에 재선에 성공
정의도 진주 금곡농협 조합장 - 네 번 출마해 당선된 후 이번에 재선에 성공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7.12 16: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협을 농협답게 만들려고 계속 낙선에도 도전
취임 초 예대비율을 45%에서 90%로 끌어올려
자산규모 1000억 원, 진주시내 지점개설이 목표
농사짓던 사람이 조합장 돼 잘했단 소리 들을 것
정의도 조합장은 2000년 초반에 처음 출마해 내리 세 번을 낙선한 후 네 번째 처음으로 당선됐다. 그 이후 지난 4년의 성과를 인정받아 이번에 재선했다.
정의도 조합장은 2000년 초반에 처음 출마해 내리 세 번을 낙선한 후 네 번째 처음으로 당선됐다. 그 이후 지난 4년의 성과를 인정받아 이번에 재선했다.

정의도(61) 진주 금곡농협 조합장은 세 번 내리 낙선하고 네 번째 출마해서 당선됐다. 평생을 농사짓고 농민운동을 했지만 농협을 바로 세우지 않고는 농민을 살리기 어렵다는 생각에 조합장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조합장이 되는 길은 험난했다.

처음 40대 초반에 출마했을 때는 너무 어리다며 지지해 주지 않았다. 두 번째는 조합의 직원 출신이 전문성이 있어서 일을 더 잘하지 않겠냐며 표를 주지 않았다. 세 번째는 한 번 밖에 한했는데 한 번은 더 시켜줘야 일을 제대로 할 것 아니냐며 현직인 상대방 후보를 선택했다. 이렇게 세 번을 낙선했지만 정 조합장은 뜻을 꺾을 수가 없었다. 농협을 바로 세우지 않고서는 농민들이 제대로 살기가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번째 출마를 강행했다. 이번에도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현직 후보가 선거법 위반으로 출마를 포기한 것이다. 그래도 선거는 쉽지 않았다. 네 번이나 출마해 동정표를 더해서 겨우 이길 수 있었다. 그것도 60표 차이인 박빙의 승부였다.

이렇게 조합장에 오르는 길은 험난했지만 조합장이 되고 나서 정 조합장은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해 나갔다. 처음 조합장이 되고 나서 보니 대출이 달랑 90억 원에 불과했다. 이런 대출로는 농협을 운영해 갈 수가 없다고 판단한 정 조합장은 대출증대에 총력을 다 했다. 그 결과 임기를 마칠 때에는 대출이 500억 원으로 늘었다. 예금도 570억 원이나 됐다. 대출이 5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대출이 급증했지만 부실채권이 단 한 건도 없었다.

대출만 늘린 것도 아니다. 마트를 이전해 매출이 두 배 이상 늘게 했다. 마트를 이전할 때도 임원들 반대가 심했다. 그래도 정 조합장은 밀어 부쳤다. 그 결과 매출이 두 배 이상 늘어나는 획기적 성과를 거뒀다. 주유소 판매량도 2배 이상 늘어나는 등 전반적으로 조합의 경영이 좋아졌다. 이로 인해 직원도 취임 초 15명이던 것이 현재 23명으로 늘었다. 직원들을 늘릴 때도 반대가 심했다. 그래도 정 조합장은 직원이 늘어야 서비스가 좋아진다며 강행했고 정 조합장의 생각은 적중했다. 직원이 늘자 신용사업과 경제사업도 활성화된 것이다. 정 조합장이 취임한 이래 경영이 좋아지면서 조합이 전반적으로 안정을 찾게 됐다. 평생을 농사만 짓고 시위만 하던 사람이라 평하던 사람들의 입을 닫게 만든 것이다.

이번 임기 중 정 조합장은 조합의 자산규모 1000억 원 달성이 목표이다. 이를 위해서는 진주시내에 진출이 필수적이다. 시내에 나가야 신용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또 로컬푸드 직매점을 시내에 내는 것도 정 조합장의 목표이다. 소농 조합원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시내에 로컬푸드 직매점을 내는 것이 시급하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정 조합장의 이번 임기 중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정의도 조합장은 1958년 진주시 금곡면 송골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집안이 어려워 공부를 많이 못했다. 그래서 평생을 고향에서 농사지으면서 보냈다. 20대 중반에 잠시 도시로 가야겠다며 부산엘 갔었지만 1년도 못 있고 귀향을 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모실 자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향한 다음에는 평생을 금곡에서 농사지으면서 보냈다.

귀향해서 처음 한 일은 소를 키우는 것이었다. 9두로 시작해서 제법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한 5년 하자 시설하우스 붐이 진주에 불었다. 이 붐을 따라 정 조합장도 시설하우스로 전환을 했다. 토마토를 키워서 재미를 보았고 지금은 꽈리고추를 하고 있다. 전량을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작년에는 직장생활하는 아들을 내려오라 했다. 농사짓는 게 직장생활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권유했더니 순순히 응했다. 걱정이 돼서 최근에 아들에게 물어봤더니 직장생활하는 것보다는 낫고 또 재미있다며 아들이 만족해했다.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

정 조합장은 금곡농협에서 자신이 세운 목표만 달성하면 더 이상 조합장에 미련이 없다. 굳이 3선에 나갈 이유도 없다. 평생 농사짓던 사람이 조합장이 돼서 잘했단 소리를 듣는 게 꿈이다. 그 꿈을 위해 정 조합장은 지금도 죽을힘을 다하고 있다.

다음은 정의도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금곡농협은 관할이 어디인가.

-진주시 금곡면이 관할이다.

▲조합원은 몇 명인가.

-1050명이다. 올해 자격미달 한 120명을 정리했다. 진주시에 소재한 농협으로서는 가장 작은 규모의 조합이다.

▲작다는 것은 무슨 기준인가.

-자산규모도 그렇고 조합원 숫자도 제일 작다.

▲자산규모는 얼마인가.

-750억 원 정도 된다.

▲그럼 이웃 농협과 통합 압박이 오지 않나.

-제가 조합장이 되기 전에 이웃에 있는 문산 농협과 통합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조합원들이 반대해서 무산됐다. 그리고 제가 조합장이 된 2015년에 진주 남부농협과 통합을 제의했으나 남부 조합이 반대해 추진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독자 농협으로 운영해 가고 있다. 그래서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조합장은 이번이 재선인가.

-그렇다. 이번이 재선이다. 2015년에 처음으로 당선됐다.

▲첫 출마가 2015년인가.

-아니다. 2015년에 네 번째 출마에서 당선됐다.

▲그럼 첫 출마가 언제인가.

-2000년 정도 됐을 거다. 제 나이 43살 때 처음 출마했다. 그리고는 내리 세 번 낙선하고 2015년 전국동시선거에서 네 번째 출마해 당선된 거다.

▲내리 세 번을 낙선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농협이 농협다워야 농협이라고 할 수 있는 데 제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조합장이 돼서 농협다운 금곡농협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낙선하면서도 도전했던 이유다.

▲농협이 농협다우려면 어때야 되나.

-농협은 농민을 위한 조직이다. 제가 처음 출마했을 때가 한국-칠레 FTA가 한창 진행되던 때이다. 그때 농업보호를 위해 전체 농민들이 들고일어나 투쟁을 했다. 그런데 농협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래가지고는 농협이 농민을 위하는 조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협이 꼭 시위에 앞장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농민 편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합장이 돼서 농협을 농민을 위한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합원이 왜 몰라줬나.

-처음 출마 때는 20년 이상을 조합장으로 재직한 현직과 싸웠다. 상대방이 워낙 강적이고 또 제가 40대 초반으로 젊었다. 그게 조합원들의 눈에는 어린 사람으로 보였던 것 같다. 선거유세를 다녀보니까 현 조합장이 잘하고 있는데 젊은 사람이 무얼 하겠나 하는 분위기가 많더라.

▲그럼 두 번째는 왜 떨어졌나.

-두 번째는 조합에서 전무하던 후보하고 붙었다. 또 선거유세를 다녀보니 아무래도 조합장은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안 낫겠나 하는 분위기가 있더라.

▲세 번째는 왜 안됐나.

-현직 조합장이 초선이다 보니 그래도 한 번은 더 기회를 줘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는 그런 분위기더라.

▲그럼, 네 번째는 어떻게 해서 당선됐나.

-네 번째는 처음에는 현직 조합장을 포함해 5명이 출마했다. 그래서 사실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운이 좋은 건지 현직 후보가 선거 중간에 선거법 위반으로 출마를 포기하게 됐다. 그래서 4명이 싸웠다. 현직이 없는 가운데 선거를 하다 보니 네 번이나 출마해 동정표가 있었던 제가 조금 유리했던 것 같다. 또 네 번이나 출마하면서 인지도도 상당히 높아졌다. 그래서 당선이 됐다.

▲득표는 얼마나 됐나.

-차점자와 60표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네 명이 나와서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 아슬아슬하게 당선된 거다.

▲이번 선거는 어땠나.

-아무래도 이번 선거는 제가 현직이라서 조금 쉬웠다.

▲그래서 득표는 얼마나 됐나.

-네 명 나와서 약 30% 정도 얻었다.

▲그리 차이나는 득표는 아니네.

-그래도 지금까지의 선거를 볼 때 이 정도면 안정적인 득표이다. 지금까지 한 선거 중에 가장 편안하게 선거를 치렀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선거를 치른 이유는 무어라고 생각하나.

-지난 4년간 열심히 했다. 그 성과에 대해 조합원들이 나름대로 평가하는 것 아니겠나 하고 생각하고 있다.

▲주로 어떤 일을 했나.

-대출을 늘리는데 총력을 다 했다.

▲어째서 그랬나.

-대출이 많아야 수익이 난다. 조합의 수익은 대출 외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수익이 나야 조합의 본래 업무인 경제사업을 해서 조합원들을 지원할 수가 있다. 그래서 대출을 늘리는데 총력전을 편 것이다.

▲그래서 성과가 어땠나.

-제가 취임해 보니 우리 조합의 대출이 90억 원 밖에 되지 않았다. 예금은 200억 원으로 예대비율이 45%였다. 이것을 지난 4년간 대출을 500억 원으로 늘렸다. 예금은 570억 원이다. 대출이 약 5배 이상 늘어났다.

▲어떻게 해서 이런 성과를 거뒀나.

-사실 우리 조합 내부에서는 대출자원이 없다. 그래서 전무랑 함께 진주시내에 있는 부동산 회사를 쫒아 다녔다. 이들을 대상으로 대출을 많이 일으켰다.

▲이렇게 대출이 급속도로 늘면 부실채권이 늘어나지 않나.

-지난 4년 동안 부실채권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대출을 늘리긴 하지만 채권을 제대로 확보만 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또 한 일은 무엇인가.

-제가 취임하니 하나로 마트 매출이 연간 4억5천만 원이더라. 그래서 건너편에 있던 마트를 본점이 있는 여기로 이전을 해서 리모델링을 했다. 이전하려니 처음에는 임원들의 반대가 심했다. 마트 이전한다고 매출이 늘겠느냐는 게 주된 반대이유였다. 그래도 매출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합원들의 편의를 위해서도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강행했다. 결과는 연 10억 원 이상으로 매출이 늘었다. 조합원들도 편리하게 됐다.

▲그 외에는 어떤 일을 했나.

-제가 오기 전에 주유소를 신설했다. 그런데 매출이 10억 원이 채 안됐다. 그것을 현재는 20억 원 수준으로 올렸다. 또 직원도 조합장 포함해서 15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은 23명으로 늘었다.

▲직원 늘릴 때는 반대가 없었나.

-왜 없었겠나. 수익도 안 늘어나는데 직원만 늘린다고 반대가 심했다. 그렇지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직원이 늘어나야 한다며 강행했다. 결과는 직원을 늘린 결과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모두 활성화됐다.

▲많은 일들을 했네. 조합 출신보다 경영을 더 잘하는 것 같다.

-농협이 농협다워야 하려면 경영이 좋아야 한다. 또 농사꾼 출신이 조합장이 돼서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서 했다.

▲이번 임기 중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현재 자산규모가 750억 원 정도 된다. 이것을 1000억 원으로 늘리는 게 목표다.

▲가능할 것으로 보나.

-저는 자신이 있다. 자산규모가 늘어나려면 신용사업에서 규모가 커져야 한다. 그래서 진주시내 쪽에 지점을 낼 생각이다. 시내 쪽에 지점을 내서 신용사업을 활성화시키면 충분히 1000억 자산을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만 할 것인가.

-지점이 개설되면 거기에다가 로컬푸드 직매장을 낼 생각이다. 로컬푸드 직매장이 생기면 우리 조합원들이 시내에 있는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게 된다. 조합원들에게는 시장이 열리는 것이기 때문에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을 잘 이끌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해 보자. 언제 태어났나.

-1958년 진주시 금곡면 송골리에서 태어났다.

▲지금까지 주로 어떤 일을 했나.

-어려서 집안이 어려워 공부를 많이 못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짓다가 도시에 나가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에 20대 중반에 부산으로 갔다. 그런데 1년도 못돼서 돌아왔다.

▲왜 돌아왔나.

-형님이 마산에서 은행을 다녔기 때문에 고향의 부모님을 돌볼 수가 없었다. 제가 부산에 가니 부모님 두 분만 남게 됐다. 그래서 부모님을 모셔야 했기 때문에 돌아왔다. 1985년의 일이다. 그때 이후에는 계속 금곡에서만 살았다.

▲돌아와서는 무슨 일을 했나.

-농민후계자로 등록을 했다. 그리고는 후계자 자금을 받았다. 그때 돈으로 720만원이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억 원 정도 되는 돈이다. 그 돈으로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몇 마리로 시작했나.

-처음에 9마리로 시작했다.

▲잘됐나.

-그럭저럭 잘 됐다. 그러다가 90년대에 들어오자 진주에 시설하우스 붐이 불었다. 그래서 축산을 정리하고 시설하우스를 하기 시작했다.

▲하우스에서는 무엇을 재배했나.

-처음에는 토마토 양액재배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잘 됐다. 당시 양액재배가 막 시작되던 때이다. 경상대와 농업기술원에 양액재배 기술이 있었는데 그것을 전수받아 시작했다. 토경재배에 비해 토마토가 3배 이상 수확량이 났다. 그래서 좀 재미를 봤다.

▲지금은 무엇을 재배하나.

-지금은 꽈리고추를 재배하고 있다. 800평 정도의 하우스를 하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판매를 하나.

-전량 일본으로 수출된다. 국내에 판매하는 것은 상품가치가 없는 파지들이다.

▲여기서 얼마나 소득이 되나.

-제 손에 8000만 원 정도 들어온다. 그럼 인건비 등 이것저것 떼고 나면 절반 정도 소득이 된다. 벼도 5000평 정도 심는다.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직장생활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래서 작년에 직장 생활하던 아들을 내려오라 해서 농사를 짓게 하고 있다.

▲아들이 순순히 응하던가.

-최근에 물어보니 직장생활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그러더라. 농사를 제대로만 하면 직장생활하는 것보다는 괜찮다.

▲농민운동을 오래 했다고 했는데.

-사천의 강기갑 의원 같은 사람은 농민회 활동을 했고 저는 농업경영인회 활동을 주로 했다. 2002년도에 진주시 지부 회장을 했다.

▲농민운동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한국-칠레 FTA체결 시 쌀값 보장을 요구하며 강기갑 전 의원하고 농협 경남도 본부장실을 15일간이나 점거하고 농성한 일이 생각이 많이 난다. 당시 벼 수확철 이었는데 수확도 하지 않고 점거농성을 했던 일이 있다. 그 외에도 고속도로 점거 농성 등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랬나 싶을 정도로 시위를 많이 했다.

▲언제까지 조합장을 할 건가.

-제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미련 없이 떠날 것이다.

▲목표가 무엇인가.

-금곡농협의 자산규모 1000억, 새로운 지점과 로컬푸드 직매장을 내는 것이다. 이것이 완료되면 저는 조합장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

▲어떻게 평가받고 싶은가.

-농사짓던 사람이 조합장 돼서 잘했단 소리 듣고 나가려고 죽을 힘을 다하고 있다. 황인태 본지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