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까치 덕인가
[정용우칼럼] 까치 덕인가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11.0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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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새벽까지 안개가 짙게 끼어 있더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하늘이 맑아지고 있다. 맑게 갠 가을 아침이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니 낙엽들이 잔디밭 위에 많이 떨어져 있다. 하루가 다르게 가을이 익어간다. 이런 날은 그냥 거실에 앉아 쉬며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익어가는 가을 아침 고요를 즐기는 것이 제격이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면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청안해진다. 이런 날은 내 영혼도 가을 잠자리처럼 맑고 투명해져 푸른 하늘 위를 떠다닐 것 같다. 외로움 속에서 누리는 즐거움이다. 그래서 독락(獨樂)이요 평화다.

다시 바깥을 내다본다. 낙엽이 떨어져 버린 나뭇가지들은 새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새들도 이 청명한 가을 아침을 즐기는 모양새다. 이리저리 신나게 날아다니다가 감나무 가지에도 앉아 보고 배롱나무 가지에도 앉아 본다. 그리고는 잔디밭에도 내려와 저희들끼리 이리저리 노닐며 장난도 친다. 새들 중에는 까치가 몇 마리 눈에 들어온다. 까치는 나무가 군데군데 있는 탁 트인 개활지를 좋아한다. 근처에 야산도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마을과 같은 전통적인 농촌마을이 그들이 좋아하는 서식지가 된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까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까치는 길조(吉鳥)로 불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새다. 하늘나라에서 복을 받아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새이기 때문에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그날 반가운 소식이 있거나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했다. 동네사람의 옷차림이나 목소리를 기억해 낯선 얼굴이 동네어귀에 나타나면 ‘깍 깍’ 하고 울어댈 정도로 영리한 새라고 했으니 그냥 지어낸 말은 아닌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우리집 마당으로 날아 내려온 까치는 잔디밭에서 무슨 먹거리를 찾아내려는 듯 계속 잔디 속을 헤집는다. 울어야 반가운 소식이 있거나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데 울지는 않고 땅만 헤집어대니 이를 지켜보는 나를 안타깝게 한다. 그럼에도 오늘따라 우리집 마당에 몇 마리의 까치가 방문했다는 건 좋은 징조일거라고 믿으며 자신을 위로해 본다.

까치 덕인가. 오전 11시경에 서울에 사는 절친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오늘 이곳 시골집에 있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오늘 밤 10시경에 부부가 함께 이곳을 방문하여 하룻밤 지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단다. 진주시내 장례예식장에 조문할 일이 생겼는데 조문 마치고 이곳 시골로 오겠다는 것이다. 시골집이야 늘 누추하지만 나는 대환영이라고 했다. 항상 외로움을 달고 사는 삶인지라 이렇게 친구를 만나서 유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즐거움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이곳과 가까운 지역에 사는 친구들은 가끔씩 이곳을 방문하기는 한다. 그러나 서울에 사는 친구가 그것도 부부가 이곳을 방문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기쁘고 설레는 마음일 수밖에 없다. 전화를 끊고 난 후로는 바빠진다. 모처럼 방문하는 친구를 위해 나름대로는 준비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잔디밭 위에 떨어져 있는 낙엽도 쓸어내야 하고 마당 주변 풀도 베어내야 한다. 그리고 집 안 대청소, 잠자리 준비, 간단한 음식 준비 등등...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친구 부부는 밤 10시경에 이곳에 당도했다. 반갑고 기쁜 마음에 우리집에 설치되어 있는 모든 전등을 켰더니 마당과 집안이 낮처럼 환하다. 그 불빛처럼 밝은 마음으로 친구를 맞았다. 우리는 곧장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잔을 돌렸다. 급기야 친구가 흥에 취해 시 한 수 읊겠다고 했다. 마종기 시인의 ‘우하의 강’을 감정 넣어 멋지게 읊어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중략)//큰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물결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 보아주고/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이렇게 서로에게 감정이 이입되며 우리는 밤이 깊어가는 것도 모르는 채 정다움을 나누었다. 그 다음날 친구 부부는 서울로 떠나가고 나는 이곳 시골에 예전처럼 혼자 남았다. 외로움... 다시 이 외로움과 친해져야 한다. 어제는 친구를 위한 일정이었지만 오늘은 다시 외로움 속에서 ‘나를 만나는 일정’으로 채워야 한다. 외로움은 거짓을 모른다고 했으니... 내 안에도 내가 돌보고 배려해야 할 소중한 영혼이 있는 만큼, 외로움과 함께하는 오늘 하루 일정 역시 더없이 소중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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