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세상엿보기] 마주한 삶들에 대하여 -어디 아프지 않은 역사가 있었던가-
[김용희의세상엿보기] 마주한 삶들에 대하여 -어디 아프지 않은 역사가 있었던가-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10.2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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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황순원 박두진 그리고 정약용, 경기도를 연고로 하는 현대사의 사상가요 문인들인 그분들의 자취를 돌아보았다. 한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치열하게 사신 분들, 절제된 삶을 열정있게 사신 분들이다.

다산 정약용, 조선 후기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애민 애족을 관리로서 그리고 글로써 끝없이 다가서고 표현했던 분. 남인 벽파들에 의해 조정이 소용돌이칠 때, 비운의 사도세자, 급작스런 정조의 죽음, 그리고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 그렇게 조선사가 끝나버리기 전 어쩌면 마지막 외침과 울림을 주신 분. 주자학의 관념론과 서학의 소용돌이 속에서 형과 매형이 희생되고 십수년 강진에서 구금된 삶을 사신 분. 그렇게 지난한 과정속에서도 백성과 조정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사랑을 전신으로 쏟아부은 분. ‘관념’을 버리고 ‘실용’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예견한 분. 그의 고통스런 삶이 지금이나 그때나 일부 자신들의 권력욕에만 눈먼 자들에 의해 나라가 정치가 실종되다시피 할 때 그들의 전도된 가치관과 숨긴 야욕에 온몸으로 글로 항거한 그의 열정. 정인보의 말처럼 그는 조선이었고 조선의 아픔이었다. 오늘날 또 애국이란 이름으로 호도된 가치관을 생산해내고 몸으로 표현하는 작금의 음모를 다산은 어찌 볼까? 시대를 외면하고 가치론이나 인위론에 빠진 순진한(?) 감상이나 관념보다 슬픈 일은 없겠다.

황순원 그는 박목월과 같이 일제시대 해방 6.25 4.19 5.16을 사신 분이다. 민족수난의 시대 격변기를 살아오신 분들. 어디 아프지 않은 역사가 있었으랴만 이 분들이 산 시대 또한 혼동과 위기의 시절이었다. 다만 그 시절을 사신 분들치고는 그래도 나름 개인신상으로는 행복(?)한 분들이 아니셨나 싶기도 하지만, 모두 전장으로 징용으로 끌려가고 가족을 잃고 하던 시절에. 황순원 문학이야 순수문학으로 깊은 내적 침잠과 내밀하고 치열한 접근을 통한 인간본성으로의 접근은 이미 회자되고 인정된 바지만 그 아픈 역사가 작품에 직접 나타나지 않고 '소나기'작품이 어찌 1953년 전쟁의 포화 속에서 민족이 백만 이상 죽어갈 때 이런 작품을 쓰고 발표했을까란 문학이란 이름의 비정함(?)에 문제제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여타의 작품을 통해 그리고 문학의 본질적 가치인 존재론적 인간본성과 한계성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짐으로서 소설이란 도구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각인시켜주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양평은 수도권에서 아직 자연이 살아 있는 곳, 파주 연천 용인 부천… 어디나 개발이란 이름, 발전이란 이름으로 공장과 낙농가들의 생업이 허용되지만 앙평 가평만큼은 수도권 식수보호란 이름으로 자연과 호수가 그대로 보호되는 곳이다. 그 곳에 황순원 문학관이 소재하는 것은 의미 있으리라.

박두진,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해 한 줄로 표현해 본다면 ‘자아 성찰을 통한 존재로의 귀향’이라 하겠다. 안성면 소재 박두진 문학관이 지난해 개소했다. 60년 동안 2000여 수의 시를 지은 분. 소학이 학력의 전부인 그가 한학 문학 글씨 그림, 연대강의는 요즘 같으면 불가하다. 학위가 없으면 강단에 서지 못하게 하는 문교부의 그 치졸한 자기순환논리 때문에.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해직과 복직의 길을 걸어오신 분, 지독한 성찰과 흩트리짐 없는 삶의 여정들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온전하게 완성시켜 왔는지를 보여주는 분.

문학이란 존재 앞에 던지는 본질적 근원적 질문이다. 그리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백석이 납북된 후 그의 시가 전해지지 않듯, 정지용의 향수가 보여주는 그 문학적 수월성이 6.25희생으로 더 이상 여작들을 볼 수 없듯. 문학 또한 시대적 상황의 결과물이다. 순수문학이란 것이 톨스토이 또한 원고료 때문에 글을 썼다니 그리 쉬운 단어는 아니다. 글과 음악이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여 혹은 가치를 호도하여 특정한 공간으로 인간을 도피시키기 위한 도구로 오용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언어와 문자를 가진 인간에게 주어진 어쩌면 최고의 선물과 향유가 문학이란 이름의 도구 아니던가? 감성의 표현, 사유의 구조화 존재로의 접근…. 모두 문자, 언어라는 도구들을 통해서다.

웹툰 웹소설, 환타지 호러 등 장르문학이 대세인 요즘 ‘신밧드의 모험’은 낭만이었지만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린 ‘반지의 제왕’까지는 너무 비현실적이라 인간본성 안에 있는 그 환타지적 성향에 대해서는 이해되지 못할 질문들로 남겠지만 요즘의 웹작품들이 주는 울림이야 아무래도 아이돌 노래 같아서 쉬이 잊혀질 것이라는 우려는 기성세대들의 착각일까?

삶에 대한 진솔함 성실함 열정, 그리고 시류에 호도되지 않은 깨어 있음, 나아가 존재본질에 대한 갈구와 지향…. 글이 있기에 문학이 있기에 예술이 있기에 삶은 더욱 의미와 가치로 다가오지 않을까. 이상의 세 분은 혼란스럽고 감각적이고 환타지적인 이 시절에 다시 한번 돌아 볼 우리 시대의 어른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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