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칼럼] 탐내지 말라
[김기덕칼럼] 탐내지 말라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2.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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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교회(평안동) 담임목사
진주교회(평안동) 담임목사

신학교 기숙사에서 한 신학생이 밤늦게 라면을 너무 맛있게 먹고 있었다. 친구 한 명이 방에 들어와서 이렇게 말한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랬더니 라면을 먹고 있는 신학생이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라고 한방 먹였다. 십계명 열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의 집, 아내, 남종, 여종, 소나 나귀,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이다. 탐심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열 번째 계명은 우리 마음의 문제에 관해 말하고 있다. ‘탐하다’라는 원어는 ‘하마드’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것은 탐욕에 사로잡힌 내면의 마음이기도 하고 실제적으로 몸으로 행하는 외적인 정복행위이기도 하다. 좀 더 정확한 의미는 구체적인 행위가 일어나기 전의 내적인 탐욕을 가리킨다. 남의 것을 향한 내적 욕망이 언제든지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탐내는 것은 어떤 대상이나 물질에 대해 몰입하기 시작할 때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가룟 유다는 왜 예수님을 배반했을까? 그 생각을 해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마귀가 생각 속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던 것도 있고, 둘째는 그의 탐심 때문이다.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흥정을 할 때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면 얼마나 내게 주겠느냐 했을 때 그들이 은 30으로 답을 했다. 유다는 그때부터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찾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사랑하는 스승을 팔만큼 마음이 흔들렸던 것은 돈에 대한 탐심이었다.

몇 년 전 서울 중랑구 면목동 다세대 주택 반지하방에 사는 한 가족이 있었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집을 비운 사이 불이 나서 어머니와 큰딸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되었다. 17세 어린 아들은 “진실을 밝혀 달라”고 경찰에 간절히 호소했다. 그런데 조사를 하면서 실체가 밝혀지기를 아들이 보험금 3억원을 타내려고 동네 후배를 시켜서 저지른 존속살해 방화 살인이었다. 탐심이 무서운 것은 피를 나눈 형제도 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형제가 금을 채굴하다가 어마어마한 금덩이를 발견했다. 두 형제는 금덩어리를 배에 싣고 강을 건너 집에 돌아오는데 형이 강 중간에 오더니만 금덩어리를 강에 집어 던지는 것이었다. 동생이 큰 소리를 지르며 무슨 짓이냐고 형을 나무랐다. 그때 형이 이렇게 고백한다. “강을 건너기 전부터 동생만 없다면 이 금덩어리는 내 것이 될 텐데 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강을 건너는데 계속 금덩어리가 눈에 자꾸 보이면서 동생만 물에 빠뜨리면 금덩어리가 내 것이 되는데 라는 생각이 집요하게 들었다” 그래서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금덩어리를 집어 던졌다는 고백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형, 미안해 나도 사실 똑같은 생각을 했어”

탐심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탐심은 만족이 없이 자꾸만 더 가지려고 한다. 미국의 가장 갑부였던 앤드류 카네기에게 어떤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얼마나 모으면 만족하겠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최고의 갑부의 말이 “조금만 더”라고 했다고 한다. 탐욕이라는 것은 채워질 수 없다. 탐심은 결코 만족을 주지 못한다.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돈이나 재산이나 그 외 값나가는 것들이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유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탐심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만족하게도 못한다.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관계에 있다. 탐심은 순간적으로는 행복을 주고 만족을 주는 것같이 보이지만, 탐심을 단번에 처리하지 않으면 결말이 무서운 것이다. 욕심이라는 작은 불씨가 인생을 다 태우게 된다. 탐심을 경계하지 않으면 더 많은 탐욕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그때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와 같다. 탐심을 제어하지 않으면 탐심은 향연을 만들어낸다. 이런 향연은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향연의 기쁨이 짜릿했던 만큼 그 향연이 끝나고 난 쓰라림은 엄청나다. 탐욕의 수레바퀴는 불의 전차와 같다. 욕심은 반드시 자라게 된다. 그것이 자라 다양한 죄를 양산시키는 것이다.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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