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세상엿보기] 고향의 강
[김용희의세상엿보기] 고향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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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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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수필가
시인·수필가

고향 함양을 다녀왔다. 세월의 무게 견디지 못해 자꾸만 시간의 무게가 사람들을 가볍게 하는것 같다. 거대한 산 같던 어른들이 나약하기 그지없는 노년으로 변해가게 만든다. 해서 이제는 "한 번이라도 더 보자"는 말이 세월이 가져다 주는 허허로움과 절박함이다.

늘 먼저 반기는 것은 콜리다. 제일 똑똑한 종류의 개라든가 흰색 검은 색 털과 초롱한 눈망울로 형님 부부의 최고의 친구가 되어 있는 콜리가 버선발로 뛰어 나온다. 몇달만에 아주 가끔씩 들러는 타향살이 식구들의 차 소리를 모두 기억하고는 살구밖까지 한달음에 달려나오는 살가운 친구가 콜리다. 차 문 빨리 열라고 그 큰 키로 일어서서 승용차 창을 긁는다. 이전에 양평에서 닭을 키울때도 그랬다. 닭도 주인의 차소리를 안다. 그 꼬맹이들은 날개를 퍼득이며 무리지어 달려온다. 먹이를 가져온 주인.

텃밭에는 온갖 채소들을 심었다. 상추도 여러가지 양파 마늘 고구마 감자...키작은 과일 나무도 여럿이다. 가을이면 하늘 빛을 품는 대추부터 열매를 맺어볼까 말까 뭐 세월이 급하느냐는 식의 키작은 감나무까지. 꽃을 좋아하는 형수의 뜻은 실어펴기위해 채송화 봉숭아 민들레... 여하튼 여러가지 꽃과 채소와 나무가 어우리진 텃밭, 이전 양평집은 마당을 '계유원'이라 했었다. 계절이 노는 정원. 봄풀로 여름녹음으로 가을단풍으로 하얀 겨울에는 달빛내린 정원으로...

읍내에 사는 동생부부와 노가네식당에서 시골채소 듬뿍 구수한 된장찌개에 비빕밥 한가득 담고 오월의 싱그린 바람과 햇살을 지고 노고단을 향한다. 지리산 오르는 계곡에 잠시 쉬며 그 투명하고 맑은 철철 넘치는 약수개울가에 앉아 파란 하늘빛이 녹아 흐르는 깊은 개울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의 시간이 흐른다.

지리산 밑이 고향이면서도 육십이 너머 처음 와 보는 곳 노고단. 사방 각 고을이 저만치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곳, 바람은 전라도 경상도를 자유로이 넘는다. 그런데 여기가 빨지산 운운하던 역사의 아픈 기억을 담은 곳이란게 어쩌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하는, 선량한 양민은 늘 피해자만 되었던 그리 멀지도 않은 아픔들을 되새긴다.

잊고 사는 역사 아니 잊을 수 없는 역사, 우리의 조부모 부모들이 직접 겪은 사건들, 여순사건 제주 43사건 일제로 부터 연결되는 회피되지 않는 역사를 되돌아 본다. 하산 도로길 산중턱 휴게소 정자 위에 앉아 아이스께끼 가게에서 틀어 놓은 트롯가수들의 노래를 들어며 지난 얘기 지나는 얘기 멀고도 가까운 기억들을 끄집어 내어 놓는다. 꼭 시간을 역사를 전시하듯 박물관처럼 흐른 시간들, 또 아이들에게 다가 오는 꿈과 희망과 바램을 오월의 바람 속에 담는다.

저녁식사까지는 남은 시간. 늘 고향에 가면 찾아가는 곳이 강변이다. 잘 정비된 강변 낙조와 강에 투영된 산과 들, 어릴적 멱감던 그 강이 아직도 저렇게 흐르고 있는 세월의 기억 품은 강변을 걷는다. 오월에도 강변에 피는 꽃 토종야생화들이 다양하다. 요즘은 이름을 알려면 휴대폰 사진을 찍어보면 이력서와 브랜드 명까지 알려주지만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아서 꽃옆에 가만히 앉아서 강바람에 크는 키작은 꽃들을 본다. 동행하는 콜리는 눈치가 높아 동행자의 의중을 읽는다.

이쪽 저쪽? 그렇게 가늠하며 앞선다. 땅을 품고 물빛에 거을리며 사는 키작은 꽃들과 같이 앉아보면 이 자연이 그리도 곱고 이 바람이 그리도 환희인 줄 안다. 고향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놓은 폴더 이름이 '고향의 강'이다. 강이 있어 그 젖줄이 있어 고향은 좋다. 비록 이곳 저곳 우사들과 파헤친 산과 들이 사진 하나 들이댈 곳 없게 하지만 강만은 늘 유유히 흐른다. 청초하게 깨어나는 새벽 그 오색의 아침햇살이 막 풀잎들을 깨우는 시간에 자연의 몸짓과 내음과 소리를 듣기위해 이른 아침에도 산책한다. 해오라기는 짝을 지어 날고 가만히 듣다보면 최소 5~6가지의 새소리가 들린다. 참새 뻐꾸기 종달새 까치 물오리..

저녁은 허영만이 다녀간 곳을 검색해 봤더니 동생왈 모두 신통찮은 곳이란다. 원래 외지인은 속을 잘 모른다. 맛집이란게 사실 그렇다. 소고기 샤브집, 늘 밥값은 서로 먼저 계산이다. 이번에도 밥 한끼 못 사나보다. 말끔한 동생집 들러 안마기 의자에서 졸다가 시골집으로 귀가. 식당에서 남은 밥을 늘 정성스레 준비하고도 한번도 감사표시 못받은 형수가 챙긴 음식 콜리에게 주고 또 고향의 밤은 깊어간다. 콜리는 제 집에서 달빛내리는 밤을 지새고 가로등도 졸고 있는 시골의 밤은, 아직도 코로나도 멀어서 오지 않는 고향의 밤은 그렇게 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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